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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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金起林)

소개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바다와 나비(김기림) 

1914년 임명보통학교에 입학했다. 1921년 서울보성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0년니혼대학 문학예술과를 졸업한 후 귀국하여 조선일보사 사회부 기자로 입사, 뒤에 신설된 학예부 기자로 옮겼다. 1933년 김유정·이태준 등과 구인회 결성에 참가하고, 1936년에 도호쿠대학 영문과에 입학, 1939년에 졸업했다. 이후 귀국하여 조선일보사 기자로 복직, 학예부장을 역임했다.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 재직하면서 시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슈르레알리스트'·'꿈꾸는 진주여 바다로 가자' 등을 발표하여 시단에 등단했다. 1940년 조선일보의 강제 폐간으로 한때 실직했으며, 1942년 낙향하여 고향 근처의 경성중학교의 영어 교사로 부임했다. 4년후 공산화된 북한에서 월남하였는데, 이 때 많은 서적과 가재를 탈취당해 곤궁한 나날을 보냈다. 1946년 2월 제1회 조선문학자대회 때 ‘우리 시의 방향’에 대하여 연설하였으나, 정부수립 전후에 전향하였다. 월남 후 중앙대, 연세대 등에 강사로 출강하다가 서울대학교 조교수가 되고, 그가 설립한 신문화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 한국전쟁 때 미처 피난하지 못하고 북의 정치보위부에 의해 납북되어 북한에서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시기는 알 수 없다.

학력

  • 1915년 ~ 임명보통학교
  • 1921년 ~ 보성고등보통학교(중퇴)
  • ~ 1930년 일본 니혼대학교 - 문학예술학
  • ~ 1939년 일본 토호쿠제국대학교 - 영어영문학

경력

  •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
  • 1931년 ~ 무곡원 과수원 경영
  • 1931년 ~ 조선일보 기자
  • 1933년 ~ 구인회 동인 활동
  • 서울대학교 강의
  • 중앙대학교 강의
  • 연세대학교 강의
  • 조선문학가동맹 시부 위원장
  • 조선문학가동맹 참여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김기림 [[구인회]] A는 B의 회원이다.

참고문헌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김기림

작성자 및 기여자

작성자 : 안애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