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장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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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운동

개요

소극장운동은 19세기 말 이래의 연극혁신운동의 하나로, 상업극장이나 궁정극장으로부터 연극을 해방하기 위한 운동이다.

이러한 소극장운동은 일반적으로 도시의 중산층 관객을 위한 형식을 띠며, 관객층을 화보하기 위해 직접 관객을 찾아 나선다는 특징이 있었다. 그리고 연극인의 자질 향상을 꾀하기 위해 연극 단체의 재정적 독립을 목표로 했고, 소규모 공연을 위주로 했기 때문에 적자가 심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었다.

전개와 의의

소극장운동은 1887년 프랑스의 앙드레 앙뜨완느라는 아마추어 연극인에 의해 자유극장에서 시작되어 이후 독일과 영국, 러시아, 미국을 거쳐 일본에 확산되면서 우리나라에도 들어온 연극 운동이다.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소극장운동의 시작은 1969년 4월, 자유극장 대표 이병복이 설립한 카페 테아트르가 문을 열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지만, 카페 테아트르는 1975년 11월 운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하지만 문을 닫기 전까지 소극장69라는 이름을 달고 공연을 진행했으며, 주변지역의 공연을 활성화시키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그 후로 몇 개의 소극장이 나타났다가 사라졌으나 70년대에 국립극장 소극장과 드라마 센터를 제외하고도 연극인회관, 세실소극장, 창고극장, 실험극장 소극장, 민예소극장, 에저또포켓극장, 세실연극실험실, 중앙소극장의 8개의 소극장이 개관하였다. 80년대에도 여전히 소극장을 중심으로 공연활동이 이루어졌다. 소극장 운동의 목표는 연극의 예술성 확립과 기성 연극, 특히 상업주의 연극에 대한 도전과 새로운 시대의 연극을 창조하기 위한 실험정신에 있다. 비록 좁은 무대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소수의 관객을 상대로 하는 연극이기는 하나, 기성 연극을 파괴하고 도전하려는 예술적인 선언과 의지의 표상이었다.1) 그러나 극장운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원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연극의 폭을 좁게 하고, 상업적 연극을 양산시키면서 연극발전의 저해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때문에 소극장운동에 반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었다.

관련항목

차범석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소극장운동 제작극회 A는 B에 의해 전개됬다

참고문헌

1) 무천극예술학회, 「차범석 희곡연구」, 국학자료원, 2003


위키백과


부산역사문화대전


글로벌 세계 대박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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