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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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태민(1514081)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6월 21일 (일) 06:23 판 (동영상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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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이경아(1971~,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금갑리 출생, 2남 3녀로 구성 된 5남매의 셋째로 태어났다 )

거주지

경기도 광주시 송정동

지도를 불러오는 중...

가족관계

  • 남편 함종필
  • 본인 이경아
  • 아들 함태민
  • 딸 함보경

선호하는 콘텐츠

  • 드라마
  • 경연 프로그램

구성

아카이브 콘텐츠 소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큰 영향력을 지니시고 있는 어머니의 인생에 대한 기록과 스토리를 구성하여 후에 가족애 고취와 추억 공유에 도움을 얻고자 구성

정보

정보
구분 내용
일시 2020년 05월 30일 (토) 15:30~16:00
장소 경기도 광주시 송정동(자택)
진행 구술: 이경아, 채록: 함태민
채록문작성 함태민
녹음 함태민
핵심어 자녀교육 / 교육관 / 가치관 / 어머니 / 교육 / 인성 / 예의 / 존중 / 아이 / 성인 / 고민 / 사랑 / 딜레마 / 성장환경 / 중년의 삶 / 이해 / 경제 / 신앙 / 일 / 성숙 / 자식

자료출처: 키네마스터 라이브러리, 자택 앨범 촬영본, 녹취록

진도에서의 삶

어머니의 어린시절

어머니는 1971년 10월 18일에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금갑리에서 2남 3녀로 구성 된 5남매의 셋째로 태어났다.

전라남도 진도군 의산면 금갑리

당시 어머니의 집안은 농업과 어업을 같이 하는 구조로 먹고사는 것에 있어 크게 힘들지는 않았으나 그리 유복한 편이 아니었다. 거기에 집안에 자녀들이 많은 편이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부모님의 일을 일찍부터 거들며 철이 일찍 들었다. 그런 배경을 가지고 있기에 인성과 예의를 지키는 것을 크게 중요하게 여기는 생각, 자신의 자식에게는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 남자 자녀에게 관심이 더 쏠리는 남아선호사상을 보면서 자신은 그러지 말고 평등하게 잘 키워야 하겠다고 생각 하게 되었다. 그렇게 중학교까지 졸업하고 어머니는 서울로 올라와서 직업고등학교에 다니며 생활하게 됐다.

진도에서의 어머니

참고 녹취문

출생 상황에 대해서(00:00:40~00:02:34)

(나) 네! 출생 시 상황 먼저 알려주시겠어요. 어머니?

(모) 출생 시 상황이요? 전남 진도이고 가족은 이남 삼녀 중에 셋째에 생계방식은 농업과 어업, 사회적 지휘는 없죠…(웃음)

(나) 어머니가 커가시면서 어떤 과정을 가지셨나요?

(모) 어... 교육은 엄마에게 가정교육을 받았고 지역사회 교육과.. 진도에서 중학교까지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학교생활은 그냥 평범한 학생?

성남에서의 삶

고등학생이 되어 상경한 어머니

고등학생이 되어 서울로 올라온 어머니는 직업학교에 들어가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렇게 22살까지 생활을 하다가 아버지를 만나 연애를 하게 된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연애

둘은 모두 경제적으로 넉넉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연애를 하며 둘이 함께 살아간다면 더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에 1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둘은 1994년 02월 20일에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게 된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혼식

그리고 결혼을 하고 2년 후, 어머니와 아버지는 첫 아이로 아들(나)을 얻게 된다. 그리고 자리를 잡기 위해서 성남의 상대원 1동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큰삼촌이 하는 양말을 만드는 작은 공장에 취직해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생활은 하게 되었다.

삼촌의 공장에서의 일들

어머니가 큰삼촌의 공장에 다니던 시기에는 공장의 바로 근처에 세를 들어 살았다. 지하에는 공장과 창고가 있었고 윗집이 삼촌의 집, 그리고 그사이에 우리 집이 있었다. 그랬기에 특히 삼촌 가족들과 친하게 지내며 이곳저곳 함께 놀기도 하며 많은 교류를 했다. 그리고 공장이 10인 이내의 소규모였기에 분위기는 자유롭고 화목한 편이었고. 나 또한 내려가 작은 일을 도우며 용돈을 받기도 하며 평온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999년, 어머니는 둘째 딸을 얻게 된다.

함께 놀고있는 동생과 나

교육에 대한 생각

어머니는 자식에게 책을 읽게 하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책을 읽히는 것이 자녀의 성장에 크게 도움을 준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렸기에, 어머니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에 신경을 쓰고 그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며 권장했다. 그렇게 자녀에게 어릴 적부터 책을 읽는 습관을 들여주어 지금도 자녀들이 많은 책을 읽고 있는데 영향을 끼쳤다.

아들의 속 썩임

아들(나)은 어린 시절부터 위험한 장난을 자주 쳤다. 산에 있어 경사가 높고 어지러운 건물 사이를 타 넘으며 지름길을 찾는 것을 좋아했고. 바퀴가 달린 것을 타고 내리막길을 내려가곤 해서 위험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번은 내리막길을 한참 따라 도로까지 내려가 경찰이 보호하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것을 알기에 어머니는 누굴 닮아서 그러냐며 속상해하며 걱정하였다. 아들의 사고 소식과 신앙 때는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의 열기가 다 빠지지 않았을 시기인 2003년도, 아들이 집 앞 골목길에서 축구를 하다가 급하게 움직이는 차에 치여 크게 다치고 만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는 많이 놀라 자식이 살아만 있어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가끔 다니던 교회에서 힘들 때 같이 있어주고 도와준 것에 호감을 느끼고 신앙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2주의 입원 생활과 큰 수술이 있었지만, 다행히 잘 치료되어서 아들은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경험이 자식을 교육하는 것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광주에서의 삶

광주에 처음 이사를 오게 된 것은 삼촌의 사업이 잘 안 되어 공장을 접게 되고 집값이 자꾸 오르면서 안정적인 삶을 위해 집에 대한 소유 욕구를 강하게 느껴서였다. 그 당시 경기 광주는 성남의 근처이고 집값은 아주 낮은 편이었기에 이에 집을 구매하여 그곳에서 터를 잡았다.

어머니의 삶과 아버지와의 다툼과 합의

그렇게 자리를 잡고 살아가던 중 커진 집과 멀어진 직장에 힘듦을 느낀 어머니는 자신 또한 일하며 돈을 버는데 왜 자신이 집안일도 다 하고 자식도 다 키우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며, 아버지와의 대립하게 된다. 그리고 항상 입버릇처럼 자식들에게도 부부는 일을 나눠서 해야 하며 동등하고 너희는 그러면 안 된다고 교육을 하게 된다. 그렇게 5년 동안은 대립각을 세우고 어르고 달래며 이혼 이야기까지 나오는 시기도 있었지만, 차츰차츰 합의점을 찾아 조율해 나가게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가게 사업과 갈등

아버지와 어머니는 신앙에 대한 문제로 많이 싸우셨다. 어머니는 일요일에는 아버지도 반드시 교회에 오게 하고 싶어 하였고, 아버지는 신앙보다는 경제적인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하며 일요일에 쉰다면 중식 요리사라는 직업에 큰 무리가 갈 것이라고 생각하며 반대했다. 이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설득해 둘이 가게를 차려 운영하고 일요일에 쉬는 방향으로 가자고 했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그렇게 하면 가게가 금방 망할 것이라고 하며 반대를 하였지만, 어머니의 강한 권유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같이 사업을 하시면서 싸우기도 많이 싸우셨지만, 그보다 더 많이 친해지셨다. 그리고 많이 이야기를 하며 서로를 더욱 알아가고 양보하며 합의점을 찾아갔다. 가게 운영 중단과 화목 그렇게 3년, 계속 가게를 운영하면서 조금씩 이윤은 생겼지만, 삶이 너무 힘들다고 여긴 어머니는 둘이 따로 일할 때가 벌이도 더 좋고 삶의 질 또한 높다고 생각해서 가게를 인계하고 다시 맞벌이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자녀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서 손이 작게 가고 집안일 또한 분담할 수 있게 되어서 온 가족이 분담해서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가족에는 예전보다 비교적 화목해질 수 있었다.

참고 녹취문

자녀교육에 있어서 교육관과 가치관(05:00 ~ 07:53)

(나) 어머니의 자녀교육에 좀 더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어머니의 교육관이나 가치관,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거나 교육하고 싶은 그런 교육관이나 가치관이 있을까요?

(모) 교육관? 음... 어… 내가 조금 어렸을 때는 초창기 때는 어… 약간... 인성과 예의 그런 거를 많이 중요시 여겼고. 지금은 이제 아이들이 다 컸기 때문에 존중하면서 키우자 한 인간으로서 존중을 좀 해줘야 되겠다. 그런 생각으로, 지금은 그런 것 같아

(나)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예전에 어머님이 저한테..

(모) 옛날에는 나도 어렸기 때문에 좀 약간의 강압적인 그런 게 있었는데. 지금은 나이도 어느 정도 먹었고. 성인이 되기 때문에 한사람으로서 존중을 해줘야 된다는 그런 생각이 생긴 것 같아

(나) 우리 어머니가 약간 그... 방목주의? 그런 게 있잖아요?

(모) 어... 옛날에는 좀 그랬었지

(나) 어.. 엥간하면 자식의 그 힘들게 하지않는? 그런게 있잖아요?

(모) 그거에 놓고는 항상 의문은 생기는 것 같아. 좀 강하게 해야지 맞는 것인지. 아니면 좀 사랑을 많이 주는 게 맞는 것인지는 좀 고민은 하지만 나는 항상 후자 쪽이 맞다고, 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자식 키우는 것에 대한 답은 없는 것 같고 지금도 항상 의문은 드는 것 같아. 그렇게 했더라면 쟤네들이 조금 더 나은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의문은 갖지

(나) (웃음) 그건 좀 딜레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게 어머니의 과거 교육하고도 관련이 있을까요??

(모) 관련은 있는 것 같은데..?

(나) 어떻게 관련이 있을까요??

(모) 나도 그렇게 조금.. 그렇게 자라는 왔는데 옛날에는 형제가 많았기 때문에 각자 존중 받는 게 조금 작을 수 있지.

(나) 그렇죠. 아무래도 많으면은…

(모) 아무래도 남아선호사상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그런 건 담지 말아야 되겠다 하면서 키우긴 했죠.

중년의 삶

그렇게 책임을 나눠서 지고 안정된 생활은 계속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가족들은 일요일에는 함께 모여 교회에 가고 다녀와서 함께 식사한다. 그리고는 함께 행사를 하거나 아니면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곤 한다. 어머니는 안정된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다고 하였다.

참고 녹취문

중년의 삶(10:20 ~ 11:49)

(나) 어머니 중년에 삶에 대한 그런 건.. 저희..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나 깨달음이나 그런 게 있을까요?? 없으시면 답 안 해주셔도 괜찮습니다

(모) 중년의 삶.. 나는 20대 30대 40대 동안에는 좀 뭔가 방황도 하고 완성되지 못한 인생이었다면? 그래도 지금은 좀 만족도가 높은 것 같아. 20대에는 좀 불만족스러웠는데 지금은 좋은 것 같아요. 다방면에서 이해를 하게 됐고, 자식들도 많이 컸고 그렇기 때문에(웃음). 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쪽이기 때문에. 조금 음.. 다방면에서 만족스러워 경제적인 것도 아주 힘들지 않고 자식들도 많이 힘들지 않고 그리고 전반적으로 일단은 내 자신이 많이 성숙되었달까? 이해도가 많이 성숙되었기 때문에 많이 좋은 것 같아. 그리고 그 속에는 신앙적인 문제도 있고.

(나) 감사합니다.

자료

동영상 콘텐츠

어머니의 삶.mp4

(https://drive.google.com/file/d/1ICA9cd7MqJmLtG4y5NsDqktcTfRd--9e/view?usp=sharing)

자료

(구글 드라이브 함태민)

이경아 구술채록 계획, 질문지

아카이브와 콘텐츠 기말프로젝트 성찰보고서

아카이브와 콘텐츠 어머니의 삶

면담일지

이경아 구술채록 녹음본

이경아 녹취문

https://drive.google.com/drive/folders/1m5R5iZlu5oGIeSqTx27KkMKbhYmLVlO1?usp=shar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