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대의 주역, x세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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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소개

1970년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 1남 3녀 가정의 막내로 자랐다.

고등학생 시절까지 평택에서 지내다 성신여자대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상경하게 되어 오늘날까지 서울에서 거주중이다. 원체 몸이 약한 편이라 큰 병은 없어도 잔병치레가 잦다는 것이 스스로도 골칫거리다. 현재 서울시 공무원으로 복무중이며 아들과 같이 지내고 있다.

'미스터 트롯' 임영웅의 열렬한 팬이다.



X세대, 문현경 씨의 이야기

주목받지 못하는 현 시대의 주역, X세대

우리나라에서 낀 세대를 처음 경험하는 세대 [1] 

세대 론은 이젠 구닥다리라고 말하지만, 현재 시대의 주역이면서도 희미한 존재감을 지닌 이 세대를 정의하기엔 X세대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 보통 X세대라 하면 60~70년대 생을 말한다. 이들은 근현대의 중간에 끼어있는, 참 특이한 경험을 한 세대일 것이다. 정이 넘치던 대한민국 근대사의 막바지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 삭막해진 현대시대에 사회생활에 입문하였으며, 지금은 이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명백한 주역이 되어 있다. 이렇게 ‘끼어있는’ 세대기 때문에 그들은 아날로그에 익숙하면서도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문화와 기술을 비교적 자유롭게 활용하는 편이다. 문화적으로도 사회 초년생일 때는 경직된 상명하복식의 계층문화를 겪으며 부조리를 참아왔지만, 조직에서 ‘장’붙은 자리에 올라가니 자유분방한 개방식 조직문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참 살기 뭐 같은 시대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민주화운동의 마지막 즈음에 발을 담가본 마지막 세대이자, 그 좋다던 경제성장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IMF의 취업난을 겪으며 냉혹한 현실을 가장 먼저 마주한 세대이다.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그들은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라기엔 너무 어렸고, 디지털시대의 주역이라기엔 옛날 사람이다. 그렇게 희미한 존재감을 가진 이 세대, 하지만 그 영향력도 희미한 것은 아니다. 요즈음 한창 뜨는 ‘미스터 트롯’과 같은 방송 프로그램의 열풍은, 그동안 언론들이 한창 열을 올리던 소위 ‘젊은’ 세대들보다도, 그들의 영향력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X세대의 이야기를 문현경 씨의 구술 인터뷰를 통해 잠깐 살펴보자.


아직은 정이 남아있던 그 시대

1973년. 문현경 씨(가운데)와 언니들
"지나가던 동네 아줌마가 빨래하러 왔다가 내가 빠진걸 보고 머리채를 확 끌어올려갖고 살아났던, 그런 기억이 있어요."
-녹취록 中-

X세대가 어렸을 적은 아직 정이 남아 있던 시대였다. 문현경 씨가 다섯 살 즈음에 목욕하러 가서 깊은 물에 빠졌던 일이 있었다.

이 시절의 목욕이라 하면 오늘날의 사우나처럼 잘 갖춰진 시설이 아닐 것이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그게 즐거운 물장구인지, 살려달라는 허우적거림인지 모를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문현경 씨를 구한 건 지나가던 동네 아줌마였다.

인터뷰가 끝나고 필자가 그 아주머니와 아는 사이였는지 물어보았는데, 처음 보는 아주머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말인즉슨, 저 멀리서 물장구를 치고 있는 아이가 혹여나 무슨 일이 난 게 아닐까 하며 살펴보고 도와주었다는 것이다. 지하철 같이 사람이 몰려있는 장소에서 누가 폭행을 당하고 있어도 관심을 안주는 분위기인 요즘과는 달리, 그 시대는 비교적 정이 남아있는 시대였던 것이다.


운동권의 끝자락, 엄격한 부모

1991년. 문현경 씨의 대학생 시절

"농촌 봉사활동을 갔었는데, 그때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농촌 봉사활동 같은 거는 빨갱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해가지고 이해 못해주셨을 때. 그 때 서운했었죠"
-녹취록 中-
당시 언론에서 다룬 학생운동[2]

사진을 보면 1991년의 포스터가 붙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시절은 독재정권과의 치열한 항쟁을 하던 시기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의 부조리함에 맞서 대학생들이 목소리를 내던, 그 마지막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문현경 씨 역시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이런 학생운동에 참여하며 몰래 시위도 나가보고, 농촌 봉사 같은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부모님의 매타작과 외출금지령이었다.

그 이전의 민주화 운동 세대가 독재 정권으로부터 겪은 고초에 비하기는 어렵겠지만, 부모세대가 갖고 있는 반공주의 사상과 자식세대인 그들 간의 사상적 갈등은, 비록 교과서에 남길만한 것은 아니겠지만 개인에겐 충분히 근심이 될 비극이었을 것이다. 문현경 씨는 이 때의 기억을 부모님에게 가장 서운했던 기억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 때의 기억을 본인이 했던 가장 큰 ‘일탈’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생의 전환점, 결혼과 육아

1991년. 문현경 씨와 아들 임지수

"(인생의) 전환점이라 하면 아무래도 결혼이죠? 결혼도 있고. 아이도. 임지수도 낳았을 때 그때."

다른 생명을 키우게 된다는 것은 개인에게 있어 꽤나 부담인 일이다.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을 키움에 있어서도 많은 준비가 필요한 데, 하물며 사람인 아이를 키우는 것이면 더욱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그러면서 개인은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속하게 된다. 누군가의 자식이라 불리던 내가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한 개인에 있어 커다란 변화를 주게 되는 것이다. 문현경 씨 역시 결혼과 육아 속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한다.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것. 원래의 가족들은 피로 이어진 끈끈하면서도 든든한 뒷받침이다. 하지만 결혼을 통해 새로운 가족을 만든다는 것은 그저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단순하지만은 않다. 피가 이어지지 않은, 사실상 남이나 마찬가지인 사람과 함께 지내고, 자신의 피가 이어진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분명히 자신의 인생을 뒤바꿀만한 일인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 세대들과는 달리 그저 부모로서의 자신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X세대들은 부모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다. 국어 책에서나 보던 ‘희생하는 어머니’의 역할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마치며

지금 X세대들은 이 시대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세대이면서도 ‘꼰대’와 ‘버릇없는 놈들’ 사이에서 치이는 중이다. 가정에서도 위로는 가부장적인 시댁과 처가에 시달리고, 아래로는 똑 부러지며 필요한 것만 챙겨가고 냉대하는 며느리와 사위들에게 서운하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모습이야말로 세대 간의 완충역할을 하며 이 시대를 유지해나가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나이로는 노년을 코앞에 두고 있을지언정, 이순(耳順)이 넘어도 중년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흔히들 위에 꼰대들이 없어져야 제대로 된 변혁이 이루어질 것이라 말한다. X세대는 대부분 보수적이면서도 진보적인 위치에 서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과거의 것을 새로운 것으로 변화시켜나가는 선봉장으로서의 역할이 주어진다. 그리고 그 변화는 지금 이미 진행되어가고 있다. 이 변화의 끝에서, 그들은 더 이상 ‘희미한’ 세대로 역사에 남지는 않을 것이다.

구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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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보기

  1. 전영수(2013).『세대전쟁』. 이인시각
  2. 한겨례신문.1991년 5월 2일자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