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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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송몽규는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이다.

생애

일생

  • 1917년 9월 28일에 중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기독교 신자로 명동학교 조선어 교사였던 송창희(宋昌羲, 1891∼1971)의 장남이다. 시인 윤동주의 고종사촌 형이다. 아명은 한범(韓範)인데, 아명으로 쓴「술가락」이 1935년 1월 1일자「동아일보」신춘문예에 콩트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그 뒤 1935년 3월 말에 은진중학교 3학년을 수료한 뒤 중국 낙양군관학교 제2기생으로 입학하였는데, 동기생들과 함께「신민(新民)」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 1935년 11월 경에는 남경을 떠나 산동의 제남에서 독립운동단체에 가담하였다. 1936년 4월 10일에 일본 영사관 경찰에게 체포되어 본적지인 함경북도 웅기경찰서로 압송되었다가, 9월 14일에 거주 제한의 조건으로 석방되었다. 1937년 4월에는 길림성 용정의 대성중학교에 4학년으로 편입하였고, 1938년 4월 9일에 연희전문대학교 문과에 진학하였으며, 1942년 4월 1일에 교토제국대학 사학과 서양사 전공에 입학하였다.

체포와 사망

  • 1943년 7월 10일, "재경도(在京都) 조선인학생 민족주의그룹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윤동주는 7월 14일 체포되었다. 특별고등경찰에 체포되어, 시모가모 경찰서의 유치장에 감금되었다.
  • 1944년 봄에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으며, 1944년 4월 13일에 윤동주와 함께 징역 2년 형을 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송몽규는 일본의 민족말살정책을 비판하였으며, 일본이 머지 않아 패전할 것이므로 그 시기에 맞춰서 대세를 몰아 조선 독립을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고 한다.
  • 형이 확정되어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송되었다. 윤동주와 함께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2월 16일 윤동주는 절명했으며, 3월 7일 송몽규 역시 사망하여 순국했다. 윤동주와 송몽규의 옥사에는 생체실험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6]
  • 송몽규의 시신은 명동 장재촌 뒷산에 묻혔고, 윤동주의 비문을 지었던 윤동주 아버지의 친구 김석관이 《청년문사 송몽규 지묘》이라는 비문을 썼다.

사후

  • 송몽규와 인척지간으로 송몽규의 조카가 되는 송우혜는, 《윤동주 평전》을 집필하면서 송몽규의 일생도 함께 정리하였다. 그동안 무덤의 위치가 잘못 알려져 있어 찾을 수 없었는데, 윤동주 평전을 집필하면서 수록된 증언 덕분에 올바른 묘지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 1990년 4월에 송몽규의 묘는 윤동주가 묻혀 있는 용정으로 이전하여 윤동주의 묘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에 묻히게 되었다.
  • 사후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송몽규 전집

  • 술가락
  • 하늘과 더불어

송몽규 관련 전집

  • 윤동주의 「이런 날」(1936. 6. 10)에서 언급되는 '형'은 송몽규를 뜻하는 것이라고 해석이 있다.


사이 좋은正門의 두돌긔둥끝에서 五色旗와 太陽旗가 춤을추는날, 금(線)을 은地域의 아이들이즐거워하다,

아이들에게 하로의乾燥한學課로 해ㅅ말간 倦怠가 깃들고 ‘矛盾’ 두자를 理解치 하도록 머리가 單純하였구나,

이런 날에는 잃어버린 頑固하던 兄을, 부르고 싶다. -1936년 6월 10일

― 윤동주 이런 날


  • 윤동주를 주제로 한 59편의 시들을 엮어서 <윤동주의 빛>이라는 시집을 낸 이탄 시인이 직접 해당 시집 내에 <송몽규>라는 시를 적어놓았다.


송몽규

이 탄


항상 윤동주의 뒤에는 송몽규가 있었다 윤동주의 앞에는 송몽규가 있었다 송몽규는 윤동주의 그림자가 되어 있었다 무슨 일을 하든 윤동주의 조용한 얼굴에는 송몽규가 있었다 송몽규는 독립군에 들어가 있을 때도 그의 그림자는 남겨놓고 떠났다 학교는 그럭저럭 윤동주와 맞먹었어도 생각하는 것, 그것을 옮기는 것은 송몽규였다 실천자, 그는 혼자 돌아다니는 윤동주를 나무라지 않았다 윤동주가 시를 쓰는 일이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를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고종사촌의 아들 송몽규도 일본에 와 있었다

송몽규의 그림자는 넓고 넓었다 그는 그 안에서 쓰러진 벼농사를 일으켜 세우고 물을 대주는 일도 해야 했다 신작로에 말없이 백힌 돌 하나 그 돌 하나만이라도 뽑아서 뾰족하게 만들어야 했다

아세아에서 누가 일본의 힘을 누를 것인가 아세아에서 누가 일본에게 덤벼들 것인가 벌은 날아다니는 곤충 개미는 애써 먹을 양식을 마련하는 곤충 이 두 곤충의 삶을 비교하여 벌은 벌대로 개미는 개미대로 살아야 할 것을 요구했다 이 요구, 만해의 부릅뜬 언어, 조선독립의 이유서 벌은 일본이고 개미는 조선일지라도 각기 살아가야 한다 벌이 어떻게 개미를 도울 수 있단 말인가 송몽규의 생각도 이러했으리라 벌은 하루 종일 꿀을 모아야 하지만 저 허리가 잘록한 개미, 기어다니는 개미는 개미대로 즐거워야 한다 송몽규의 온몸은 이런 생각으로 차 있었다 이런 투로 그의 그림자는 그림자로 가득했다 윤동주의 뒤 윤동주의 앞 항상 그림자 안에서 지냈다


윤동주는 그림자만 보아도 뜻을 알았다 그 뜻에 다치거나 그 뜻에 흠집이 생기거나 그 뜻에 동티가 나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림자에 더 첨가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그림자를 잘 보관시키도록 해야 했다

마당에 서 있는 사철나무 껌껌해도 볼 수 있는 사철나무 항상 빛을 잃지 않은 사철나무의 뜻을 새삼 나무만큼 알았다

저 하늘에는 여전히 별이 떠 있다 사철나무나 저 별들은 변하지 않는 두 사람의 우정 하나가 동적이면 하나는 정적이다 윤동주는 조용한 성품이지만 마음속 깊은 곳은 두 사람이 같았다 하나는 그림자, 하나는 그림자에 싸인 사람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송몽규 독립운동 A는 B에 기여한다


출처

한국민족문학대백과사전:송몽규

작성자 및 기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