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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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릉 | 隆陵

조선 영조(英祖, 재위 1724~1776)의 둘째 아들로, 사후 왕으로 추존된 장조(莊祖 1735~1762, 사도세자)와 부인 헌경왕후(獻敬王后) 홍씨를 합장한 무덤이다. 조선 22대 정조와 그의 부인인 효의왕후 김씨의 무덤인 건릉과 함께 위치해있고, 1970년 5월 26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정보

시대 조선 정조 13년(1789)
분류 유적건조물, 무덤, 왕실무덤, 조선시대
지정종목 사적
지정(등록)일 1970년 5월 26일
면적 842,662m2
소유자(소유단체) 국가(문화재청)
관리자 문화재청 조선왕릉서부지구관리소


소재지

  •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481번길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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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융릉은 원래 양주의 배봉산에 있던 영우원을 수원의 화산으로 옮겨 현륭원이라 하였다. 899년 11월 장종(莊宗)으로 추존되고 무덤도 융릉(隆陵)이라는 능호를 받았으며, 그해 12월에는 장종에서 장조(莊祖)로 묘호가 다시 바뀌었다.

합장묘인 융릉의 봉분 아랫부분은 12지신상 대신 목단과 연꽃 문양이 양각된 12면의 병풍석이 감싸고 있다. 난간석은 없으며, 봉분 뒤쪽으로는 3면의 곡장(曲墻; 나지막한 담)이 둘러져 있다. 석물로는 상석 1좌, 망주석 1쌍, 석양(石羊)·석호(石虎) 각 1쌍, 문인석 1쌍, 팔각 장명등 1좌, 무인석·석마(石馬) 각 1쌍이 배치되었다.

능이 조성된 언덕 아래쪽에는 정자각·비각·홍살문·재실이 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길을 참도(參道)라 하는데 정자각까지 참도 좌우 양측에 박석(薄石)을 깔아놓은 것이 특이하다. 정조는 현륭원을 마련할 때 온갖 정성을 기울여 창의적으로 만들었다.

또 다른 조선의 왕릉에는 태조건원릉, 태종원경왕후헌릉, 세종소헌왕후영릉, 태조 계비 신덕왕후정릉 등이 있다.

작성자

이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