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제 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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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제 극단


정의

모든 단원이 극단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지는 운영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극단을 의미한다.
60년대 이후 등장한 극단으로, 당대 젊은 연극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다.

연원 및 변천

동인제 극단은 기성 연극계를 반발하면서 생겨났다.이들은 연극에 대해 이전 시기의 공연 주체들과는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1960년대 활발한 활동으로 극계를 이끌어갔으며, 1950년대와는 달리 직업 극단으로서의 체제를 선언하고 나섰다. 이들 동인제 극단의 구성원들 중 상당수가 연극을 직업으로 하여 극단 활동에 몰두하였기 때문에 연극계에 새로운 토대를 형성하는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었다.

특징

부조리극

동인제 극단은 부조리극의 산파역할을 하였다. 동인제 극단은 대부분 실험극 내지는 전위극을 표방하였는데, 그 레퍼토리는 부조리극으로 채워졌다. 여러 동인제 극단 중에서도 특히 부조리극 소개에 적극적이었던 부조리극 대표 극단이 있는데, 이는 실험극장, 민중극장, 자유극장, 극단 드라마센터, 극단 에저또, 극단 산울림 등이 있다. [1]

연극 대중화 운동

급격한 산업화 과정과 맞물리면서 연극의 직업화, 상품화 과정으로 이어지고, 연극은 장르 자체의 존립을 위해서라도 돈을 내고 연극을 보여줄 관객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대 현실에서 기성연극계가 연극 공연만의 매력을 살려내지 못하고 점차 관객을 잃어가고 있었기에 관객확대의 필요성은 더욱 강조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새로 연극이 필요해졌다. 연극 대중화 운동 초기에는 대중극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수준 높고 전문적인 공연으로 관객을 확대해야 함을 의미했다. 공연 주체들은 이렇게 달라진 연극의 성격을 수용하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연극 대중화 운동에 반응하게 된다. 연극 대중화의 방안을 살펴보면 특징 대조적인 두 극단이 있다. 바로 극단 산하민중극장이다. 극단 산하는 50년대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형성된 차범석의 작품을 본래 정극의 주류였던 사실주의극을 변화, 발전시키는 방법으로 관객을 확대하고자 했다. 반면, 민중극장이근삼의 희곡이 60년대 새로이 등장하면서 탈사실주의 연극의 실험을 변용하여 새로운 연극으로 관객을 확대하고자 했다.

의의

  • 지식인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연극을 대중까지 관객층으로 확대시키고자 했다.
  • 새로운 동인제 극단의 출범과 연극운동으로 연극계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 연극계에 대한 새로운 이념 또는 접근 방법의 정립을 재촉했다.

관련 극단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동인제 극단 극단 산하 A는 B를 포함한다

참고문헌

  • 김지현, 2005, 1960년대 동인제 극단의 연극 대중화 양상, 경북대학교 대학원.




작성자 및 기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