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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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26년 『개벽(開闢)』 6월호에 발표되었다. 작자의 뜨거운 열정과 날카로운 현실감각이 빚어낸 자유시로서, 식민지치하에서 산출된 대표적인 저항시이다.


원문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해석

  • 국토를 빼앗긴 식민지하의 민족현실을 ‘빼앗긴 들’로 비유하여 직정적(直情的)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 시인이 던지고 있는 질문의 핵심은 들을 빼앗긴 지금 봄이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과연 우리가 참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 작자는 한 행으로 이루어진 제1연에서 이 물음을 던지고, 마지막 11연에서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라고 대답한다. 제1연과 11연 사이에 있는 아홉 연은 편의상 ① 제2∼3연, ② 제4∼6연, ③ 제7∼8연, ④ 제9∼10연의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 이와 같은 단락은 몽상적 상태에서 싱싱하고 풍요한 대지를 발견하여, 그 대지의 품안에서 땀흘리며 일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그러나 반성과 자각에 의해 이러한 환상이 깨지면서, 마지막 11연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와 같은 인식에 도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 특히 “가르마 같은 논길”, “삼단 같은 머리털”,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 그리고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 등의 구절들은 깊은 애정이 서린 표현들로서 풍요롭기 때문에 더욱 빼앗길 수 없는 민족의 삶과 조국의 땅에 대한 인식을 구체화하고 있다.


출처

공유마당

한국문화대백과사전


작성자 및 기여자

홍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