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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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946년 이홍기가 조국의 민주발전과 통일의 성취를 위하여 창간한 잡지,월간잡지이다.

《대조(大潮)》는 1946년 1월 1일자로 창간된 시사평론과 문예를 아우른 종합지이다. 창간호는 지면도 216면(당시 다른 잡지는 대개 100~150면이었는데)으로 대단한 의욕을 보였으나 제2호는 그해 7월에야 나왔다. 창간호는 국판 214쪽. 창간호에는 안재홍(安在鴻)의 「내외정세와 건국 전망」, 김오성(金午星)의 「인민정권의 성격」, 김태준(金台俊)의 「정치와 도덕」 등의 논문과 정지용(鄭芝溶)의 「애국의 노래」, 박종화(朴鍾和)의 「회천송(回天頌)」 등의 시, 그리고 박노갑(朴魯甲)의 「환(歡)」, 허준(許俊)의 「잔등(殘燈)」, 안회남(安懷南)의 「말」 등이 실려 있다. 그후에도 순조롭지 못하다가, 1948년 8월 〈정부수립기념호〉(제3권 제3호)를 내고는 더 나오지 못한 듯, 통권 몇 호인지도 알 수 없다. 판권장을 보면, 편집 겸 발행인 이홍기(李弘基), 인쇄인 피창록(皮昌錄), 발행소 대조사(서울·인사동 37), A5판 216면, 임시정가 10원이다.

발행과정

1946년 1월호를 창간호로 발행하였다. 편집 겸 발행인은 이홍기(李弘基)이다. 창간호는 216면의 규모였는데, 안재홍(安在鴻)의 「내외정세와 건국전망」, 이극로(李克魯)의 「4천년의 역사가 있다」가 실려 있고, 신탁통치 반대 특집, 유봉영(劉鳳榮)의 「조선독립운동사」, 김광섭(金光燮)의 「40년간의 일본 죄악사」 등의 글이 실렸다.

제2호에는 김도태(金道泰)의 「기미운동(己未運動) 회고좌담회」와 백철(白鐵)의 「건국과 지식계급좌담회」, 특히 정열모(鄭烈模)의 「한자폐지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한글전용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년 이상 정간하였다가 나온 1947년의 5월호는 부피가 64면으로 줄었고, 내용도 유봉영의 「조선독립과 미소공위(美蘇共委)」, 김동리(金東里)의 「순수문학과 제3세계관」과 같은 몇 편의 글밖에 실리지 못하였으며, 1948년 1월호는 다시 지면이 줄어 40면이었는데, 국제연합조선위원단 문제가 태반을 차지하였다.

같은 해 4월호는 불과 26면으로 다시 줄어들었으나, 「총선거와 자주정부수립」이라는 글을 통하여 의욕을 보였으며, 8월호는 140면으로 늘어났는데, 이승만(李承晩)의 「국권수립에 제(際)하야」라는 글과 이윤영(李允榮)·이범석(李範奭)의 글 및 ‘정부수립과 제반정책’이라는 특집이 있었다.

같은 해 송년호에는 조소앙(趙素昻)·설의식(薛義植) 등의 글로 엮어진 「현내각과 여론」이라는 특집과 송지영(宋志英) 등의 글로 엮어진 중국문제특집이 실려 있었다.

1949년 3·4월 합병호에는 김구(金九)의 「민족통일의 재구상」이라는 글과 이승만·김구·김규식(金奎植)·한설야(韓雪野)·박헌영(朴憲永)·김일성(金日成) 등에게 보내는 각계 저명인사들의 글로 엮은 ‘국민이 호소하는 서한(書翰)’이라는 특집을 내어 국민들의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그 뒤 햇볕을 보지 못하고 1949년에 종간되었다.

내용 및 의의

민족문화의 창조적 책임을 다하고 진보적 세력을 동지적으로 지지한다고 했던『대조』의 창간호를 보면 아직까지 자신들의 성향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창간호부터 특집 기사를 실었는데, 특집의 제목은 「신탁통치 반대 특집」이었으며, 이극로의 「4천여년의 역사가 있다」, 백세명의 「38선과 신탁통치」, 최열의 「신탁통치와 조선의 운명」등 총 3편의 글이 발표되었다. 창간호의 논설적 성격의 글로는 안재홍의 「내외사정과 건국전망」, 김태준의 「정치와 도덕」, 이석당의 「전평론(全評論)」, 배성룡의 「자본주의의 무정부성」, 김오성의 「인민정권의 성격」, 유봉영의 「조선독립운동사」등의 글이 발표되었는데, 이와 같은 글들은 서로 다른 이념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이후에도『대조』에는 좌익과 우익을 글이 함께 실림으로써 일종의 사상적 균형감각을 도모했다. 또한 김태준의 「정치와 도덕」은 이승만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이었는데,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를 하루속히 숙청해야 한다는 논지였다. 식민지 해방의 분위기 때문인지 김억은 「국어정화단상」을 통해 외래어와 일본어 용법이 너무 과도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창간호의 마지막 지면을 장식한 것은 「대한민국임시정부헌장」이었다.『대조』는 주석 김구의 명의로 된 「대한민국임시정부헌장」을 전재하였는데, 그 첫머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제 정식으로 우리 통일정부가 조직되어 합법적 헌법이 결정 공포될 것이어니와 지금 귀환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작금 4월 중 경에서 의정원 제36회 임시의정회를 소집하고 종래의 대한민국임시헌장을 다소 개수하여 대한민국 26년 4월 22일부로 공포하였었는데 당시의 국무위원과 개수한 헌장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국무위원회 주석, 김구 국무위원, 김규식, 류동설, 이시영, 박찬익, 장건상, 노성환, 조완구, 조소앙, 차이호, 황학수.(「대한민국임시정부헌장」,『대조』 창간호, 1946)


「대한민국임시정부헌장」의 제1장 총강(總綱)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이었고, 제4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인민 전체에 있음.”이었다. 이 외에 함상훈의 「한국민주당의 정견」, 김도태․김지환․유봉영․정광조 등의 좌담회 기록인 「3․1운동 회고 좌담회」, 유봉영의 「조선독립방도론」, 이승만 「국권수립에 제(際)하여」, 김기석 「자유와 권위」, 김구의 「민족통일의 재구상」 등의 정치논설이 실렸다. 또한 박종화 「회천송(回天頌)」, 김기림의 「무지개」, 서정주의 「춘향옥중가」, 김광섭의 「민족의 제전」, 조지훈의 「흙을 만지며」, 유치환의 「깨우침」 등의 시가 발표되었으며, 김동인의 「정열」, 허준의 「잔등」, 안회남의 「말」, 정비석의 「단편집」, 채만식의 「미스터 방」, 주요섭의 「눈은 눈으로」, 김동리의 「유서방(兪書房)」, 황순원의 「곰녀」 등의 소설이 실렸다.

이 잡지는 좌익 및 우익 격돌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족적 ·우익적인 입장을 견지한 잡지였으며, 조국의 민주발전과 통일의 성취를 위하여 힘쓴 시사종합잡지로서 그 의의를 지닌다.

김동리의 「순수문학과 제3세계관」

『대조』에는 유달리 김동리의 문학논문이 다수 실렸는데, 그는 「문학운동의 2대 방향」에서 좌우익 문학운동을 설명하면서 좌익문인들을 공격하였고, 「순수문학과 제3세계관」에서는 순수문학이야말로 문학정신의 본령인 인간성 옹호를 위한 문학이라고 주장하였으며, 「민족문학론」에서는 계급문학은 민족문학이 될 수 없으며, 민족문학은 민족의 문학인 동시에 세계적인 문학이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순수문학과 제3세계관」은 이후에, 그의 평론집 『문학과 인간』에「본격문학과 제3세계관의 전망」으로 바뀌어 수록된다.

이 글에서 김동리는 문학이 정치나 도덕이나 경제나 교육이나 일체의 문학 이외의 것에 예속되거나 그것의 목적 달성을 위한 한 개 도구 혹은 무기로서 사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도구 혹은 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문학은 제일의(第一義)적 문학이 아니라, 제이의(第二義)적, 제삼의(第三義)적 문학에 한정된다고 말한다.

관련 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주어(S) 목적어(O) A는 B를 ~하다(P)
대조 이홍기 A는 B가 발행했다(P)
대조 1946년 A는 B에 창간되었다(P)
대조 1949년 A는 B에 종간되었다(P)
대조 월간잡지 A는 B에 해당한다(P)
「순수문학과 제3세계관」 김동리 A는 B가 저술했다(P)
「순수문학과 제3세계관」 대조 A는 B에 수록되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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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정의, 내용

[2] 정의

[3] 내용 및 의의

[4] 대조의 이미지 파일

작성자 및 기여자

작성자: 신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