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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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김소월(1902년 9월 7일 ~ 1934년 12월 24일)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서구 문학의 풍조가 범람하던 시기에 민족 고유의 정서에 기반한 시를 쓴 민족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창작 능력을 인정받아 1981년 금관문화훈장(1등급)에 추서되었다. 대표작품은 「진달래꽃」, 「초혼」, 「접동새」, 「먼 후일」 등이 있으며, 일부 시는 가곡으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생애

  • 1902년 평안북도 구성군 구성면 왕인동 외가에서 9월 7일 출생.[1][2]
  • 1905년 조국이 식민지화의 길로 치닫게 됨. 이때 즈음 유학/한문에 소양이 높은 할아버지의 훈도 밑에서 구학문을 배우기 시작. 어린 소월은 수많은 민담·민화 등을 들려주었던 숙모 ‘계희영’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됨.
  • 1915년 남산보통학교 졸업. 5월 오산중학교에 입학하여 안서 김억과 사제관계를 맺음. 이때 소월 시의 원천이 된 한시·민요·서구시 등을 본격적으로 접했던 것으로 추정됨.
  • 1916년 문학부에서 시를 짓기 시작함. 「먼 후일」을 썼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음.
  • 1920년 김소월은 김억의 응원으로 1920년, 그의 나이 18세에 ‘창조’ 5호에 시를 실으며 등단함.
  • 1922-1923년 배재학당 시절, 시인으로서 가장 활발히 활동함. 1922년 한 해에만 50여편의 시를 발표, 이 시기 소설가인 나도향과도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됨.
  • 1925년 시집 『진달래꽃』을 내고, 5월 『개벽』에 시론 「시혼(詩魂)」을 발표함.
  • 1934년 12월 23일 평안북도 구성군 자택에서 사망. 죽음의 원인은 마약중독으로 인한 병사로 추정됨.

가족

가족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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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표

이름 관계 비고
홍단실 부인
계희영 숙모
김정호 아들 다섯째(셋째 아들)

작품 목록

김소월의 작품을 모두 모아 목록화하였다.[3]
[펼치기]를 눌러 수록된 시의 목록을 자세히 볼 수 있다.
  • 『진달래꽃』은 김소월이 생전에 유일하게 편찬한 시집이다. 총 16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126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진달래꽃』

[1부]- 먼 후일 / 풀따기 / 바다 / 산 우헤 / 옛니야기 / 님의 노래 / 실제失題 / 님의 말슴 / 님에게 / 마른 두덕에서

[2부]- 봄밤 / 밤 / 꿈꾼 그 옛날 / 꿈으로 오는 한 사람

[3부]- 눈 오는 저녁 / 자주 구름 / 두 사람 / 닭 소래 / 못 니저 / 예전엔 밋처 몰낫서요 / 지나깨나 안즈나 서나 / 해가 산 마루에 저므러도

[4부]- 무주공산 /꿈 / 맘 켱기는 날 / 하눌끝 / 개아미 / 제비 / 부헝새 / 만리성 /수아

[5부]- 한때 한때 / 담배 / 실제 / 어버이 / 부모 / 후살이 / 니젓든 밤 / 봄비 / 비단안개 / 기억 / 애모 / 몹쓸 꿈 / 그를 꿈꾼 밤 / 여자의 냄새 / 분粉 얼골 /안해 몸 /서울 밤

[6부]- 가을 아츰에 / 가을 저녁에 / 반달

[7부]- 맛나려는 심사 / 옛 낫 / 깁피 밋든 심성 / 꿈 / 님과 벗 / 지연 / 오시의 눈 / 셔름의 덩이 / 낙천 / 바람과 봄 / 눈 / 깁고 깁픈 언약 / 붉은 조수 / 남의 나라 땅 / 천리만리 / 생과 사 / 어인 / 귀뚜람이 / 월색

[8부]- 불운에 우는 그대여 / 바다가 변하야 뽕나무밧 된다고 / 황촉 / 맘에 잇는 말이라고 다 할까 보냐 / 훗길 / 부부 / 나의집 / 새벽 / 구름

[9부]- 여름의 달밤 / 오는 봄 / 물마름

[10부]- 우리 집 / 들도리 / 바리운 몸 / 엄숙 /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섭 대일 땅이 잇섯더면 / 밧고랑 우헤서 / 저녁 때 / 합장 / 묵념

[11부]- 고독 / 열락 / 무덤 / 비난수하는 맘 / 찬저녁 / 초혼

[12부]- 여수

[13부]- 진달내꼿 / 개여울의 노래 / / 개여울 / 가는 길 / 왕십리 / 원앙침 / 무심 / 산 / 삭주구성 / 널 / 춘향과 이도령 / 접동새 / 집 생각 / 산유화

[14부]- 꼿촉불 켜는 밤 / 부귀공명 / 추회 / 무신 / 꿈길 / 사노라면 / 사람은 죽는 것을 / 하다못해 / 죽어달 내가 올나 / 희망 / 전망 /나는 세상모르고 사랏노라

[15부]- 금잔듸 / 강촌 / 첫 치마 / 달마지 / 엄마야 누나야

[16부]- 닭은 꼬꾸요

『소월시초』

팔배개 노래조 / 차 안서선생 삼수갑산 운 / 제비 / 장별리 / 고적한 날 / 신앙 / 고만두풀 노래를 가져 月灘에게 드립니다 / 해 넘어 가기 전 한참은 / 생과 돈과 사 / 돈타령 / 기분전환 / 제이ㆍ엠ㆍ에쓰[4] / 기원 / 건강한 잠 / 상쾌한 아츰 / 기회 / 고향 / 고락 /의와 정의심

미수록 작품

낭인의 봄 / 야夜의 우적雨適 / 오과午過의 읍泣 / 그리워 / 춘강 / 거츤 플 허트러진 모래동으로 / 죽으면? / 이 한밤 / 사학월 / 은대촉 / 문견폐 / 춘채사 / 함구 / 일야우一夜雨 / 하눌 / 등불과 마조 안젓스랴면 / 공원의 밤 / 맘에 속읫사람 / 가을 가는 봄 삼월 / 꿈자리 / 깁흔 구멍 / 길손 / 달밤 / 눈물이 쉬루르 흘러납니다 / 어려 듯고 자라 배와 내가 안 것은 / 나무리벌 노래 / 차車와 선船 / 이요俚謠 항전애창명주딸기 불칭추칭 / ?님을 따라가다가 꿈 깨여 탄식함이라 / 옷 / 배 / 가막덤불 / 옷과 밥과 자유 / 자전거 / 불탄 자리 / 5일 밤 산보 / 비소리 / 돈과 밥과 맘과 들 / 잠 / 첫눈 / 봄 못 / 둥근 해 / 바다까의 밤 / 져녁 / 흘러가는 물이라 맘이 물이면 / 칠석 / 대수풀 노래 / 생의 감격 / 길차부 / 단장 1 / 단장 2 / 드리는 노래 / 고독 / 박넝쿨 타령 / 늦은 가을비 / 기억 / 절제 / 술 / 빗 / 성색聲色 / 술과 밥 / 세모감

  • 김소월은 생전에 중국의 한시를 번역하는 국역 작업도 열심히 하였다. 아래 목록은 그가 직접 번역한 작품 12편을 모은 것이다.

한시 번역 작품

한식 / 춘효 / 밤가마귀 / 진회에 배를 대고 / 봄 / 소소소 무덤 / 나홍곡 / 이주가伊州歌 1 / 이주가伊州歌 2 / 장간행 / 위성조우 / 해 다 지고 날점으니

  • 문학사상에서 발굴한 김소월의 발표되지 않은 작품들 8편을 목록화하였다.

미발표 작품

가련한 인생 / 니불 / 마음의 눈물 / 벗과 벗의 넷님 / 봄과 봄밤과 봄비 / 봄바람 / 비 오는 날 / 인종

작품 세계

작품 경향

소월의 작품 세계는 '한의 정서' 에서 비롯된다. 그의 생애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민족적 배경과 순탄하지 않았던 가정사가 소월 시에 나타나는 '한의 정서'의 기반이 되었다.
소월은『먼 후일』에서 임을 잊지 못해 그리워하는 마음을 '잊었노라'라는 반어적 표현으로 반복함으로써 한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진달래꽃」에서는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진심을 대신하여 임을 보내고,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 말한다. 그립고 슬픈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 감정이 '한'으로 이어져 독자의 가슴에 사무쳤다. 한 맺혀 응어리진 마음은 동시에 슬픔을 극복하려는 의지로 표현되기도 한다.

소월의 또다른 시 「」에서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나그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를 통해 일제강점기 시대, 나라를 잃고 몸과 마음 둘 곳 하나 없었던 처지를 드러낸다.「」에서의 '한'은 억압과 탄압의 시대 를 살았던 사람들의 애환을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소월 시에서 나타나는 '한의 정서'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임과의 이별 상황에서 느끼게 되는 '한'과 조국을 잃은 비애로부터 표출되는 '한'이다. 하지만 이 두 갈래의 감정을 명확히 구분 짓기는 어렵다. '한'에는 하나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원망·안타까움 등의 복합적인 감정이 얽혀있다. 일제의 탄압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좋지 못했던 소월의 가정사를 고려한다면, 소월 시에 등장하는 '한'은 여러 감정이 뒤섞여 토해낸 울분이라고 할 수 있다.[5]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와 「님에게」라는 시를 보면, 여성이 임을 그리워하며 시를 작성한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대부분의 시적 화자를 당대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으로 설정했다. 「초혼」처럼 남성적 절규를 표현한 작품도 있으나 극히 예외적이고, 그의 시 대부분은 상처 입은 여성의 애절한 마음을 그려내고 있다. 운명론적 인생관을 가진 수동적 여성이 자기희생적인 태도로 시를 전개하여 민요적 특성을 강화했고, 애절한 마음을 섬세하게 형상화하여 서정적 완결성을 높였다. 작품 초기에는 개인의 아픔을 드러내기 위한 소재로 여성적 정조를 활용하는 경향이 보인다. 3·1운동 실패 이후 고문당하는 동료들과 와해하는 오산중학교를 보며 엄청난 상실감을 느꼈고, 이 감정을 사랑에 대한 서러움(정념)으로 비유하여 통탄한 감정을 표출했다. 이렇게 주체를 잃고 방황하는 현실에서 '님', '그 여자', '그대' 등의 소재를 활용하여 존재 방안을 모색해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반면 작품 후반부로 가면 식민지의 안타까운 현실에 적극적인 관심을 드러내며 독자와 공감하는 모습을 보인다.「비오는 날」, 「가혹한 인생」, 「봄바람」 등의 시에서 일제강점기에 소외된 사람들의 처지를 직시하며 연대를 추구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김소월의 여성적 정조 활용은 일제 사회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연애 담론’으로 우회해서 표현하여 일제의 검열을 피한한 것이라 해석되기도 한다.[6]

문학사적 가치

  • 대표적인 민요시인
식민지 상황 속에서 지배 논리에 동화되지 않고 민족주의 이념을 '민요'의 형태로 승화했고, 이를 기반으로 '민요적 근대시'라는 형식을 창조해냈다. 그는 시에 민요적 율격을 담아내며 민족 고유의 전통을 모색하고 계승하려는 정신사적 의지를 드러냈고, 전통적 정서와 율격의 기반 위에서 개인의 내면을 형상화하는 방식으로 애환을 표현였다. 
 단순히 민요적 특성을 차용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본인만의 개성이 담긴 자유시로 변형시켰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 근대시 형식 구축
김소월은 시 전반에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풀어내 서정시의 기틀을 다지기도 하였다. 그는 구시대의 문화적 규범이 붕괴되고 서구의 근대 자유시가 무분별하게 쇄도하던 문학적 혼란기에 현대시를 한국의 전통과 접맥시켜 문화적 주체성을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한국의 민족주의와 서구의 낭만주의라는 두 이념을 조화롭게 융화하여 문학 속에 반영한 것이다.
 선례가 없던 장르에서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며 새롭게 도전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실험적인 시는 현재까지도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아 많은 콘텐츠로 재생산되고 있다.
  • 내면의 형상화를 통한 회복
김소월의 또다른 문학사적 가치는 '현실'과 '대중'에 대해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하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소월 시는 피상적이고 추상적인 외래적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우리 전통의 것으로 눈을 돌리는 현실성의 회복을 꾀한 것이다. 이러한 현실 인식의 변화는 당시 카프 문학 의 전개뿐만 아니라 전통의 재발견을 통한 자기동일성 회복의 과정과도 연관되는 것이다. 김소월은 전통적 정서 와 율격의 기반 위에 개인의 내면을 형상화시켰다는 점에서 그 문학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평가

"우리 현대시사의 한 표준이며 역사" - 김용직 [7]
"김소월의 시는 그 어느 것을 막론하고 향토적인 체취가 강하게 풍기고 있다. … 한 마디로 전통적인 시인" - 조연현 [8]
"우리 민족의 문학적 생리에 배겨 있는 민중적·민요적 리듬을 가장 적절하게 건드려 준 시인" - 조병춘 [9]
"김소월의 시는 '전래의 정한의 세계'를 새로운 리듬으로 표현해 낸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민요에 속한다" - 김현 [10]
"김소월의 젊은 시절 시단에서 이른바 〈조선주의〉가 유행이었으나, 시인은 조선이라는 말을 쓰지 않은 채 조국의 산하에 지천으로 피고 지는 진달래라는 표상을 선택함으로써 겨레 감정에 호소한다. 그는 추상적인 관념에서 출발하지 않고 구체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 하나만 가지고서도 그는 당대의 누구보다도 시인이요 터주시인" - 유종호 [11]

관계도

네트워크 그래프

RDF

Domain(A) Range(B) 관계 설명
김소월 김성도 자랐다 A가 B에게 자랐다.
김소월 계희영 자랐다 A가 B에게 자랐다.
김소월 나도향 어울렸다 A가 B와 어울렸다.
김소월 김억 가르침받다 A가 B에게 가르침받다.
김소월 3.1운동 참여했다 A는 B에 참여했다.
김소월 카프 활동했다 A는 B에서 활동했다.
김소월 관동대지진 겪었다 A는 B를 겪었다.
김소월 오산중학교 재학했다 A는 B에 재학했다.
김소월 배재고등보통학교 졸업했다 A는 B를 졸업했다.
김소월 도쿄대학교 졸업했다 A는 B를 졸업했다.
김소월 진달래꽃 출간했다 A는 B를 출간했다.
김소월 평안북도 구성군 태어났다 A는 B에서 태어났다.
김소월 표현했다 A는 B를 표현했다.
김소월 애환 표현했다 A는 B를 표현했다.
김소월 사랑 표현했다 A는 B를 표현했다.

2차 창작

김소월의 시는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가곡으로 창작되어 널리 사랑받고 있다.

김소월 가곡
국립합창단 - 못잊어 김소월 작시 가곡 20곡

참고문헌

  1.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김소월(金素月))]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9535
  2. 편집부, 2015, 김소월의 문학과 생애, 문예운동사, 문예운동 2015년 여름 호, p20-27.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6340644
  3. 권영민, 김소월 시전집, 문학사상사, 2007.
  4. 조만식을 생각하고 쓴 시이다.
  5. 홍용희. (2019). ‘근대화된 민요시’와 세계조선시인의 탄생 - 김소월의 시 세계를 중심으로. 한국시학연구, (60), 343-369.
  6. 박군석. (2018). 김소월의 시에 나타난 내면의 타자, ‘그 여자’의 현현. 한국시학연구, (56), 9-53.
  7. 김용직 (1997년 9월 30일). 《한국현대문학의 사적 탐색》.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209쪽.
  8. 조연현 (1969년 9월 5일). 《한국현대문학사》. 서울: 성문각. 438쪽.
  9. 조병춘, 〈한국 현대시의 전개양상 연구〉, 명지대학교 박사학위논문(1979) 113쪽.
  10. 김윤식·김현 (초판 1973-08-30, 개정판 1996-09-10). 《한국문학사》. 서울: 민음사. 240쪽.
  11. 유종호 (1995년 5월 25일). 《시란 무엇인가》. 서울: 민음사. 281쪽.

기여자

휴머니티 헌터
김세연, 박소연, 유성운, 이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