"한양도성 백악구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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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안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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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밖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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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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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엽 천주교도박해 때 서울성안의 교인들이 피신하여 숨어 살던 때부터 마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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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는 성 밖의 맑은 공기와아름다운 경관을 찾아 모여든 한량과 기생들, 이태준, 한용운 등의 가난한 예술가, 그리고 병약한 환자들의 생활 공간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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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을 거치며 북정마을은 도시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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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성북동은 1960~70년대부터 주요 재계인사들이 들어와 거주하면서 고급주택 및 외교사택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남쪽의 부촌과 달리 북쪽의 북정마을은 판자집이 난립한 모습이 대조적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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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에 건축된 500채 정도의 기와집이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1960-70년대 서울의 정취를 북정마을에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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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정마을에는 해마다 지역 특성을 살린 ‘Wall月축제’를 열어 공동체 의식을 함께 나누는 축제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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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변에는 만해 한용운이 말년에 거처한 심우장, 상허 이태준 가옥, 성북동 최순우 가옥도 그대로 남아있다.

2022년 2월 18일 (금) 15:35 판

소개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가치

성곽 안의 이야기

성곽 안은 조선시대 부터 어느정도 재산이 있는 부유층이 거주했으며, 개화기 이후에도 사업을 갖고 들어오는 외국인들의 거주가 많았다.

그중 백악구간의 성곽을 담벼락으로 사용하며, 8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저 시민들에게 개방된 공간인 혜화동 전시안내센터를 통해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성곽 밖의 이야기

북정마을

19세기 중엽 천주교도박해 때 서울성안의 교인들이 피신하여 숨어 살던 때부터 마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성 밖의 맑은 공기와아름다운 경관을 찾아 모여든 한량과 기생들, 이태준, 한용운 등의 가난한 예술가, 그리고 병약한 환자들의 생활 공간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6·25전쟁을 거치며 북정마을은 도시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되었다.

이후 성북동은 1960~70년대부터 주요 재계인사들이 들어와 거주하면서 고급주택 및 외교사택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남쪽의 부촌과 달리 북쪽의 북정마을은 판자집이 난립한 모습이 대조적으로 보여진다.

1960-70년대에 건축된 500채 정도의 기와집이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1960-70년대 서울의 정취를 북정마을에서 느낄 수 있다.

북정마을에는 해마다 지역 특성을 살린 ‘Wall月축제’를 열어 공동체 의식을 함께 나누는 축제를 진행한다.

마을 주변에는 만해 한용운이 말년에 거처한 심우장, 상허 이태준 가옥, 성북동 최순우 가옥도 그대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