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당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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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 ㄱ당
 1928년 대구에서 조직된 만주 지역의 독립군 보강을 위한 비밀결사.

내용

개설

효과적인 항일투쟁을 위하여 1927년에 신간회(新幹會)가 국내에서 활동하는 합법적 단체로 조직되었으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 인사 간에 이념 차이와 사회주의 내부의 알력으로 민족 운동은 통일적, 효과적으로 전개되지 못하였다.

이에 신간회의 대구지회 간부인 노차용(盧且用), 장택원(張澤遠), 정대봉(鄭大鳳), 이상화(李相和), 문상직(文相直) 등이 1928년 4월 문상직의 하숙집에 모여 독립운동을 위한 단체구성을 협의하였다.

칠곡 출신의 장택원이 소속된 ㄱ당은 1928년 5월 무렵 대구의 달성공원 숲속에서 만들어진 비밀결사이다.

역사적 배경

ㄱ당은 ‘ㄱ’을 한글의 첫째로 한국의 바탕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 비밀결사의 조직 과정을 보면,

1928년 4월 무렵 대구에서 문상직(文相直)과 신간회 대구지회 회원 노차용(盧且用)·장택원(張澤遠)·정대봉(鄭大鳳) 등은 신간회나 근우회를 통한 야학 운동과 강연회 활동으로서는 독립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보다 더 직접적인 방략이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여 만들게 되었다.

목적

 ㄱ당은 ‘청년들을 모아 광동 군사학교에 유학시키고 만주 방면의 미개지를 개척, 실력을 양성하여 조선 혁명 독립’을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발단

1928년 5월 무렵 문상직, 장택원 등은 대구에서 신간회 부산지회와 부산 노우회에서 활동하던 이강희(李康熙), 독립운동을 위해 전국을 누비던 유상묵(柳商黙) 등과 함께 달성군 성북면 산격동 냇가에 모여 구체적인 투쟁 방법을 숙의하고,

5월 20일 달성공원에서 ㄱ당이라는 이름의 비밀결사를 결성하였다.

경과

ㄱ당의 목적과 강령을 보면, 우선 목적

 ‘본회는 조선인 중 전도 유위한 청년을 모아 광동(廣東) 군관학교에 유학시키는 한편, 만주 방면의 미개지를 개척하고 실력을 양성하여 조선의 혁명과 독립을 꾀한다’

였고, 강령으로는

‘①조선민족의 절대 해방을 기한다. ②우리 운동의 활동무대는 만주에 둔다’

고 정하였다. 부서와 임원으로는 재무부에 노차용·장택원, 조사부에 이강희·유상묵, 연구부에 정대봉·문상직 등으로 재무부, 조사부, 연구부를 두고 임원을 정했다.

ㄱ당은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1928년 6월 11일 노차용, 곽동영 등은 둔산동(屯山洞)[현 대구광역시]의 부호 김교식(金敎式) 집에 들어가 잡지 발행 비용이라는 명목으로 위협하여 5천원의 약속어음을 적게 했다.

김교식은 도장을 숙부가 가지고 있으니 후일 등기 우편으로 보낼 것을 약속해 밤을 세우고 12일 아침에 나왔으나 정보를 입수한 대구경찰서의 경찰에 의해 검거되면서 조직이 해체되고 말았다.

결과

일제 경찰 당국은 ㄱ당사건을 빌미로 신간회 대구지회에 대한 탄압을 가했으며,

1927년 7월 무렵 곽동영[달성군 유가면 가태리, 28세], 노차용[경남, 당시 대구 거주, 25세], 문상직[고령군 고령면 중화동, 36세], 유상묵[의성군 점곡면 동변동, 34세], 장택원[칠곡군 인동면 신동, 28세], 정대봉[전남, 당시 대구 거주, 26세] 등

관련자 10여 명을 검찰에 송치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작성자 및 기여자

우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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