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된 감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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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모된 감상기이혼고백서이나 신생활에 들면서처럼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의 경험과 사상을 구체적이고 진솔하게 토로한 글로서, 나혜석의 삶과 문학활동을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글이다.

주간잡지였던 동명1923년 1월 1일, 7일, 14일, 21일 4회에 걸쳐 연재된 이 글은 나혜석 자신이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경위와 실제 결혼생활에서 여성으로서 겪게 되는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처 생각하거나 기대하지 못했던 임신육아에 관련된 구체적 경험을 통해서 모성신화를 깨뜨림으로써 당대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모성에 의무에 대한 비판

나혜석은 모된 감상기를 통해 모성애는 의무사항이 아니며, 본능이 아니라는 견해를 주장하였다. 그는 자신이 "'나열(羅悅:나혜석의 딸)의 어미'는 '어미될 때'로 '어머니가 되기'까지의 있는 듯 없는 듯한 이상한 심리 중에서 '있었던 것을' 찾아 여러 신식 엄마들과 공유하고자 '그렇지 않습디까, 아니 그랬었지요?'라고 묻고 싶다"는 게 이 글의 취지였다. 즉 그는 '엄마'로서 겪는 여러 감정을 다른 엄마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사회가 강요하는 모성애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모된 감상기에서 그는 자신의 임신 과정을 고백했다. 그는 입덧을 하면서도 자신이 임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했다. "그런 중에 뱃속에서는 어느덧 무엇이 움직거리기 시작하는 것을 깨달은 나는 몸이 오싹해지고 가슴에서 무엇인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가끔은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로 설레고 기쁜 적도 있었지만, 촉망받던 예술가로서의 인생이 갑작스러운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헝클어져 버린 것에 대한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이 더 컸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는 여성이라고 해서 임신하자마자 본능적으로 모성애가 생기는 것은 아니더라고 말한다. 나혜석임신이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이 발표되자 지식인 남성들은 반발했다. 백결생이라는 필명의 논객은 모성애는 숭고한 것이라며 "원래 임신이라는 것은 여성의 거룩한 천직이니 여성의 존귀가 여기 있고 여성이 인류에게 향하여 이행하는 최대 의무의 한 가지인 것을 자각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하며 반박했다. 여기에서 그는 나혜석임신이나 육아의 의무를 방기하려는 태도라고 규정, 비난했다(백결생, '관념의 남루를 벗은 비애', 동명, 1923.2.4). 그러자 나혜석은 이에 자신의 감상기가 임신과 출산을 한 여성들의 솔직한 감정이라고 반박한다. 그래서 자신의 글이 분명 일부 여성들에게는 공감을 얻으리라 확신한다고 말한다('백결생에게 답함', 동명, 1923.3.18). 모성애는 의무가 아니라는 견해를 피력하자 일부 지식인 남성과 보수적인 유학자들은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나혜석은 모든 어머니가 모성애를 가진 것은 아니며, 모든 여성모성애를 가진 것은 아니며, 모든 여성모성애를 가져야 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또한 사회가 여성에게 모성애를 강요한다고 반박하였다.

원문

1

이러한 심야(深夜) 악가(樂歌)처럼 만사(萬事)를 잊고 곤(困)한 춘몽(春夢)에 잠겼을 때 돌연(突然)히 옆으로서 잠잠한 밤을 깨트리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벼락같이 난다.

이때에 나의 영혼(靈魂)은 꽃밭에서 동모(同侔*동무)들과 끊임없이 웃어가며 평화(平和)의 노래를 부르다가 참혹(慘酷)히 쫓겨났다.

나는 벌써 만(萬) 일개(一個)년간(年間)을 두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每日) 밤에 이러한 곤경(困境)을 당(當)하여 옴으로 이렇게 “으아”하는 첫소리가 들리자 “아이구, 또”하는 말이 부지불각(不知不覺) 중(中) 나오며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나는 어서 속(速)히 면(免)하려고 신식(新式)차려 정(定)하는 규칙(規則)도 집어치우고 젖을 대주었다. 유아(幼兒)는 몇 모금 꿀떡꿀떡 넘기다가 젖꼭지를 스르르 놓고 쌕쌕하며 깊이 잠이 들었다.

나는 비로소 시원해서 돌아누우나 나의 잠은 벌써 서천서역국(西天西域國)으로 속거천리(速去千里)하였다.

그리하여 다만 방(房) 한 가운데에 늘어져 환히 켜 있는 전등(電燈)을 향(向)하여 눈방울을 자주 굴릴 따름, 과거(過去)의 학창시대(學窓時代)로부터 현재(現在)의 가정생활(家庭生活), 또 미래(未來)는 어찌 될까!

이렇게 인생(人生)에 대(對)한 큰 의문(疑問), 그것에 대(對)한 나의 무식(無識)한 대답(對答), 고(苦)로부터 시작(始作)하였으나 필경(畢竟)은 자미(滋味)롭게 밤을 새우는 것이 병적(病的)으로 습관성(習慣性)이 되다시피 하였다.

정직(正直)히 자백(自白)하면 내가 전(前)에 생각하든 바와 지금(只今) 당(當)하는 사실(事實)중(中)에 모순(矛盾)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나 어느 틈에 내가 처(妻)가 되고 모(母)가 되었나? 생각하면 확실(確實)히 꿈 속 일이다. 내가 때때로 말하는

「공상(空想)도 분수가 있지!」

하는 간단(簡單)한 경탄어(驚歎語)가 만(滿)이(二)개년(個年)간(間) 사회(社會)에 대(對)한 가정(家庭)에 대(對)한 다소(多少)의 쓴맛 단맛을 맛본 나머지의 말이다.

실(實)로 나는 짜릿짜릿하고 부르르 떨리며 달고 열(熱)나는 소위(所謂) 사랑의 꿈은 꾸고 있었을지언정 그 생활(生活)에 비장(秘藏)된 반찬 걱정, 옷 걱정, 쌀 걱정, 나무 걱정, 더럽고 게으르고 속이기 좋아하는 하인(下人)과 싸움으로부터 접객(接客)에 대(對)한 범절(凡節), 친척(親戚)에 대(對)한 의리(義利), 일언일동(一言一動)이 모두 남을 위(爲)하여 살아야 할 소위(所謂) 가정(家庭)이란 것이 있는 줄 뉘 알았겠으며 더구나 빨아댈 새 없이 적셔 내놓는 기저귀며 주야(晝夜)불문(不問)하고 단조(單調)로운 목소리로 쌕쌕 우는 소위(所謂) 자식(子息)이라는 것이 생기어 내 몸이 쇠약(衰弱)해지고 내 정신(精神)이 혼미(昏迷)하여져서

「내 평생(平生) 소원(所願)은 잠이나 실컷 자보았으면.」

하게 될 줄이야 뉘라서 상상(想像)이나 하였으랴.

그러나 불평(不平)을 말하고 싶은 것보다 인생(人生)에 대(對)하야 의문(疑問)이 자라가며, 후회(後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더 한 가지 맛을 봄을 행복(幸福)으로 안다.

그리하여 내 앞에는 장차(將次) 더한 고통(苦痛), 더한 희망(希望), 더한 낙담(落膽)이 있기를 바라며 그것에 지지 않을 만한 수양(修養)과 노력(努力)을 일삼아 가려는 동시(同時)에 정월(晶月)의 대명사(代名詞)인 나열(羅悅)의 모(母)는, 모(母)될 때로 모(母)되기까지의 있는 듯 없는 듯한 이상(異常)한 심리(心理) 중(中)에서 ‘있었던 것을’ 찾아 여러 신식(新式) 모(母)님들께

「그러지 않습니까. 아니, 그랬었지요.」

라고 묻고 싶다.

재작년(再昨年) 즉(卽) 일천구백이십 년(一千九百二十年) 구월(九月) 중순(中旬) 경(頃)이었다. 그때 나는 경성(京城) 인사동(人寺洞) 자택(自宅) 이층(二層)에 와석(臥席)하여 내객(來客)을 사절(謝絶)하였었다.

나는 원래(元來) 평시(平時)부터 호흡불순(呼吸不順)과 소화불량(消化不良)병(病)이 있음으로 별(別)로 걱정할 것도 없었으나, 이상(異常)스럽게 구토증(嘔吐症)이 생(生)기고 촉감(觸感)이 예민(銳敏)해지며 식욕(食慾)이 부진(不進)할 뿐 아니라, 싫고 좋은 식물(食物)선택(選擇) 구별(區別)이 너무 정확(精確)해졌다.

그래서 언젠지 철없이 고만 불쑥 증세(症勢)를 말했더니 옆에 있던 경험(經驗)있는 부인(夫人)이

‘그것은 태기(胎氣)요’

하는 말에 나는 깜짝 놀라 내놓은 말을 다시 주워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과연(果然) 부끄러워서 그랬던 것도 아니요, 몰랐던 것을 그때 비로소 알게 된 것도 아니었었다.

그러나 이로부터 나는 먹을 수 없는 밥도 먹고 할 수 없는 일도 하여 참을 수 있는 대로 참아가며 그 후(後)로는 ‘그 말’은 일절(一切) 입 밖에도 내지 않고 어찌하면 그네들로 의심(疑心)을 풀게 할까 하는 것이 유일(唯一)의 심려(心慮)이었다.

그러나 증세(症勢)는 점점(漸漸) 심(甚)하여져서 인제는 참을 수도 없으려니와 참고 말 아니 하는 것으로만 도저히 그네들의 입을 틀어 막을 방패가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래도 싫다. 한 사람 더 알아질수록 정말 싫다. 마치 내 마음으로 ‘그런 듯’하게 몽상(夢想)하는 것을 그네들 입으로 ‘그렇게’ 구체화(具體化)하려고 하는 듯싶었다.

어쩌면 그다지도 몹시 밉고 싫고 원망(怨望)스러웠던지!

그리하여 이것이 혹시(或是) 꿈 속 일이나 되었으면! 언제나 속(速)히 이 꿈이 반짝 깨어

「도무지 그런 일 없다.」

하여질꼬? 아니 그럴 때가 꼭 있겠지 하며 바랄 뿐 아니라 믿고 싶었다.

그러나 미구(未久)에 믿던 바 꿈이 조금 씩(式) 깨어져왔다.

「도무지 그럴 리 없다.」

고 고집을 세울 용기(勇氣)는 없으면서도 아직까지도 아해(兒孩)다, 태기(胎氣)다, 임신(妊娠)이다, 라고 꼭 집어내기는 싫었다.

그런 중(中)에 뱃속에서는 어느덧 무엇이 움직거리기 시작(始作)하는 것을 깨달은 나는 몸이 으쓱해지고 가슴에서 무엇인지 떨어지는 소리가 완연(宛然)히 탕 하는 것 같이 들리었다.

나는 무슨 까닭인지 몰랐다.

모든 사람의 말은 나를 저주(咀呪)하는 것 같고 바람에 날려 들리는 웃음소리는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탕탕 부딪고 엉엉 울고도 싶었고 내 살을 꼬집어 뜯어 줄줄 흐르는 빨간 피를 또렷또렷 보고도 싶었다.

아아, 기쁘기커녕 수심(愁心)에 싸일 뿐이오, 우습기커녕 부쩍부쩍 가슴을 태울 뿐이었다. 책임(責任) 면(免)하려고 시집가라 강권(强勸)하던 형제(兄弟)들의 소위(所謂)가 괘씸하고 감언이설(甘言利說)로

‘너 아니면 죽겠다’

하여 결국(結局) 제 성욕(性慾)을 만족(滿足)케 하던 남편은 원망스럽고 한 사람이라도 어서 속(速)히 생활(生活)이 안정(安定)되기를 희망(希望)하던 친구(親舊)님네,

「내 몸 보니, 속 시원하겠소.」

하며 들이대고 싶으니만치 악(惡)만 났다.

그때에 나의 둔(鈍)한 뇌(腦)로 어찌 능(能)히 장차(將次) 닥쳐오는 고통(苦痛)과 속박(束縛)을 추측(推測)하였을까. 나는 다만 여러 부인(夫人)들께 이러한 말을 자주 들어왔을 뿐이었다.

「여자(女子)가 공부(工夫)는 해서 무엇 하겠소. 시집가서 아이 하나만 나면 볼 일 다 보았지!」

하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언제든지 코웃음으로 대답(對答)할 뿐이오, 들을만한 말도 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럴 리(理) 만무(萬無)하다는 신념(信念)이 있었다.

이것은 공상(空想)이 아니라 구미(歐米)각국(各國) 부인(婦人)들의 활동(活動)을 보던지, 또 제일(第一) 가까운 일본(日本)에도 여사야 정자(與謝野 晶子*요사노 아키코)는 십여(十餘) 인(人)의 모(母)로서 매삭(每朔) 논문(論文)과 시가(詩歌)창작(創作)으로부터 그의 독서(讀書)하는 것을 보면 확실(確實)히

「아니하려니까 그렇지? 다 같은 사람 다 같은 여자(女子)로 하필(何必) 그 사람에게만 이런 능력(能力)이 있으랴」

싶은 마음이 있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내가 잘 생각한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런 말을 하는 부인(夫人)들이 많을수록 나는 더욱 절대(絶對)로 부인(否認)하고 결국(結局) 나는 그네들 이상(以上)의 능력(能力)이 있는 자(者)로 자처(自處)하면서도 언제든지 꺼림직한 숙제(宿題)가 내 뇌(腦) 속에 횡행(橫行)했었다.

그러나 그 부인(夫人)들은 이구동언(異口同言)으로,

「네 생각은 결국(結局) 공상(空想)이다. 오냐, 당(當)해 보아라. 너도 별(別) 수 없지」

하며 나의 의견(意見)을 부인(否認)하였다. 과연(果然) 연전(年前)까지 나와 같이 앉아서 부인(夫人)네들을 비난(非難)하며

「나는 그렇게 아니 살 터이야.」

하던 고등교육(高等敎育) 받은 신여자(新女子)들을 보아도 별(別) 다른 것 보이지 아닐 뿐이라. 구식(舊式) 부인(夫人)들과 같은 살림으로 일 년(一年) 이 년(二年) 예사(例事)로 보내고 있다는 것을 보면 아무리 전(前)에 말하던 구식(舊式) 부인(夫人)들은 신용(信用)할 수 없더라도 이 신부인(新夫人)의 가정(家庭)만은 신용(信用)하고 싶었었다. 그것은 결(決)코 개선(改善)할만한 능력(能力)과 지식(知識)과 용기(勇氣)가 없지 않다. 그러면 누구든지 시집가고 아이 낳으면 그렇게 되는 것인가 되지 않고는 아니 되나?

그러면 나는 그 고뇌(苦惱)에 빠지는 초보(初步)에 있다. 마치 눈 뜨고 물에 빠지는 격(格)이었다. 실(實)로 앞이 캄캄하여 올 때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리하여 세상(世上) 일을 잊고 단잠에 잠겼을 때라도 누가 곁에서 바늘 끝으로 찌르는 것 같이 별안간(間) 깜짝 놀라 깨어졌다. 이러한 때는 체온(體溫)이 차졌다 더워졌다 말랐다 땀이 흘렀다 하여 조바심이 나서 마치 저울에 물건(物件)을 달 때 접시에 담긴 것이 쑥 내려지고 추(錘)가 훨씬 오르는 것 같이 내 몸은 부쩍 공중(空中)으로 떠오르고 머리는 천근만근(千斤萬斤)으로 무거워 축 처져버렸다.

너무나 억울하였다. 자연(自然)이 광풍(狂風)을 보내서 겨우 방긋한 꽃봉올리를 참혹(慘酷)히 꺾어버린다 하면 다시 뉘게 애소(哀素)할 곳이 있으리오마는 그래도 설마 자연(自然)만은 그럴 리(理) 없을 듯하여! 애원(哀願)하고 싶었다.

「이렇게 억울하고 원통한 일도 또 있겠느냐?」고.

나는 할 일이 많았다. 아니 꼭 해야만 할 일이 부지기수(不知其數)이다.

게다가 내 눈이 겨우 좀 떼려고 하는 때이었다.

예술(藝術)이 무엇이며 어떠한 것이 인생(人生)인지 조선(朝鮮)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겠고 조선 여자(女子)는 이리해야만 하겠다는 것을, 이 모든 일이 결(決)코 타인(他人)에게 미룰 것이 아니다, 내가 꼭 해야 할 일이었다.

2

그것은 의무(義務)나 책임(責任)문제(問題)가 아니라 사람으로 생겨난 본의(本意)라고까지 나는 겨우 좀 알아왔다. 동시(同時)에 내 과거(過去) 이십(二十)여(餘) 년(年) 생애(生涯)는 모든 것이 허위(虛僞)요, 나태(懶怠)요, 무식(無識)이요, 부자유(不自由)요, 허영(虛榮)의 행동(行動)이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과연(果然) 소위(所謂) 전문학교(專門學校)까지 졸업(卒業)하였다 하나 남이 알까보아 겁나도록 사실(事實) 허송세월(虛送歲月)의 학창시절(學窓時節)이었고 결국(結局) 유명무실(有名無實)의 몰상식(沒常識)한 데서 면(免)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인생(人生)을 비관(非觀)하며 조선(朝鮮)사람을 저주(咀呪)하고 조선(朝鮮)여자(女子)에게 실망(失望)하였었다.

쓸데없이 부자유(不自由)의 불평(不平)을 주창(主唱)하였으며 오늘 할 일을 명일(明日)로 미루어 버리는 일이 많았었다. 나는 내게서 이런 모든 결점(缺點)을 찾아낼 때 조금도 유망(有望)한 아무 장점(長點)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내게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사랑의 힘이 옆에 있었고 또 아직 이십(二十)여(餘)세(歲) 소녀(少女)로 전도(前道)의 요원(遼遠)한 세월(歲月)과 시간(時間)이 내 마음껏 살아가기에 너무나 넉넉하였다. 이와 같이 내게서 넘칠만한 희망(希望)이 생겼다.

터지지 않을 듯한 딴딴한 긴장력(緊張力)이 발(發)했다.

전 인류(全 人類)에게 애착심(愛着心)이 생기고 동포(同胞)에 대(對)한 의무심(義務心)이 나며 동류(同類)에 대(對)한 책임(責任)이 생겼다. 이때와 같이 작품(作品)을 낸 적이 없었고 이때와 같이 독서(讀書)를 한 일이 짧은 생애(生涯)이나마 과거(過去)에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이 마음이 더 견고(堅固)는 하여질지언정 약(弱)해질 리(理)는 만무(萬無)하고 내 희망(希望)이 새로워질지언정 고정(固定)될 리(理) 만무(萬無)하리라 꼭 신앙(信仰)하고 있었다.

즉(卽) 내가 갈 길은 지금(只今)이 출발점(出發點)이라고 하였다.

더구나 내게는 이러한 버리지 못할 공상(空想)이 있어서 나를 많이 도와주었다.

내가 불행 중(中) 다행(多幸)으로 반년(半年) 감옥생활(監獄生活) 중(中)에 더할 수 없는 구속(拘束)과 보호(保護)와 징역(懲役)과 형벌(刑罰)을 당(當)해가면서라도 옷자락을 뜯어 손톱으로 편지(片紙)를 써서 운동시간(運動時間)에 내어던지든 갖은 기묘(奇妙)한 일이 많았든 조그마한 경험상(經驗上)으로 보아 「사람이 하려고 하는 마음만 있으면 별(別) 힘이 생기고 못할 일이 없다고」 이것만은 꼭 맛보아 얻은 생각으로 잊을 수 없이 내 생활(生活) 전체(全體)를 지배(支配)하고 있었다.

내 독신생활(獨身生活)의 내용(內容)이 돌변(突變)함도 이 까닭이었었다. (지금(只今)까지는 아직 그 마음이 있지만) 그와 같이 나는 희망(希望)과 용기(勇氣) 가운데서 펄펄 뛰며 살아갈 때이었다.

여러분은 인제는 나를 공평정대(公平正大)히 심판(審判)하실 수 있겠다.

나는 정(正)말 억울했다.

이 모든 희망(希望)이 없어지는 것이 원통(怨痛)하였다.

이때에 마음 딴은 세속(世俗) 자살(自殺)의 의미(意味)보다 이상(以上)의 악착(齷齪)하고 원한(怨恨)의 자살(自殺)을 결심(決心)하였었다. 어떻게 저를 죽이면 죽는 제 마음까지 시원할까 하였다.

생(生)의 인연(因緣)이란 참 이상(異常)스러운 것이다. 나는 이 중(中)에서 다시 살아갈 되지 못한 희망(希望)이 났다.

「설마 내 뱃속에 아해(兒孩)가 있으랴. 지금(只今) 뛰는 것은 심장(心臟)이 뛰는 것이다. 나는 조금도 전(前)과 변(變)함 없이 넉넉한 시간(時間)에 구속(拘束) 없이 돌아다니며 사생(寫生)도 할 수 있고 책(冊)도 볼 수 있다」

고 생각할 제(際) 나는 불만(不滿)하나마 광명(光明)이 조금 보였다. 그러나 이와 같이 침착(沈着)하게 정리(整理)되었던 내 속에서 어느덧 모든 것이 하나 씩(式) 둘 씩(式) 날아가 버리고 내 속은 마치 고목(古木)의 속 비이고 살아있는 듯 나는 텅 비어 공중(空中)에 떠있고 나의 생명(生命)은 다만 혈액순환(血液循環)에다가 제 목숨을 맡겨 버렸었다.

지금(只今) 생각건대 하느님께서는 꼭 나 하나만은 살려 보시려고 퍽 고생(苦生)을 하신 것 같다. 그리하여 내게는 전생(前生)에서부터 너는 후생(後生)에 나가 그렇게 살지 말라는 무슨 숙명(宿命)의 상급(賞給)을 받아가지고 나온 모양(模樣) 같다.

왜 그러냐하면 나는 그 중(中)에서도 무슨 책(冊)을 보았었다.

그러나 어느 날 심야(深夜)에 책(冊)을 읽다가 깜짝 놀라서 옆에 곤(困)히 자던 남편(男便)을 깨워 임신(妊娠) 이래(以來)의 내 심리(心理)를 말하고 나를 이삭 간(二朔 間)만 동경(東京)에 다시 보내주지 않으면 나는 다시 살아날 방책(方策)이 없다고 한즉 고마운 그는 내게 쾌락(快諾)하여 주었다. 쾌락(快諾)을 받는 순간(瞬間)에

「저와 같이 고마운 사람과 아무쪼록 잘 살아야지」

라는 내게는 예상(豫想)치 못했던 이중(二重) 기쁨이 생겼다.

나는 이상(異常)스럽게도 몽상(夢想)의 세계(世界)에서 실제(實際)의 세계(世界)로 껑충 넘어 뛴 것 같았다. 아니, 뛰어졌었다.

이 두 세계(世界)의 경계선(境界線)을 정확(正確)히 갈라 밟은 때는 내가 회당(會堂)에서 목사(牧師) 앞에 서서 이성(異性)에 대(對)하여 공동(共同) 생애(生涯)를 언약(言約)할 때보다 오히려 이때이었었다.

나는 비로소 시간(時間)경제(經濟)의 타산(打算)이 생겼다. 다른 것은 다 예상(豫想)치 못하더라도 아해(兒孩)가 나면 적어도 제 시간(時間)의 반(半)은 그 아해(兒孩)에게 바치게 될 것쯤이야 추측(推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일분(一分)이라도 내게 족(足)할 때에 전(前)에 허송(虛送)한 것을 조금이라도 보충(補充)할까하는 동기(動機)이었다. 그럼으로 내 동경 행(東京 行)은 비교적(比較的) 침착(沈着)하였고 긴장(緊張)하여 일분(一分)일각(一刻)을 앗기어 전문(專門)방면(方面)에 전심치지(傳心致志)하였었다.

과거(過去) 사(四), 오(五) 년(年) 간(間)의 유학(留學)은 전(전)혀 헛것이요, 내가 동경(東京)에 가서 공부(工夫)를 하였다고 말하려면 오직 이 이삭 간(二朔 間) 뿐이었다.

내게는 지금(只今)도 그때의 인상(印象)밖에 남은 것이 없다.

그러나 나는 동창생(同窓生) 중(中)에 미혼자(未婚者)를 보면 부러웠었고 더구나 활기(活氣)있고 건강(健康)한 그들의 안색(顔色), 그들의 체격(體格)을 볼 때 미웁고 심사가 났다. 이렇게 수심(愁心)에 싸인 남모르는 슬픔 중(中)에 어느 동무(同侔)는 아직 내가 출가(出嫁)하지 않은 줄 알고

「나(羅)さんも 연인(戀人)が 거(居)るでしょね」(나 상도 애인이 있어야겠지요)

하고 놀리었다. 나는 어물어물

「い-え」(아니요)

하고 대답(對答)을 하면서 속으로

「나는 벌써 연애(戀愛)의 출발점(出發點)에서 자식(子息)의 표지(標地)에 도달(到達)한 자(者)다」

라고 하였다.

어쩐지 저 처녀(處女)들과 좌석(坐席)을 같이 할 자격(資格)까지 잃은 몸 같기도 하였다. 그들의 천진난만(天眞爛漫)한 것이 어찌 부럽고 탐이 나든지 무슨 물건(物件) 같으면 어떠한 형벌(刑罰)을 당(當)하든지 도적(盜賊)질을 할지 몰랐을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이 내가 처녀(處女) 때에 기혼(旣婚)한 부인(婦人)을 싫어하고 미워하든 감정(感情)을 도리어 내 자신(自身)이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럭저럭 나는 벌써 임신(妊娠) 육(六)개월(個月)이 되었다.

그러면 입으로는 사람이 무엇이든지 아니하려니까 그렇지 안 될 것이 없다……고 하면서 아해(兒孩) 하나쯤 생긴다고 무슨 그다지 걱정될 것이 있나. 몇 자식(子息)이 주렁주렁 매어 달릴수록 그 중(中)에서 남 못하는 일을 하는 것이 자기(自己) 말의 본의(本意)가 아닌가?

그러나 먼저 나는 어떠한 세계에서 살았었다는 것을 좀 더 말할 필요(必要)가 있다.

나는 실(實)로 공상(空想)과 이상(理想) 세계(世界)에 살아온 자(者)이었다.

함으로 실세계(實世界)와는 마치 동서양(東西洋)이 현수(懸殊*아주 심하게 다름)한 것과 같이 아니, 그보다도 더 멀고 멀어서 나와 같은 자(者)는 도저(到底)히 거기까지 가볼 것 같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남들 보기에는 내가 벌써 결혼(結婚)세계(世界)로 들어설 때가 곧 실제(實際)세계(世界)의 반로(半路)까지 온 것이었다.

그러나 내 심리(心理)도 그렇지 않았고 또 결혼생활(結婚生活)의 내용(內容)도 역시(亦是) 전(全)혀 공상(空想)과 이상(理想) 속에서 살아왔다.

원래(元來) 내가 남의 처(妻) 되기 전(前)에는 그 사실(事實)을 퍽도 무섭고 어렵게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나 같은 자(者)는 도무지 사람의 처(妻)가 되어 볼 때가 생전(生前) 있을 것 같지 아니 하였다.

그러던 것이 자각(自覺)이나 자원(自願)보다 우연(偶然)한 기회(機會)로 타인(他人)의 처(妻)가 되고 보니 결혼생활(結婚生活)이란 너무나 쉬운 일 같았었다.

결혼생활(結婚生活)을 싫어하는 제일(第一)의 조건(條件)이던 공상세계(空想世界)에서 떠나기 싫었던 것도 웬일인지 결혼(結婚)한 후는 그 세계(世界)의 범위(範圍)가 더 넓고 커질 뿐이었다.

그럼으로 독신생활(獨身生活)을 주창(主唱)하는 것이 너무 쉽고도 어리석어 보였다. 또 결혼생활(結婚生活)을 회피(回避)하던 제(第) 이조(二條)로

「구속(拘束)을 받을 터이니까」

하던 것이 무슨 까닭인지 별안간에 심신(心神)이 매우 침착(沈着)해지어 온 세계(世界) 만물(萬物)이 내 앞에서는 모두 굴복(屈伏)을 하는 것 같고 조금도 구속(拘束)될 것이 없었다.

이는 결혼생활(結婚生活) 후(後) 삼삭(三朔) 간(間)에 경성(京城) 시가(市街)를 일주(一週)한 것이며 겸(兼)하여 학교(學校)에 매일(每日) 출근(出勤)하였고 또 열(熱)나고 정(情) 있는 작품(作品)이 수십(數十)개(個) 된 것으로 충분(充分)히 증거(證據)를 삼을 수 있다.

그렇게 된 그 사실(事實)이 즉(卽) 실세계(實世界)이라 할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도저(到底)히 공상(空想)과 이상(理想)세계(世界)를 떠나고서는 이러한 정력(精力)이 계속(繼續)될 수 없을 줄 알며 이러한 신비적(神秘的) 생활(生活)을 할 수 없었으리라고 확신(確信)하는 바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이르러서도 모(母)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혹(或) 생각해 본 일이 있었다하면 부인(婦人) 잡지(雜誌) 같은 것을 보고 난 뒤에 잠깐(暫間) 꿈같이 그리어 보았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처(妻)가 되어 볼 꿈을 꿀 때에는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 그렇게 힘들지 않게 요리조리 배치(配置)해 볼 수 있었으나 모(母)될 꿈을 꿀 때에는 하나가 나서고 한참 있다 둘이 나서며 그 다음 셋부터는 결(決)코 나서지 않으리라.

그리되면 더 생각해 볼 것도 아니하고 떠오르던 생각은 싹싹 지워버렸다.

그러나 다른 것으로 이렇게 답답하고 알 수 없을 때에 내가 비관(悲觀)하여 몸부림치던 것에 비(比)하면 너무 태연(泰然)하였고 너무 낙관적(樂觀的)이었다.

이와 같이 나로부터 ‘모(母)’의 세계(世界)까지는 수자(數字)로 계산(計算)할 수 없을 만한 멀고 먼 세계(世界)이었었다. 실(實)로 나는 내 안전(眼前)의 무궁무진(無窮無盡)한 사물(事物)에 대(對)하여 배울 것이 하도 많고 알 것이 너무 많았다.

그리하여 그 멀고 먼 딴 세계(世界)의 일을 지금(只今)부터 끄집어내는 것이 너무 부끄럽고 염치(廉恥)없을 뿐 아니라 불필요(不必要)로 알았다. 그럼으로 행여 그런 쓸데없는 것이 나와 내 뇌(腦)에 해(害)롭게 할까 하여 조금 눈치가 보이는 듯만 하여도 어서 속(速)히 집어치웠다.

그러면 내가 주장(主張)하는 그 말은 허위(虛僞)가 아니냐고 비난(非難)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과연(果然) 모순(矛盾)된 일이었다.

그러나 생각하여 보면 당연(當然)한 일이 아닐까도 싶다.

즉(卽) 지식(知識)이나 상상(想像)쯤 가지고서는 알아 내일 수 없던 사실(事實)이 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이 애(愛)의 필연(必然)이오, 불임의(不任意) 혹(惑) 우연(偶然)의 결과(結果)로 치더라도 우리 부부(夫婦) 간(間)에는 자식(子息)에 대(對)한 욕망(慾望), 부모(父母) 되고자 하는 욕(慾)이 없었다.

미완(未完)

3

나는 분만기(分娩期)가 닥쳐올수록 이러한 생각이 났다.

「내가 사람의 모(母)가 될 자격(資格)이 있을까? 그러나 있기에 자식(子息)이 생기는 것이지」

하며 아무리 이리저리 있을 듯한 것을 끌어보니 생리(生理) 상(上) 구조(構造)의 자격(資格) 외(外)에는 겸사(謙辭*겸손한 말)가 아니라 정신(精神) 상(上)으로는 아무 자격이 없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성품(性品)이 조급(躁急)하여 조금 조금씩(式) 자라가는 것을 기다릴 수도 없을 듯도 싶고 과민(過敏)한 신경(神經)이 늘 고독(孤獨)한 것을 찾기 때문에 무시(無時)로 빽빽 우는 소리를 참을만한 인내성(忍耐性)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더구나 무지몰각(無知沒覺)하니 무엇으로 그 아해(兒孩)에게 숨어있는 천분(天分*타고난 재능이나 복)과 재능(才能)을 틀림없이 열어 인도(引導)할 수 있으며, 또 만일(萬一) 먹여주는 남편(男便)에게 불행(不幸)이 있다 하면 나와 그의 두 몸의 생명(生命)을 어찌 보존(保存)할 수 있을까.

그러고 나의 그림은 점점(漸漸) 불충실(不充實)해지고 독서(讀書)는 시간(時間)을 얻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내 자신(自身)을 교양(敎養)하여 사람답고 여성(女性)답게, 그리고 개성적(個性的)으로 살만한 내용(內容)을 준비(準備)하려면 썩 침착(沈着)한 사색(思索)과 공부(工夫)와 실행(實行)을 위(爲)한 허다(許多)한 시간(時間)이 필요(必要)하였었다.

그러나 자식(子息)이 생기고 보면 그러한 여유(餘裕)는 도저(到底)히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 아무리 생각하여도 내게는 군일 같았고 내 개인적(個人的) 발전상(發展上)에는 큰 방해물(妨害物)이 생긴 것 같았다.

이해(理解)와 자유(自由)의 행복(幸福)된 생활(生活)을 두 사람 사이에 하게 되고 다시 얻을 수 없는 사랑의 창조(創造)요, 구체화(具體化)요, 해답(解答)인 줄 알면서도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행복(幸福)과 환락(歡樂)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어찌나 슬펐는지 몰랐다.

나는 자격(資格) 없는 모(母) 노릇하기에는 너무 양심(良心)이 허락(許諾)지 아니 하였다. 마치 자식(子息)에게 죄악(罪惡)을 짓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인류(人類)에게 대(對)하여 면목(面目)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다 못하여 필경(畢竟) 타태(墮胎)라도 하여 버리겠다고 생각하여 보았다. 법률(法律) 상(上) 도덕(道德)상(上)으로 나를 죄인(罪人)이라 하여 형벌(刑罰)하면 받을지라도 조금도 뉘우칠 것이 없을 듯 싶었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實際)로 당(當)하였을 때 순간적(瞬間的)으로 일어나는 추악감(醜惡感)에 불과(不過)하였고, 이개(二個)의 인격(人格)이 결합(結合)하였고, 사랑이 융화(融化)한 자타(自他)의 존재(存在)를 망각(忘却)할 만치 영육(靈肉)이 절대(絶對)의 고경(苦境) 전(前)에 입(立)하였을 때 능(能)히 추측(推測)할 수 없는 망상(妄想)에 불과(不過)하였었다고 나는 정신(精神)을 수습(收拾)하는 동시(同時)에 깨달았다.

이는 다만 내 자신(自身)을 모멸(侮蔑)하고 양인(兩人)에게 모욕(侮辱)을 줄 뿐인 것을 진실(眞實)로 알고 통곡(痛哭)하였다. 좀더 해부적(解剖的)으로 말하자면 나는 항상(恒常) 개인(個人)으로 살아가는 부인(婦人)도, 중대(重大)한 사명(使命)이 있는 동시(同時)에 종족(種族)으로 사는 부인(婦人)의 능력(能力)도 위대(偉大)하다는 이지(理智)와 이상(理想)을 가졌었으며 그리하여 성적(性的) 방면(方面)으로 먼저 부인(婦人)을 해방(解放)함으로 말미암아 부인(婦人)의 개성(個性)이 충분(充分)히 발현(發現)될 수 있고 또 그것은 ‘진(眞)’이라고 말하던 것과는 너무 모순(矛盾)이 크고 충돌(衝突)이 심(甚)하였다.

내게 조금 자존심(自尊心)이 생기자 불안공축(不安恐縮)의 마음이 불일 듯 솟아올라 왔다. 동시(同時)에 절대(絶對)로 요구(要求)하는 조건(條件)이 생겼다.

이왕(已往) 자식(子息)을 날 지경이면 보통(普通)이나 혹(或) 보통(普通) 이하(以下)의 것을 낳고는 싶지 않았다. 보통(普通) 이상(以上)의 미안(美顔)에 마력(魔力)을 가진 표정(表情)이며 얻을 수 없는 천재(天才)이며 특출(特出)한 개성(個性)으로 맹진(猛進)할만한 용감(勇敢)을 가진 소질(素質)이 구비(具備)한 자(者)를 낳고 싶었다.

그러면 아들이냐? 딸이냐?

무엇이든지 상관(相關)없다.

그러나 남자(男子)는 제 소위(所謂) 완성자(完成者)가 많다하니 딸을 하나 낳아서 내가 못 해 본 것을 한껏 시켜보고 싶었었다. 한 여자라도 완성자(完成者)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러하면 만일(萬一) 딸이 나오려거든 좀 더 구비(具備)하여가지고 나오너라고 심축(心祝)하였다. 그러나 낙심(落心)이다, 실망(失望)이다.

내 뱃속에 있는 것은 보통(普通)은 고사(姑捨)하고 불구자(不具者)이다, 병신(病身)이다. 뱃속에서 뛰노는 것은 지랄을 하는 것이요, 낳으면 미친 짓하고 돌아다질 것이 안전(眼前)에 암암하다.

이것은 전(全)혀 내 죄(罪)이다.

포태(胞胎) 중에는 웃고 기뻐하여야 한다는데 항상(恒常) 울고 슬퍼했으며 안심(安心)하고 숙면(熟眠)하여야 좋다는데 부절(不絶)히 번민(煩悶) 중(中)에서 불면증(不眠症)으로 지냈고, 자양품(滋養品)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데 식욕(食慾)이 부진(不進)하였었다.

그렇게 갖은 못된 태교(胎敎)만 모조리 했으니 어찌 감(敢)히 완전(完全)한 아해(兒孩)가 나오기를 바랄 수 있었으리요.

눈이 비뚜로 박혔든지 입이 세로 찢어졌든지 허리가 꼬부라졌든지 그러한 악마(惡魔) 같은 것이 나와서

「이것이 네 죄(罪) 값이다.」

라고 할 것 싶었다.

몸소름이 쪽 끼치고 사지(四肢)가 벌벌 떨렸다.

이러한 생각이 깊어갈수록 정신(精神)이 아뜩하고 눈앞이 캄캄하여왔다.

아아, 내 몸은 사시나무 떨 듯 떨렸다.

그러나 세월(歲月)은 속(速)하기도 하다.

한번도 진심(眞心)으로 희망(希望)과 기쁨을 느껴보지 못한 동안에 어느덧 만삭(滿朔)이 당도(當到)하였다. 참 천만(千萬) 의외(意外)에 기이(奇異)한 일이 있었다. 이 사실(事實)만은 꼭 정(正)말로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 이듬해 사월(四月) 초순(初旬)경(頃)이었다.

남편(男便)은 외출(外出)하여 없고 이간(二間) 방(房) 중간(中間)벽(壁)에 늘어져있는 전등(電燈)이 전(前)에 없이 밝게 비추인 온 세상(世上)이 잠든 듯한 고요한 밤 십이 시(十二時)경(頃)이었다.

나는 분만(分娩) 후(後) 영아(嬰兒)에게 입힐 옷을 백설(白雪) 같은 ‘가-제’로 두어 벌 말아서 꾸미고 있었다. 대중을 할 수가 없어서 어림껏 조그마한 인형(人形)에게 입힐만하게 팔 들어갈 데 다리 들어갈 데를 만들어서 방바닥에다 펴놓고 보았다.

나는 부지불각(不知不覺) 중(中)에 문득 기쁜 생각이 넘쳐 올랐다.

일종(一種)의 탐욕성(貪慾性)인 불가사의(不可思議)의 희망(希望)과 기대(期待)와 환희(歡喜)의 념(念)을 느끼게 되었다. 어서 속(速)히 나와 이것을 입혀 보았으면, 얼마나 고울까 사랑스러울까.

곧 궁금증(症)이 나서 못 견디겠다.

진정(眞情)으로 그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렇게 만든 옷을 개켰다 폈다 놓았다 만졌다하고 기뻐 웃고 있었다.

남편(男便)이 돌아와 내 안색(顔色)을 보고 그는 같이 좋아하고 기뻐하였다.

양인(兩人) 간(間)에는 무언(無言) 중(中)에 웃음이 밤새도록 계속(繼續)되었다.

이는 결(決)코 내가 일부러 기뻐하였던 것이 아니라, 순간적(瞬間的) 감정(感情)이었다. 이것만은 역설(力說)을 가(加)하지 않고 자연성(自然性) 그대로 오래 두고 싶다.

임신(妊娠) 중(中) 한 번도 없었고 분만(分娩) 후(後) 한 번도 없는 경험(經驗)이었다.

그달 이십구일(二十九日) 오전(午前) 이 시(二時) 이십오 분(二十五分)이었다.

내가 지금(只今)까지 가진 병(病) 앓아보던 아픔에 비(比)할 수 없는 고통(苦痛)을 근(近) 십여(十餘) 시간(時間) 겪어 거진 기진(氣盡)하였을 때에 이 세상(世上)이 무슨 그다지 볼 만한 곳인지 구태여 기어이 나와서 「으앙으앙」 울고 있었다.

그때 나는 몇 번이나 울었는지 산파(産婆)가 어떻게 하며 간호부(看護婦)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모르고 시원한 것보다 아팠던 것보다 무슨 까닭 없이 대성통곡(大聲痛哭)하였다. 다만 설을 뿐이고 원통(怨痛)할 따름이었다.

그 후는 병원(病院) 침상(寢牀)에서 ‘스케치북’에 이렇게 쓴 것이 있다.

아프다, 아파
참 아파요 진정(眞情)
과연(果然) 아프다
푹푹 쑤신다 할까
시리 시리다 할까
딱딱 결린다 할까
쿡쿡 찌른다 할까
따끔따끔 꼬집는다 할까
찌르르 저리다 할까
깜짝깜짝 따갑다 할까
이렇게 아프다나 할까
아니라 이도 아니라

박박 뼈를 긁는 듯
짝짝 살을 찢는 듯
바짝바짝 힘줄을 옥이는 듯
쪽쪽 핏줄을 뽑아내는 듯
살금살금 살점을 저미는 듯
오장(五臟)이 뒤집혀 쏟아지는 듯
독기로 머리를 바수는 듯
이렇게 아프다나 할까
아니라 이도 또한 아니라

조그맣고 샛노란 하늘은 흔들리고
높은 하늘 낮아지며
낮은 땅 높아진다
벽(壁)도 없이 문(門)도 없이
통(通)하여 광야(廣野) 되고
그 안에 있는 물건(物件)
쌩쌩 돌다가는
어쩌면 있는 듯
어쩌면 없는 듯
어느덧 맴돌다가
갖은 빛 찬란(燦爛)하게
그리도 곱던 색(色)에
매몰히 씌워주는
검은 장막(帳幕) 가리우니

이 내 작은 몸
공중(空中)에 떠있는 듯
구석에 끼워 있는 듯
침상(寢床) 아래 눌려 있는 듯
오그라졌다 펴졌다
땀 흘렸다 으스스 추웠다
그리도 괴롭던가!
그다지도 아프던가!

차라리
펄펄 뛰게 아프거나
쾅쾅 부딪게 아프거나
끔뻑끔뻑 기절(氣絶)하듯 아프거나
했으면
무어라 그다지
십 분(十分) 간(間)에 한 번
오 분(五分) 간(間)에 한 번
금세 목숨이 끊을 듯이나
그렇게 이상히 아프다가
흐리던 날 햇빛 나듯
반짝 정신(精神) 상쾌(爽快)하며
언제나 아팠던 듯
무어라 그렇게
갖은 양념 가(加)하는지
맛있게도 아파라

어머님 나 죽겠소,
여보 그대 나 살려주오
내 심(甚)히 애걸(哀乞)하니
옆에 팔짱 끼고 섰던 부군(夫君)
「참으시오」 하는 말에
이놈아 듣기 싫다
내 악 쓰고 통곡(痛哭)하니
이 내 몸 어이타가
이다지 되었던고


(일구이일 년(一九二一 年) 오월(五月) 팔일(八日) ‘산욕(産褥)’ 중(中)에서)

4

분만(分娩) 후(後) 이십사(二十四) 시간(時間)이 되자 산파(産婆)는 갓난아이를 다른 침대(寢臺)에서 담쑥 안아다가 예사(例事)로이 내 옆에다가 살며시 뉘이며

「인젠 젓을 주어도 좋소.」

한다.

나는 깜짝 놀라

「응? 무엇?」

하며 물으니까, 피녀(彼女*그녀)는 생긋 웃으며

「첫 애기지요? 아마.」

한다.

부끄럽고 이상스러워서 아무 대답(對答)도 아니 했다.

피녀(彼女)는 벌써 눈치를 채었던지 자기(自己) 손으로 내 젖을 꺼내서 주물러 풀고 나서는

「이렇게 먹이라.」

고 내 팔 위에다가 갓난아이의 머리를 얹어 그 입이 꼭 내 젖꼭지에 달만치 대어주며 젖 먹이는 방법(方法)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어쩐지 몹시 선뜻했다.

냉수(冷水)를 등에다 쭉 끼치는 듯하였다.

나를 낳고 기른 부모(父母)도, 또 골육(骨肉)을 같이 한 형제(兄弟)도, 죽자 사자 하던 친구(親舊)도 아직 내 젖을 못 보았고 물론(勿論) 누구의 눈에든지 띄울까보다 퍽도 비밀(秘密)히 감추어 두었었다.

그 싸고 싸둔 가슴을 대담(大膽)히 헤치며 아직 입김을 대어 못 보던 내 두 젖을 공중(公衆) 앞에 전개(展開)시키라는 명령자(命令者)는 어제야 겨우 세상(世上) 구경을 한 핏덩어리였다.

이게 웬일인가?

살은 분명(分明)히 내 몸에 붙은 살인데 절대(絶對)의 소유자(所有者)는 저 조그만 핏덩이로구나……!

그리하여 저 소유자(所有者)가 세상(世上)에 나오자마자 의례(依例) 제 물건(物件) 찾듯이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찾는구나!

나는 웃음이 나왔다.

「세상(世上) 일이 이다지 허황(虛荒)된가」 하고.

그리고 「에-라 가져가거라.」

하는 퉁명스러운 생각으로 지금까지 맡아두었던 두 젖을 조그마한 소유자(所有者)에게 바치었다. 그리고 그 하회(下回)를 기다리고 앉았었다.

그 조그만 주인(主人)은 아주 예사(例事)롭게 젖꼭지를 덥석 물더니 쉴 새 없이 마음껏 힘껏 빨고 있다.

내 큰 몸뚱이는 그 조그마한 입을 향(向)하여 쏠리고 마치 허다(許多)한 임의(任意)의 점(點)과 점(點)을 연결(連結)하면 초점(焦點)에 달(達)하듯 내 전신(全身) 각(各) 부분(部分)의 혈맥(血脈)을 그 조그마한 입술의 초점(焦點)으로 모아드는 듯싶었다.

이와 같이 벌써 모(母)된 선고(宣告)를 받았다.

그러나 설상(雪上)에 가상(加霜)이다.

육십일(六十日) 동안은 겨우 부지를 하여 가더니 그 후(後)부터는 일절(一切) 젖이 나오지를 않는다. 이런 일은 빈혈성(貧血性)인 모체(母體)에 흔히 있는 사실(事實)이지만 유모(乳母)를 구(求)하려야 입에 맞는 떡으로 그리 쉽사리 얻을 수도 없고 밤중 같은 때에는 자기(自己)의 젖으로 용이(容易)히 재울 수 있을 것도, 숯을 피운다, 그릇을 가져온다, 우유(牛乳)를 데운다 하는 동안에 어린애는 금방(今方) 죽을 듯이 파랗게 질려서 난가(亂家)를 만든다.

그러나 겨우 먹여 재워놓고 누우면 약(約) 이(二) 시간(時間) 동안은 도무지 잠이 들지 않는 것이 보통(普通)이었으나 어찌저찌해서 잠이 들듯하게 되면 또다시 바시시 일어나서 못살게 군다.

이러한 견딜 수 없는 고통(苦痛)이 기월(幾月) 간(間) 계속(繼續)되더니 심신(心身)의 피곤(疲困)은 인젠 극도(極度)에 달(達)하여 정신(精神)엔 광증(狂症)이 발(發)하고 몸에는 종기(腫氣)가 끊일 새가 없었다.

내 눈은 항상(恒常) 체 쓴 눈이었고 몸은 마치 도깨비 같아 해골(骸骨)만 남았었다.

그렇게 내가 전(前)에 희망(希望)하고 소원(所願)이던 모든 것보다 오직 아침부터 저녁까지 똑 종일(終日)만 아니-그는 바라지 못하더라도 꼭 일(一) 시간(時間)만이라도 마음을 턱 놓고 잠 좀 실컷 자 보았으면 당장(當場) 죽어도 원(願)이 없을 것 같았다.

나도 전(前)에 잠 잘 시간(時間)이 너무 족(足)할 때는 그다지 잠에 뜻을 몰랐더니 ‘잠’처럼 의미(意味) 깊은 것이 없는 줄 안다.

모든 성공(成功), 모든 이상(理想), 모든 공부(工夫), 모든 노력(努力), 모든 경제(經濟), 모든 낙관(樂觀)의 원천(源泉)은 오직 이 ‘잠’이다. 숙면(熟眠)을 한 후(後)는 식욕(食慾)이 많고 식욕(食慾)이 있으면 많은 반찬(飯饌)이 무용(無用)이오, 소화(消化) 잘 되니 건강(健康)할 것이오, 건강(健康)한 신체(身體)는 건전(健全)한 정신(精神)의 기본(基本)이다.

이와 같이 어디로 보든지 ‘잠’ 없고는 살 수 없는 것이다.

진실(眞實)로 잠은 보물(寶物)이요 귀물(貴物)이다.

그러한 것을 탈취(奪取)해가는 자식(子息)이 생겼다하면 이에 더한 원수(怨讐)는 다시 없을 것 같았다. 그럼으로 나는

‘자식(子息)이란 모체(母體)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惡魔)’

라고 정의(定義)를 발명(發明)하여 재삼(再三) 숙고(熟考)하여 볼 때마다 이런 걸작(傑作)이 없을 듯이 생각했다.

나는 이러한 애소(哀訴)의 산문(散文)을 적어 두었던 일이 있었다.


세인(世人)들의 말이
실연(失戀)한 나처럼
불쌍하고 가련(可憐)하고 
참혹(慘酷)하고 불행(不幸)한 자(者)는
또 없으리라고
아서라 말아라
호강에 겨운 말
여기 나처럼
눈이 꽉 붓고
몸이 착 붙어
어쩔 수 없을 때
눈 떠라 몸 일으켜라
벼락같은 명령(命令) 받으니
네게 대(對)한 형용사(形容詞)는
쓰기까지 싫어라.


잠 오는 때 잠자지 못하는 자(者)처럼 불행(不幸) 고통(苦痛)은 없을 터이다.

이것은 실(實)로 ‘이브’가 선악과(善惡果) 따먹었다는 죄(罪)값으로 하느님의 분풀이보다 너무 참혹(慘酷)한 주저(呪咀)이다.

나는 이러한 첫 경험(經驗)으로 인(因)하여 태고(太古)부터 지금(只今)까지의 모-든 모(母)가 불쌍한 줄을 알았다.

더구나 조선(朝鮮)여자(女子)는 말할 수 없다.

천신만고(千辛萬苦)로 양육(養育)하려면 아들이 아니오, 딸이라고 구박하여 그 벌(罰)로 축첩(蓄妾)까지 한다. 이러한 야수적(野獸的) 멸시(蔑視) 하(下)에서 살아갈 때 그 설음이 어떠할까.

그러나 부득이(不得已)하나마 그들의 몸에는 살이 있고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있다.

그들의 생활(生活)은 전(全)혀 현재(現在)를 희생(犧牲)하여 미래(未來)를 희망(希望)하는 수밖에 살 길이 바이없었다. 오죽하여 그런 생(生)을 계속(繼續)하여 오리오마는 그들의 진정(眞情)에서 우러나오는 연애심(戀愛心)이며, 이것을 어서 속(速)히 길러서

「그 덕(德)에 호강을 해야지,」

하는 희망(希望)과 환락(歡樂)을 생각할 때 실(實)로 그들에게는 잘 수 없고 먹을 수 없는 고통(苦痛)도 고통(苦痛)이 아니오, 양육(養育)할 번민(煩悶)도 없었고, 구박 받는 비애(悲哀)를 잊었으며 궁구(窮究)하는 적막(寂寞)이 없었다.

말하자면 자연(自然) 그대로의 하느님, 그 몸대로의 선(善)하고 미(美)한 행복(幸福)의 생활(生活)이었다.

그러므로 일인(一人)의 모(母)보다도 이인(二人), 삼인(三人), 다수(多數)의 모(母)가 될수록 천당생활(天堂生活)로 화(化)하여 간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어느 심야(深夜)에 잠 잃고 조바심이 날 때 문득 이러한 생각이 솟아오르자 주먹을 불끈 쥐고 벌떡 일어앉았다.

「옳지! 인제는 알았다! 부모(父母)가 자식(子息)을 왜 사랑하는지? 날더러 아들을 낳지 않고 왜 딸을 낳았느냐고 하는 말을.」

나와 같이 자연(自然)을 범(犯)하려는, 아니 범(犯)하고 있는 죄(罪)의 피가 전신(全身)에 중독(中毒)이 된 자(者)의, 일시(一時)의 반감(反感)에서 나온 말이지마는 확실(確實)히 일면(一面)으로 진리(眞理)가 된다고 자긍(自肯)한다.

부모(父母)가 자식(子息)을 사랑하는 것은 솟아오르는 정(情)이라고들 한다.

그러면 아들이나 딸이나 평등(平等)으로 사랑할 것이다.

어찌하여 한 부모(父母)의 자식(子息)에게 대(對)하여 출생(出生) 시(時)부터 사랑의 차별(差別)이 생기고 조건(條件)이 생기고 요구(要求)가 생길까.

아들이니 귀(貴)업고 딸이니 천(賤)하며, 여자(女子)보다 남자(男子)를, 약자(弱者)보다 강자(强者)를, 패자(敗者)보다 우자(優者)-를.

이런 절대적(絶對的) 타산(打算)이 생기는 것이 웬일인가.

이 사실(事實)을 보아서는 그들의 소위(所謂) 솟는 정(情)이라고 하는 것을 믿을 수 없다. 그들의 내면(內面)에는 무슨 이만한 비밀(秘密)이 감추어 있는 것이 분명(分明)하다.

나는 지금(只今)까지 항상(恒常) 부모(父母)의 사랑을 절대(絶對)로 찬미(讚美)하여 왔다. 연인(戀人)의 사랑, 친구(親舊)의 사랑은 절대(絶對)의 보수적(報酬的)인 반면(反面)에 부모(父母)의 사랑만은 영원무궁(永遠無窮)한 절대(絶對)의 무보수적(無報酬的) 사랑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조실부모(早失父母)한 것이 섧고 분(忿)하고 원통(怨痛)하여 다시 그런 영원(永遠)의 사랑 맛을 보지 못할 비애(悲哀)를 감(感)할 때마다 견딜 수 없어 쩔쩔매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오해(誤解)이었음을 깨달을제, 낙심(落心)이 되었다. 실망(失望)하였다. 정(情)이 떨어졌다.

그들은 자식(子息)인 우리들에게 절대(絶對) 효(孝)를 요구(要求)하여 보은(報恩)하라 명령(命令)한다. 효(孝)는 백행지본(百行之本)이오, 죄막대어불효(罪莫大於不孝)라 하며 부몰(父沒)에 삼 년(三 年)을 무개어부지도(無改於父之道)라야 가위효(可謂孝)라 하여왔다.

그렇게 자식(子息)은 부모(父母)의 절대적(絶對的) 노예(奴隸)이었으며 부속품(附屬品)이었고 일생(一生)을 두고 부모(父母)를 위(爲)하여 희생(犧牲)하는 물건(物件)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사랑의 분량(分量)과, 보수(報酬)의 분량(分量)이 늘 평행(平行)하거나 이러한 때는 도리어 보수(報酬) 편(便)에 중(重)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우애(友愛)나 연애(戀愛)에 다시 비(比)할 수 없는 절대(絶對)의 보수적(報酬的) 사랑이오, 악독(惡毒)한 사랑이었다.

그러므로 절대(絶對)의 타산(打算)이 생기고 이기심(利己心)이 발(發)하여 국가(國家)의 흥망(興亡)보다도 개인(個人)의 안일(安逸)을 취(取)함에는 딸보다 아들의 수효(數爻)가 많아야만 하였고 딸은 무식(無識)하더라도 아들은 박식(博識)하여야만 말년(末年)에 호강을 볼 수 있는 것이라 하였다.

그들이 아들에 대(對)하여 미래(未來)에는 어찌나 무한(無限)한 희망(希望)과 쾌락(快樂)이 있는지 고통(苦痛) 번민(煩悶)까지 잃고 지내왔다. 이는 능자(能者)보다 무능자(無能子)에게 강(强)하고, 개명국(開明國)보다 야만국(野蠻國) 부모(父母)에게 많이 있는 사실(事實)이다.

나는 다시 부모(父母)의 사랑을 원(願)치 않는다. 일찍이 부모(父母)를 여윈 것은 내 몸이 자유(自由)로 해방(解放)된 것이오, 내 일(事業)이 국가(國家)나 인류(人類)를 위(爲)하는 일이 되게 천만(千萬) 행복(幸福)의 몸이 되었다. 당돌(唐突)하나마 나는 최후(最後)로 이런 감상(感想)을 말하고 싶다.

세인(世人)들은 항용(恒用), 모친(母親)의 애(愛)라는 것은 처음부터 모(母)된 자(者) 마음 속에 구비(具備)하여 있는 것 같이 말하나 나는 도무지 그렇게 생각이 들지 않는다.

혹(或) 있다 하면 제 이차(第 二次)부터 모(母) 될 때에야 있을 수 있다.

즉(卽) 경험(經驗)과 시간(時間)을 경(經)하여야만 있는 듯싶다.

속담(俗談)에

‘자식(子息)은 내리사랑이다.’

하는 말에 진리(眞理)가 있는 듯싶다.

그 말을 처음 한 사람은 혹시(或是) 나와 같은 감정(感情)으로 한 말이 아닌가싶다.

최초(最初)부터 구비(具備)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오륙(五六) 삭(朔) 간(間)의 장시간(長時間)을 두고 포육(哺育)할 동안 영아(嬰兒)의 심신(心身)에는 기묘(奇妙)한 변천(變遷)이 생기어 그 천사(天使)의 평화(平和)한 웃음으로 모심(母心)을 자아낼 때, 이는 나의 혈육(血肉)으로 된 것이오, 내 정신(精神)에서 생(生)한 것이라 의식(意識)할 순간(瞬間)에 비로소 짜릿짜릿한 모(母)된 처음 사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내 경험상(經驗上)으로 보아 대동소이(大同小異)한 통성(通性)으로) 모심(母心)에 이런 싹이 나서 점점(漸漸) 넓고 커 갈 가능성(可能性)이 생긴다.

그러므로 ‘솟는 정(情)’이라는 것은 순결성(純潔性) 즉(卽) 자연성(自然性)이 아니오, 단련성(煅煉性)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종종 있는 유모(乳母)에 맡겨 포육(哺育)케 한 자식(子息)에게는 별(別)로 어머니의 사랑이 그다지 솟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환언(換言)하면 천성(天性)으로 구비(具備)한 사랑이 아니라 포육(哺育)할 시간(時間) 중(中)에서 발(發)하는 단련성(煅煉性)이 아닐까 싶다.

즉(卽) 그런 솟아오르는 정(情)의 본능성(本能性)이 없다는 부인설(否認設)이 아니라 자식(子息)에 대(對)한 정(情)이라고 별(別)다른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 다음에 나는 자식(子息)의 필요(必要)를 아무렇게 하여서라도 알고 싶다.

그러나 용이(容易)히 해득(解得)할 수는 없다.

차대(次代)를 산(産)하여 차대(次代)를 교양(敎養)하는 것은 일반(一般) 부인(婦人)에게 나린 천직(天職)이다. 자연(自然)의 주장(主張)이오, 발전(發展)이다.

이런 개념적(槪念的) 이지(理知)와 내 당(當)한 감정(感情)과는 너무 거리(距離)가 떨어져 있다. 생물(生物)은 종족(種族)번식(繁殖)의 목적(目的)으로 생(生)하고 활(活)하니까, 라는 말도 내게는 아무 상관(相關)없는 듯싶다.

가정(家庭)에 아해(兒孩)가 없으면 너무 단순(單純)하니까, 달리 더 복잡(複雜)히 살 방침(方針)이 많은데 연로(年老)하여 의지(依持)하려니까, 나는 늙어 무능(無能)해지거든 깊은 삼림(森林) 속 포근포근한 녹계색(綠桂色) 잔디 위에서 자결(自決)하려는데, 이 빽빽 우는 울음소리만 좀 안 들었으면 고적(孤寂)한 맛을 좀 더 볼 듯 싶으며 이 방해물(妨害物)이 없으면 침착(沈着)한 작품(作品)도 낼 수 있을 듯싶고 자식(子息)으로 인(因)한 피곤(疲困) 불건강(不健康)이 아니면 아직도 많은 정력(精力)이 있을 터인데 오직 이것으로 인(因)하여, 이렇게 절대(絶對)의 필요(必要)의 반비례(反比例)로 절대(絶對)의 불필요(不必要)가 앞서 나온다.(통성(通性)이 아니라 독단(獨斷)으로) 그럴 동안 나는 자식(子息)의 필요(必要)로 조그마한 안심(安心)을 얻었다.

사람은 너무 억울한 모순(矛盾) 중(中)에 칩복(蟄伏*칩거)하여 있다.

그의 정신(精神)은 영원(永遠)히 자라갈 수 있고, 그의 이상(理想)은 무한(無限)으로 자아낼 수 있으나 오직 그의 생명(生命)의 시간(時間)이 유한(有限) 중(中)에 너무 단촉(短促)하고 그의 정력(精力)이 무능(無能) 중(中)에 너무 유한(有限)되다.

이렇게 무한적(無限的) 정신(精神)에 유한적(有限的) 육신(肉身)으로 창조(創造)해낸 조물주(造物主)도 생각해보니 너무 할 일이 없는 듯싶어 이에 자식(子息)을 내리사 너 자신(自信)이 실행(實行)하다가 못한 이상(理想)을 자식(子息)에게 실현(實現)케 하라 한 듯싶다. 그리하여 한 사람 이상(理想) 중(中)에는 미술(美術)도 문학(文學)도 음악(音樂)도 의학(醫學)도 철학(哲學)도 교육(敎育)도 보는 대로 듣는 대로 하고 싶다마는 재능(才能)이 부족(不足)할 뿐 아니라, 정력(精力)이 계속(繼續) 못되어 필경(畢竟) 하나나 혹(或) 둘쯤 밖에 즉(卽) 문학가(文學家)로 음악(音樂)을 조금 알 도리(道里)밖에 없다.

다른 모든 것에는 시간(時間)을 바칠 여가(餘暇)가 없어진다. 이럴 때 미술(美術)을 좋아하는 딸, 의학(醫學)이나 철학(哲學)을 좋아하는 아들이 자라가면 자기(自己)가 좋아하나 다못 실행(實行)치 못하던 것을 간접(間接)인 제이(第二) 자기(自己) 몸에 실현(實現)하려는 욕망(慾望)과 노력(努力)과 용감(勇敢)이 생기지 않는 것인가 싶다.

그러므로 자식(子息)의 의미(意味)는 단수(單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수(複數)에 있는 것 같이 생각된다.

만일(萬一) 정신상(精神上)으론 모-든 희망(希望)이 구비(具備)하고, 정력(精力)이 계속(繼續)할만한 자신(自信)이 있더라도 육신(肉身)이 쇠약(衰弱)하여 부절(不節)히 병상(病床)을 떠날 수 없어 그 이상(理想)과 실행(實行)에는 하등(何等)의 관계(關係)가 없는 것 같이 되면 고통(苦痛) 그것은 우리 생활(生活)을 향상(向上)하는데 아무 의미(意味)가 없을 것이오, 가치(價値)가 없을 것이다.

즉(卽) 지식(知識)으로나 수양(收養)으로 억제(抑制)치 못할 불건강(不健康)의 몸이 되고 본즉

「사람이 아니하려니까…….」

운운(云云)하던 것도 역시(亦是) 공상(空想)이다. 망상(妄想)이었다.


완(完)

RDF

A B 관계
모된 감상기 나혜석 A를 B가 저술하다.
모된 감상기 동명 A를 B에 연재하다.
모된 감상기 모성애 A가 B를 비판하다.
모된 감상기 백결생 B가 A를 비난하다.

네트워크 그래프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