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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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극문학은 무대 공연과 무대극 상영을 목적으로 하는 문학이며 희곡 및 각본 혹은 시나리오 등이 극문학의 범주에 속한다.

문학의 분류

2분법

운문 - 운율을 중시하는 문학 형태로, 대상을 종합적으로 파악하여 표현

산문 - 운율의 구속을 받지 않는 문학 형태로 , 그 대상을 분석적으로 표현한다.


3분법

서정문학 - 시인 자신의 주관적 체험을 그 고조된 감정 상태를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문학

서사문학 - 사건을 서술자의 서술에 의해 전달하는 문학의 양식. 시간의 경과에 따라 서술하는 것이 일반적

""극문학"" - 서사 문학과 같이 사건을 전달하지만 연극을 전제로 만들어지는 문학으로 서술자의 개입 없이 행동과 대화로 사건을 표현하는 문학

극문학의 역사

  • 개화기문학 : 현대문학사에서 최초로 꼽히는 것은 1906년에 발표된 이인직(李人稙)의 신소설 《혈(血)의 누(淚)》이며, 최초의 신시(또는 신체시)는 최남선(崔南善)이 1908년에 발표한 《해(海)에게서 소년에게》이다. 이 무렵의 문학을 ‘개화기문 학’이라 하며, 좁은 의미에서 이것을 ‘신문학’이라고도 한다. 이인직의 《귀(鬼)의 성(聲)》 《은세계》 《치악산》, 이해조 (李海朝)의 《자유종》 《빈상설(上雪)》 《모란병(牡丹屛)》 《춘외춘(春外春)》, 최찬식(崔瓚植)의 《추월색(秋月色)》, 구연학(具然學)의 《설중매(雪中梅)》, 조일제(趙一齊)의 《장한몽(長恨夢)》 등 신소설과, 이 무렵의 창가(唱歌)로서 최남선 의 《경부철도가(京釜鐵道歌)》 등이 모두 개화기문학에 포함된다. 그 주제는 젊은이들과 여성의 해방, 관습의 개혁, 계급타파 등 근대적 자각을 나타낸 것이 많으며 시와 소설이 대개 과거의 양식을 버리고 본격적인 문학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 계몽문학 : 신소설 이후 1910년대 말까지는 이광수(李光洙)의 독무대로서, 그의 역할이 주목된다. 1910년에 발표된 그의 처녀작인 단편 《어린 희생》은 신문학사상 최초의 단편이다. 장편 《무정(無情)》(1917∼1918)은 최초로 성공한 근대 장편소설로서 한국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 후 《흙》 《재생(再生)》 《개척자》 《마의태자》 등 장편 및 역사소설을 많이 남겼다.
  • 예술지상파의 문학 : 《창조(創造)》 《폐허(廢墟)》 《백조(白潮)》 등의 동인지가 등장하여 이광수의 문학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이광수의 문학이 민족을 계몽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겠다는 목적의식을 분명히 함으로써, 문학이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반박하고 나선 대표적인 작가는 김동인(金東仁)이었다. 주요한(朱耀翰)·염상섭(廉想涉)·전영택 (田榮澤)·홍사용(洪思容)·박종화(朴鍾和)·이상화(李相和)·현진건(玄鎭健)·나도향(羅稻香) 등이 비록 계보는 달랐지만 문학의 경향은 모두 같았다. 이들의 문학은 그 후 ‘예술지상파(藝術至上派)의 문학’이라 불렸으며, 1919년에 처음으로 순문예지 《창 조》가 나온 데 이어 여러 동인지들이 나왔으나 1923년경부터 이들은 ‘프로문학’의 도전을 받기 시작하였다.
  • 프로문학 : 프로문학이란 프롤레타리아의 문학을 약칭한 것으로 무산계급의 해방을 위한 계급투쟁으로서의 문학을 표방했으며, ‘신경향파(新傾向派)의 문학’으로도 불렸다. 이것은 소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문예사조에 입각해서 사회주의 사상을 고취한 문학이며, 백조파(白潮派) 김기진(金基鎭)이 1923년 《개벽(開闢)》지에 《클라르테 운동의 세계화》를 연재하여 프로문학시대의 막을 열었다. 여기에 박영희(朴英熙)가 합세, 프로문학운동을 적극화시키면서 1925년에는 카프(KAPF: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가 조직되고 최서해(崔曙海)·이기영(李箕永)·조명희(趙明熙)·임화(林和) 등의 활동이 1920년대 말까지 왕성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20년대 후반에 이르러 프로문학은 잃어버린 예술성 때문에 김기진과 박영희 사이에 논쟁이 일어나고, 1931년과 1934년 두 차례에 걸쳐 카프 소속의 70∼80명이 한꺼번에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935년에는 해산계를 내고 와해됨으로써 그 후 우리 문학은 ‘순수문학’시대로 접어들었다.
  • 순수문학 : 순수문학의 주축이 된 문인은 구인회(九人會)에 속한 이태준(李泰俊)·이효석(李孝石)·유치진(柳致眞)·정지용(鄭芝溶)·김기림(金起林) 등인데, 이들은 모두 이념적으로 사회주의 문학에 반대했고 문학이 사회운동의 수단으로 예속되는 것도 반대했다. 그리하여 사상성·목적성·사회성이 배제된 순수문학 이론이 평론가 김환태(金煥泰)에 의해 정립되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돈(豚)》, 김유정(金裕貞)의 《봄봄》 《동백꽃》 《금따는 콩밭》, 이상(李箱)의 《날개》 《봉별 기(逢別記)》, 유진오(兪鎭午)의 《김강사와 T교수》, 이무영(李無影)의 《흙의 노예》, 최정희(崔貞熙)의 《인맥(人脈)》 《 지맥(地脈)》, 김동리(金東里)의 《무녀도(巫女圖)》 《바위》 등이 모두 이 시대의 대표작이다. 그리고 김기림에 의한 모더니즘 운동과 함께 이상의 연작시 《오감도(烏瞰圖)》와 김광균(金光均)의 《와사등(瓦斯燈)》, 박용철(朴龍喆)의 《떠나가는 배》, 정지용의 《백록담》, 신석정(辛夕汀)의 《너는 비둘기를 부러워하더구나》 등 순수파의 수작들이 이 시대에 나왔다. 한편 이 같은 문학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서정성(抒情性)과 예술성을 살린 작품 김영랑(金永郞)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육사(李陸史)의 《광야》 《청포도》 등은 민족의식이 잘 표현되었고, 1920년대부 터 민요적 전통을 계승해 온 김소월(金素月)의 《진달래》 《산유화》 등 많은 시는, 서정적 가락으로 민족의 애환을 읊어 공감의 폭을 넓혀 가며 일제강점기의 시단을 장식했다. 또 한용운(韓龍雲)의 《님의 침묵》은 기교와 주제의 깊이, 특히 항일정 신과 신앙심 및 서정적 감각을 모두 조화시킨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 암흑기 : 순수문학은 그 후 암흑기를 맞이한다. 시인 윤동주(尹東柱)는 ‘조선인 학생민족주의 사건’으로 일본 후쿠오카[福岡] 감옥에서 복역 중 생체실험으로 옥사한 것이 거의 확실하며, 이육사(李陸史)는 베이징[北京] 감옥에서 옥사했고, 이윤재 (李允宰)·한징(韓澄) 등 국어학자들은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옥사했다. 1937년 일본은 중·일전쟁을 일으킨 후 1939년 친일·반민족 문학단체인 조선문인협회를 조직했다. 1941년 당시의 대표적 문예지 《문장(文章)》을 폐간시키고, 그 해 《인문평론 (人文評論)》을 《국민문학》으로 바꾸어 한국어 반 일본어 반의 체제를 일본어 일색으로 바꾸게 하였다. 또 1940년에는 《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민족지를 폐간시켜 한국어에 의한 문학활동을 말살시키려고 하였다. 한편, 유진오·김동인 등 소 설가와 주요한·김소운(金素雲)·노천명(盧天命)·김동환(金東煥)·서정주(徐廷柱) 등 시인과 최재서(崔載瑞)·박영희·김기진·김 문집(金文輯)·백철(白鐵) 등 평론가들이 더러는 심하게, 더러는 소극적으로 반민족적 친일파문학을 발표했다. 이로써 1940년대 전반은 암흑기로 기록된다.
  • 해방문학 : 1945년 8·15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문학은 ‘해방문학’의 시기를 맞는다. 모국어를 마음껏 구사할 수 있는 문학시 대, 표현의 자유를 얻은 문학시대, 민족적 자각과 함께 민족적 유산에 대한 모든 발견과 연구가 가능해진 시대로서 문인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그러나 38선에 의한 국토분단으로 문단도 남북으로 갈라졌으며, 서울에서는 좌우익의 문학단체가 양립하여 1948년의 정부수립 전까지 시인 임화를 비롯하여 이태준·박태원(朴泰遠)·김동석(金東錫)·이원조(李源朝) 등이 월북했다. 그리고 해방문단은 그같은 이념의 갈등이 문학논쟁으로 나타나서 김동리·조연현(趙演鉉) 등 순수문학파와 김동석 등 프로문학파의 논쟁은 매우 치열했다. 그 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좌익문인은 사라지고 순수문학이 한국문학의 주류를 형성했으나 곧 6·25전쟁이 일어났다.
  • 전쟁문학 : 6·25전쟁을 겪으면서 한국문학은 본격적으로 이념적 갈등을 소재로 한 문학을 가졌고 현실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딪쳤다. 이때부터 1950년대 말까지의 문학은 주로 ‘전쟁문학’의 테두리에 포함되며, 1953년 휴전 후의 문학을 ‘전후문학’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시대의 문학이 전쟁 전의 문학과 다른 것은 해방문단에서의 좌우익 문제가 주로 이념적 논쟁 형식으로만 나타난 데 비하여, 전쟁 당시와 그 후의 문학은 실제로 피를 흘리는 비참한 양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나타난 점이다. 장용학(張龍鶴)의 《요한시집》 《상립신화(喪笠新話)》 《현대의 야(野)》에서는 특히 6·25전쟁의 참혹한 양 상으로서의 좌우익의 유혈과 이념의 극복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다. 황순원(黃順元)의 《학》이나 이범선(李範宣)의 《학마을 사람들》, 오유권(吳有權)의 《방아골 혁명》, 강용준(姜龍俊)의 《철조망》, 하근찬(河瑾燦)의 《수난이대(受難二代)》 등 은 모두 동족상잔의 참상을 고발한 작품들이다. 그리고 강신재(姜信哉)의 《임진강의 민들레》, 박경리(朴景利)의 《시장과 전장》, 정한숙(鄭漢淑)의 《끊어진 다리》 등 장편도 모두 문제작이다. 그 후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부가 무너지고 젊은이들의 현실참여 의식이 커졌다. 특히 1950년대 후반기에 등장한 평론가들 중 김우종(金宇鍾)·김병걸 (金炳傑) 등이 선두가 된 참여문학운동은 그 후 범문단적 양상으로 확대되었고, 1960년대 후반부터는 백낙청(白樂晴)·염무웅 (廉武雄)·구중서(具仲書) 등에 의하여 그 운동이 확대되고 시인 김수영(金洙暎)에서 김규동(金奎東)·신경림(申庚林) 등으로 이어지며 1970년대까지 각계로 확산되었다. 그러므로 1960~1970년대의 문학의 주류는 참여문학이면서 계속 순수문학과의 논쟁이 거듭된 셈이다.

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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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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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밎 기여자

작성자 이선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