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한부모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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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인터뷰

인터뷰 실행자: 진근탁

인터뷰 대상자: 박기림

인터뷰 대상자 소개

소개

1964년 2월 26일 경기도 성남에서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오빠, 2명의 언니와 함께 가난하지만 마음은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신보다 3살 연상의 남성과 결혼해서 딸 하나, 아들 하나의 4인 가정으로 이루고 있다.

거주지

서울 동대문구

지도를 불러오는 중...

어머니가 살아온 이야기

어린 시절

1980년대 성남 모란시장

아버지나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는 가족 형태를 한부모 가정이라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도 한부모 가정의 아이는 많은 어려움과 슬픔을 겪으면서 자라나게 된다.

그렇다면 이전이었던 1960년, 1970년. 우리 부모님 세대의 한부모 가정은 어떠했을까?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어머니는 경기도 성남에서 태어나서 결혼하기 전까지 쭉 성남에서 자란 성남 토박이이다.

한 명의 오빠와 두 명의 언니를 뒤이어 어머니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홀로 남은 외할머니는 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모란 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하셨다.

그렇게 홀로 돈을 버는 외할머니 아래에서 어머니는 비교적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집안의 기둥인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고, 외할머니가 그 역할을 홀로 전부 수행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따랐다.

다행스럽게도 어머니는 오빠와 언니들의 보살핌 아래에서 무난하게 국민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되고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고등학교까지 별 탈 없이 자란 어머니는 졸업하고 나서 바로 일을 시작했다.

당시 가정 상황이 가난했기도 했고, 시대상과 사회상도 여자들은 대학을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대다수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렇게 작은 의류 공장에 들어가서 일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힘쓰는 외할머니를 위해서 누구보다 빨리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일을 하던 도중에, 맞선이 들어왔다고 한다. 맞선 상대는 자신보다 3살 위의 진귀수씨.

작은 키의 공무원 남성은 자기보다 큰 키의 어머니에게 호감을 느껴서 만나보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당시에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던 공무원과 의류 공장 직원인 두 사람의 결혼은 가난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성남의 단칸방에서 지내던 두 사람. 그러나 서로 열심히 일하며 지내던 도중, 첫 번째 아이를 가지게 된다.

그 아이는 딸인 진현아로 결혼하고 약 4년 뒤인 1995년에 출산하게 되었다.

아이의 출산과 동시에 강남에 있던 공무원 아파트로 들어가게 된다.

임신 전에 일을 그만두고 첫 육아를 시작하게 된 어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아이로 인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이야기했다.

가난했지만 돌잔치도 열어서 아이의 탄생을 양가의 어른들에게 축하받기도 했다.

첫 아이의 출산 뒤 1년, 두 번째 아이를 가지게 된다.

그 아이는 아들인 진근탁으로 1997년에 무사히 출산하게 되었다.

아이의 출산과 동시에 IMF사태가 터지게 된다.

당시에 많은 직장인이 회사로부터 잘리게 되거나 사업이 망하는 등 나라와 가정의 기둥이 흔들리는 시기였다.

다행히 남편이 공무원이라서 남들처럼 큰 피해는 입지 않을 수 있었다.

이에 당시의 공무원은 할 게 없는 사람들이 하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공무원 시험의 난이도도 말도 안되게 낮았으며 경쟁률 또한 현시대처럼 빡빡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IMF의 여파로 인해서 아들인 진근탁의 돌잔치는 열 수가 없었다.

지금은

꾸준히 아이들을 육아하며, 남편을 내조하던 어머니.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자, 더이상 남편 홀로 버는 돈으로는 두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공부를 하지 않았던 탓인지,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는 2년동안 허탕만 칠 뿐이었다. 그렇게 공인중개사를 포기하고 다시 주부로 돌아온 어머니는 집에서 취미로 하던 수공예에 더 흥미를 붙여서 주민센터에서 하는 강의에도 많이 출석하여 실력을 쌓았다.

그로부터 2년 뒤. 아는 언니로부터 일의 소개를 받는다. 가구의 나사 자국을 가려주는 스티커를 붙이는 일이었다. 아이들의 과외비, 대학 등록금,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다시 일에 뛰어든 어머니는 2020년에도 열심히 생업의 전선에서 활동 중이다.

홀로 어머니를 키웠던 외할머니는 1970년부터 병으로 인해서 움직이지 못하던 2016년까지 계속해서 모란시장에서 장사했다. 지병때문에 몸도 좋지 않았던 외할머니는 그래도 편찮은 몸을 이끌고 계속해서 수십년의 시간이 지난 모란시장을 향했다.

외할머니는 이후 2018년, 지병으로 인해서 성남에서 같이 살던 어머니의 작은 언니의 집에서 돌아가셨다. 한부모 가정이지만 홀로 2명의 부모 역할을 해준 외할머니에게 어머니는 누구보다 감사의 마음을 품었다. 아직도 작은 언니와 외할머니가 살던 성남에 가면 누구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떠올린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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