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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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李箱, 1910년 9월 23일 ~ 1937년 4월 17일)일제 강점기시인, 작가, 소설가, 수필가, 건축가로 일제 강점기 한국의 대표적인 근대 작가이자 아방가르드 문학가이다. 본명이 김해경(金海卿)이며 본관이 강릉 김씨(江陵 金氏)이다. 난해한 작품들을 많이 발표한 시인 겸 소설가. 건축 일을 하기도 하였다. 《날개》를 발표하여 큰 화제를 일으켰고 같은해에 《동해(童骸)》, 《봉별기(逢別記)》 등을 발표하였다. 그는 시, 소설, 수필에 걸쳐 두루 작품 활동을 한 일제 식민지시대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특히 그의 시와 소설은 1930년대 모더니즘의 특성을 첨예하게 드러내준다.


약력

학력사항

  • 신명학교
  • 동광학교
  • 1922년 ~ 보성고등보통학교
  • 1929년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 건축학



경력사항

  • 1936년 ~ 구본웅이 경영하는 창문사에서 시와소설 편집

생애 및 활동사항

생애초기

경성부 북부 순화방 반정동 4통 6호에서 부친 김영창(金演昌)과 모친 박세창(朴世昌)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김해경(金海卿), 본관은 강릉이다. 제적부에 기재된 본적은 경성부 통동(이후 통인동으로 개칭) 154번지다. 형제로 누이동생 김옥희와 남동생 김윤경이 있다. 김영창은 일본 강점 전 구한말 당시 궁내부 활판소에서 일하다 손가락이 절단된 뒤 일을 그만두고 집 근처에 이발관을 개업, 가계를 꾸렸다. 1913년, 백부 김연필은 본처 사이에 소생이 없던 차에 조카인 이상을 데려다 친자식처럼 키우고 학업을 도왔다. 1917년 여덟 살 되던 해 누상동의 신명학교에 입학했다. 재학 중, 화가 구본웅과 동기생이 되어 오랜 친구로 이어졌다. 1921년 신명학교를 졸업한 뒤 조선불교중앙교무원에서 경영한 동경학교에 입학했다. 1922년 동광학교가 보통학교와 합병되자 보성고보에 편입했다. 재학 중에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화가 지망생이 되었으며 학업 서적도 상급 수준에 닿았다. 1925년 교내 미술전람회에서 유화 〈풍경〉이 입선했다. 1926년 3월 보성고보 제4회 졸업생이 되었다. 같은 해 경성 동숭동의 관립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부에 입학했다. 1929년 동 학교 건축과를 수석 졸업했다. 졸업기념 사진첩에 본명 대신 이상(李箱)이라는 별명을 썼는데, 구본웅에게 선물로 받은 화구상자(畵具箱子)에서 연유했다는 증언이 있다. 이때 받은 화구상자가 오얏나무로 만들어진 상자였기 때문에 이상(李箱)은 '오얏나무 상자'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취직과 등단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부를 수석으로 졸업하자 학교의 추천으로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발령을 받았다. 이해 11월 조선총독부 관방회계과 영선계로 자리를 옮겼다. 또한, 조선에 진출한 일본인 건축기술자를 축으로 1922년 3월 결성된 조선건축회에 정회원으로 가입, 이 학회의 일본어 학회지 《조선과 건축》(朝鮮と建築)의 표지 도안 현상 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되었다. 1930년 조선총독부가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일반에게 홍보하기 위해 펴내던 잡지 《조선》 국문판에 2월호부터 12월호까지 9회에 걸쳐 데뷔작이자 유일한 장편소설 《12월 12일》을 필명 이상(李箱) 아래 연재하였다. 1931년 6월,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서양화 〈자상〉이 입선했다. 같은 해 《조선과 건축》에 일본어로 쓴 시 〈이상한가역반응〉 등 20여편을 세 차례에 걸쳐 발표했다. 1932년 《조선과 건축》에 〈건축무한육면각체〉 제하에 일본어 시 〈AU MAGASIN DE NOUVEAUTES〉, 〈출판법〉 등을 발표했다. 《조선》에 단편소설 〈지도의 암실〉을 비구(比久) 필명으로 발표하고 단편소설 〈휴업과 사정〉을 보산(甫山) 필명으로 잇달아 발표했다. 동년 《조선과 건축》 표지 도안 현상 공모에서 가작 4석으로 입상했다.



병고

1931년 이상은 폐결핵 감염 사실을 진단받았고 병의 증세는 점차 악화되었다. 1933년 폐결핵으로 직무를 수행키 어렵게 되자 기수직에서 물러앉고 봄에 황해도 배천 온천에서 요양하였다. 이곳에서 알게 된 기생 금홍을 서울로 불러올려 종로 1가에 다방 제비를 개업하며 동거하였다. 같은 해 문학단체 구인회의 핵심 동인인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박태원 등과 교유를 트고 정지용의 주선을 통해 잡지 《가톨닉청년》에 〈꽃나무〉, 〈이런 시〉 등을 국문으로 발표했다. 이듬해 이태준의 도움으로 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지만, 15편을 발표한 후 너무도 원색성 짙은 성적 표현이 끝내 독자들의 항의와 비난에 시달림으로 힘입어 연재를 중도 작파하였다. 같은 해 동 잡지에서 연재된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아호 하융(河戎) 아래 삽화를 그렸다. 1935년 다방 제비를 경영난으로 폐업하고 금홍과 결별한다. 인사동의 카페 쓰루(鶴)와 다방 69를 개업 양도하고 명동에서 다방 무기[參]를 경영하다 문을 닫은 후 성천, 인천 등지를 표표하였다.



도일과 사망

1936년 구본웅의 알선으로 창문사에 근무하면서 구인회 동인지 《시와 소설》 창간호를 편집 발간했다. 단편소설 〈지주회시〉, 〈날개〉를 발표하면서 평단의 관심을 받았다. 이해 연작시 〈역단〉을 발표하고 〈위독〉을 《조선일보》에 연재하며 가장 생산적인 한 해를 보냈다. 6월 변동림과 결혼, 경성 황금정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10월 하순 새로운 문학 세계를 좇아 도일했다. 동경에서 삼사문학의 동인 신백수, 이시우, 정현웅, 조풍연 등을 자주 만나 문학을 토론했다. 이듬해 단편소설 〈동해〉, 〈종생기〉를 발표했다. 1937년 2월 사상 혐의로 동경 니시간다 경찰서에서 피검된 후 한 달 정도 조사를 받다 폐결핵 악화로 보석으로 출감한 뒤 동경제국대학 부속병원에 입원했다. 4월 17일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2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위독하다는 급보를 듣고 일본으로 건너온 부인 변동림이 유해를 화장하고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하였다. 말년의 이상은 술과 여자를 즐겼다고 한다. 동료 문인이자 친구인 박태원은 이상에 대해서 "그는 그렇게 계집을 사랑하고 술을 사랑하고 벗을 사랑하고 또 문학을 사랑하였으면서도 그것의 절반도 제 몸을 사랑하지는 않았다."면서 "이상의 이번 죽음은 이름을 병사에 빌었을 뿐이지 그 본질에 있어서는 역시 일종의 자살이 아니었든가 - 그러한 의혹이 농후하여진다."고 하기도 했다.



사후

그를 기려 출판사 문학사상사에서 이상문학상을 1977년 제정해 매년 시상하고 있다. 2008년에는 현대불교신문사와 계간 ‘시와 세계’가 이상시문학상을 제정해 매년 수상자를 내고 있다. 2010년에는 탄생 100주년을 맞아 생전에 발표한 작품과 사후 발굴된 작품을 포함해 그의 문학적 세계를 재발견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문학적 활동

작품활동

그의 작품 활동은 1930년 《조선》에 첫 장편소설 〈12월 12일〉을 연재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뒤 1931년 일문시(日文詩) 〈이상한 가역반응〉 · 〈파편의 경치〉 · 〈▽의 유희〉 · 〈공복〉 · 〈삼차각설계도(三次角設計圖)〉 등을 《조선과 건축》에 발표하였다. 이어 1933년 《가톨릭청년》에 시 〈1933년 6월 1일〉 · 〈꽃나무〉 · 〈이런 시(詩)〉 · 〈거울〉 등을, 1934년 《월간매신(月刊每申)》에 〈보통기념〉 · 〈지팽이 역사(轢死)〉를, 《조선중앙일보》에 국문시 〈오감도(烏瞰圖〉 등 다수의 시작품을 발표하였다. 특히 〈오감도〉는 난해시로서 당시 문학계에 큰 충격을 일으켜 독자들의 강력한 항의로 연재를 중단하였던 그의 대표시이다. 시뿐만 아니라 〈날개〉(1936), 〈지주회시〉(1936), 〈동해(童骸)〉(1937) 등의 소설도 발표하였다.



문학세계

이상은 1930년대를 전후하여 세계를 풍미하던 자의식문학시대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의식문학의 선구자인 동시에 초현실주의적 시인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의 문학에 스며있는 감각의 착란(錯亂), 객관적 우연의 모색 등 비상식적인 세계는 그의 시를 난해한 것으로 성격 짓는 요인으로서 그의 개인적인 기질이나 환경, 그리고 자전적인 체험과 무관한 것은 아니나, 근본적으로는 현실에 대한 그의 비극적이고 지적인 반응에 기인한다. 그리고 그러한 지적반응은 당대의 시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한국시의 주지적 변화를 대변함과 동시에 현대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그러한 지적 태도는 의식의 내면세계에 대한 새로운 해명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무의식의 메커니즘을 시세계에 도입하여 시상의 영토를 확장하게 하였다.

그의 시는 전반적으로 억압된 의식과 욕구좌절의 현실에서 새로운 대상(代償) 세계에로의 탈출을 시도하는 초현실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정신을 논리적 사고과정에서 해방시키고자 함으로써 그의 문학에서는 무력한 자아가 주요한 주제로 나타나게 된다. 시 〈거울〉이나 소설 〈날개〉 등은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대표적 작품이다.

또한, 시 〈오감도〉는 육체적 정력의 과잉, 말하자면 발산되어야 하면서도 발산되지 못한 채 억압된 리비도(libido)의 발작으로 인한 자의식과잉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대상을 정면으로 다루지 못하고 역설적으로 파악하는 시적 현실이 잘 드러나 있다. 바로 이 같은 역설에서 비롯되는 언어적 유희는 그의 인식태도를 반영하고 있는 동시에 독특한 시각방법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억압받은 성년의 욕구가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원고향인 유년시대로 퇴행함으로써 욕구충족을 위한 자기방어의 메커니즘을 마련하였고, 유희로서의 시작(詩作)은 그러한 욕구충족의 한 표현이 되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인간모순을 언어적 유희와 역설로 표현함으로써 시적구제(詩的救濟)를 꾀한 시인이었다.

기타 시 작품으로 〈소영위제(素榮爲題)〉(1934), 〈정식(正式)〉(1935), 〈명경(明鏡)〉(1936) 등과, 소설 〈봉별기(逢別記)〉(1936), 〈종생기(終生記)〉(1937), 수필 〈권태(倦怠)〉(1937), 〈산촌여정(山村餘情)〉(1935) 등이 있다. 유저로 이상의 시 · 산문 · 소설을 총정리한 《이상전집》 3권이 1966년에 간행되었다.



작품에 대한 평가

이상은 작품 내에서 문법을 무시하거나 수학 기호를 포함하는 등 기존의 문학적 체계를 무시한 새롭고 실험적인 시도를 하였다. 이는 한국어 문학에서 이전에 시도된 적이 거의 없던 것이며, 이로 인해 그의 작품들은 발표 직후부터 현대까지 문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또한 그의 작품은 줄거리의 전개방식이 명확한 경우가 많지 않고 소설의 전개는 극단적으로 주인공의 내면에만 치중되어 있는 자폐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 역시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자신의 흥미나 형이상학적 의미에만 집착하는 성향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작가 이상 스스로에 대한 묘사라고도 분석된다.

문법파괴와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 특유의 서술방식은 주인공의 비문법적인, 즉 무의식적인 내면을 잘 드러내며, 기존 문학에 대한 반감 또는 무시를 의미하는 동시에, 서술의 대상을 없애고 언어 자체에만 비중을 둔다.

일부 주장에 따르면, 이상은 언어유희를 이용하여 조선총독부에서 직접 발간하는 종합전문 월간지에 큰 글씨로 12, 12라는 제목의 소설을 연재하는 방식으로 일제에 대한 저항을 표현했다. 조선총독부의 일본인 관리들은 12, 12를 단순히 숫자로만 이해했고 한글 발음으로 했을 때 욕설이 된다는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을 이용하여 이상이 그들을 골탕먹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상이 일제에 대한 큰 반감이나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부정되기도 한다. 한편, 시 오감도의 "13人의 兒孩가…"나 이상이 ‘제비’ 다방 다음으로 개업하려고 간판을 붙였다가 그 의미가 탄로나 허가 취소된 '69 다방', 남녀의 성교를 상징하는 33과 23(二十三, 다리 둘과 다리 셋의 합침) 및 且8(한글로 차팔 또는 조팔이라 읽음. 발기한 남성 성기 또는 18과 대칭을 나타냄) 등의 표현 역시 성적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저서(작품)

날개

단편. 1936년 《조광(朝光)》에 발표. 첫사랑 금홍(錦紅)과의 2년 여에 걸친 동거생활 속에서 얻어진 작품이라고 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나와 아내는 각각 다른 의식의 분열된 내면세계를 그대로 표백하고 있다. 분열된 두 의식세계가 결합될 수도, 분열된 채로 나아갈 수도 없는 비극과 고뇌를 담고 있다.

주인공인 나는 일상적 상식의 세계를 떠나 그날그날을 그저 까닭없이 의욕도 없이 방 속에서만 뒹굴며 지낸다. 그는 심심하여 아내가 외출하고 난 후면 아내의 방에 가서 화장품 냄새를 맡고 돋보기로 화장지를 태우며 아내의 체취를 맡는다. 무기력하기만 한 나는 이렇게 함으로써 아내와 만남을 가질 수 있고, 결국은 이것이 육체적인 쾌락을 맛보게 하는 결과를 자아낸다. 이로써 아내는 자기의 직업(돈을 벌기 위한 손님과의 매음행위)에 대한 불편을 느끼게 되고 나를 그 "볕 안드는 방"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아스피린 대신 수면제를 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모순에 봉착한 나는 "서서히 아내에 관하여 연구할 작정이다" "아스피린과 아달린에 관하여 연구하였다" "나를 밤이나 낮이나 재워놓고, 그리고 아내는 내가 자는 동안에 무슨 짓을 했나?" 하고 산속의 정적 가운데서 이것저것을 생각해 본다.

이 현실세계의 재비판과 자신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나는 현실에의 "재생(再生)"의 욕망으로 불타게 된다. 이 욕망이란 곧 현실세계에 다시 섞여 걸어가는 것을 의미하며, "날개"는 곧 이 욕망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고 절규함으로써 이 작품은 새로운 탄생의 순간을 말하고 있다.



오감도(烏瞰圖)

연작시(連作詩).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 이 작품이 발표되자 독자들은 '무슨 개수작이냐'며 항의 투서가 수십 장씩 날아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파격적인 작품으로, 종래의 시의 고정관념을 크게 무너뜨린 작품이기도 했다.

〈오감도〉 제1호에 등장하는 〈13인의 아해〉는 최후의 만찬에 합석한 예수의 13제자를 상징한다는 풀이도 있고, 무수(無數)를 표시하여 '13'으로 했다는 설명이 있으나 평자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다른 견해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든 이 작품이 이성(理性)의 몰락에 의하여 파탄을 입은 객체인 현실의 부조리, 그 혼란과 모순을 언어의 도면으로 보여준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이의가 없을 것 같다.

작품의 구체적 의미파악이 불가능한 반면, 관습이나 합리성을 무시하고 비합리적 용어를 애써 사용했다는 점을 형식상의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겠다. 작품의 전체적 인상에서 풍기는 불안감 · 공포감 · 혼란감 등이 읽는 이에게 막연하게 전달될 뿐이다.



거울

시. 난해를 극한 시작품의 대부분이 반이성(反理性)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데 반하여 작품 〈거울〉은 상당히 이색적이다. 상식과 이성의 세계에서 독특한 화술의 기교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있소//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요//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요//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못하는구료마는/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져보기만이라도했겠소//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또꽤닮았소/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작품 〈거울〉의 전편인데 결국은 거울을 통하여 보는 그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의 대부분은 거울에 비친 자기의 실물과는 반대되는 한 측면을 재치있는 화술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된 의미는 제10행의 "잘은 모르지만 외로 된 사업에 골몰할께요"와 최종 행의 표현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은 모순된 현실에 대한 자기의 무능을 자기도 바라만 보고 어쩔 수 없음을 자의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봉별기(逢別記)

단편. 〈날개〉와 함께 기생 금홍과의 생활에서 얻어진 작품. 그러나 〈날개〉가 '나'와 '아내'의 자의식의 갈등을 그린 것이라면 이 〈봉별기〉는 금홍과 만나고 헤어짐을 차분하게 서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금홍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상식성에 지배된 인간이어서 수시로 거짓말을 하고 간음을 하고 출분(出奔)을 한다. 그러나 이 부정하고 불성실한 금홍을 나는 너그럽고 따뜻한 관용의 태도로 맞는 것이다.

"금홍이의 모양은 뜻밖에도 초췌하여 보이는 것이 참 슬펐다. 나는 꾸짖지 않고 맥주와 붕어과자와 장국밥을 사먹여가면서 금홍이를 위로해 주었다." 이렇게 금홍을 측은하게 보는 나는 일단 헤어진 금홍이가 다시 돌아올 때에도 너그럽게 맞아 준다. "금홍이는 역시 초췌하다. 생활 전선에서의 피로의 빛이 그 얼굴에 여실하였다"라면서 아내의 고독과 피로를 이해한다. 혐오할 만한 존재인 금홍, 그러나 나는 그 존재를 차분하고 정답게 대해주는 것이다.

출분한 금홍이가 돌아오자 두 사람은 깊은 밤에 술을 마신다. 금홍은 육자배기를 부르고 나는 영변가(寧邊歌)를 한마디 한다. 구슬프면서 괴로운 대좌다. 삶이라는 어찌할 수 없는 숙명 앞에서 떠는 약하디 약한 두 모습이다. 이 작품에서의 따뜻함과 차분함은 그렇다고 간음한 아내를 용서하는 관용은 아니다. 나와 전연 별개로 구분되는 금홍에 대한 동정과 유화(宥和)의 상태, 이해(理解)의 상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작품 목록

작품목록
소설 수필 동화
  • 날개
  • 《종생기》
  • 《단발(斷髮)》
  • 《실화(失花)》
  • 《환시기(幻視記)》
  • 《동해(童骸)》
  • 《봉별기(逢別記)》
  • 《지주회시(蜘蛛會豖)》
  • 《지도의 암실》
  • 《지팽이 역사》
  • 《사신1-9》
  • 《12월 12일》
  • 《권태》
  • 《산촌여정》
  • 《첫번째 방랑》
  • 〈異常ナ可逆反応 (이상한 가역반응) (《朝鮮と建築 (조선과 건축)》1931년 7월호)
  • 〈破片ノ景色:△ハ俺ノAMOUREUSEデアル (파편의 경치: △은 나의 AMOUEUSE이다)

(《朝鮮と建築 (조선과 건축)》1931년 7월호)

  • 〈▽ノ遊戯ー:△ハ俺ノAMOUREUSEデアル (▽의 유희: △은 나의 AMOUREUSE이다)

(《朝鮮と建築 (조선과 건축)》1931년 7월호)

  • 〈ひげー:(鬚·鬚·ソノ外ひげデアリ得ルモノラ·皆ノコト

(수염-: (鬚·鬚·그 밖에 수염일 수 있는 것들·모두를 이름))

(《朝鮮と建築 (조선과 건축)》1931년 7월호)

  • 〈BOITEUX·BOITEUSE〉(《朝鮮と建築 (조선과 건축)》1931년 7월호)
  • 〈空腹ー (공복-)〉(《朝鮮と建築 (조선과 건축)》1931년 7월호)
  • 건축무한육면각체
  • 꽃나무〉(《가톨닉靑年》 1933년 7월호)
  • 〈이런 詩〉(《가톨닉靑年》 1933년 7월호)
  • 〈一九三三, 六, 一〉(《가톨닉靑年》 1933년 7월호)
  • 〈거울〉(《가톨닉靑年》 1933년 10월호)
  • 〈普通紀念〉(《月刊每申》 1934년 7월호)
  • 오감도(烏瞰圖)》
  1. 〈詩第一號〉(《朝鮮中央日報》1934년 7월 24일)
  2. 〈詩第二號〉(《朝鮮中央日報》1934년 7월 25일)
  3. 〈詩第三號〉(《朝鮮中央日報》1934년 7월 25일)
  4. 〈詩第四號〉(《朝鮮中央日報》1934년 7월 28일)
  5. 〈詩第五號〉(《朝鮮中央日報》1934년 7월 28일)
  6. 〈詩第六號〉(《朝鮮中央日報》1934년 7월 31일)
  7. 〈詩第七號〉(《朝鮮中央日報》1934년 8월 2일)
  8. 〈詩第八號 解剖〉(《朝鮮中央日報》1934년 8월 3일)
  9. 〈詩第九號 銃口〉(《朝鮮中央日報》1934년 8월 3일)
  10. 〈詩第十號 나비〉(《朝鮮中央日報》1934년 8월 3일)
  11. 〈詩第十一號〉(《朝鮮中央日報》1934년 8월 4일)
  12. 〈詩第十二號〉(《朝鮮中央日報》1934년 8월 4일)
  13. 〈詩第十三號〉(《朝鮮中央日報》1934년 8월 7일)
  14. 〈詩第十四號〉(《朝鮮中央日報》1934년 8월 7일)
  15. 〈詩第十五號〉(《朝鮮中央日報》1934년 8월 8일)
  • 〈실화〉
  • <황소와 도깨비>

(1937년 3월 8일)  



구인회

1930년대 초반 문단에서 맹위를 떨치던 리얼리즘 문학만주사변과 경제 공황 그리고 카프 맹원 검거 등으로 침체기에 빠져들자, 모더니즘은 한국 문단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다. ‘구인회’는 국내에서 최초로 결성된 모더니즘 중심의 문학 모임이다. 그러나 구인회는 발족 당시 문인들만의 모임이 아니었다. 《조선문단》을 통해 등단한 이종명과 시나리오를 쓰며 영화감독을 겸하고 있던 김유영이 순수 예술에 뜻을 같이하는 이태준, 이무영, 이효석, 유치진, 김기림, 정지용, 조용만을 모아 구인회를 꾸린 것이다.

영화감독과 극작가 등의 가담으로 알 수 있듯이, 구인회는 문학만이 아니라 예술 전반에 걸친 관심을 내포한 채 출발한다. 구인회의 아홉 회원은 프롤레타리아 예술의 정치성이나 목적성에 회의를 품고 있던 만큼 조직의 경직성에서 탈피, 강령과 규약 없이 한 달에 한두 번 만나 문학과 예술을 논하는 부드러운 분위기로 모임을 이끌어간다.

구인회는 이후 몇 차례 회원 교체를 거치면서 점차 시인과 소설가, 비평가들로 이루어진 문학 모임으로 성격이 바뀐다. 결성한 지 얼마 안 되어 발족 당시의 이종명, 김유영, 이효석 세 사람이 나가고 박팔양, 이상, 박태원이 들어오며, 조금 지나서 다시 유치진, 조용만이 나가고 김유정, 김환태가 들어와 비로소 회원이 확정된다.

구인회는 다달이 한두 번 시 낭독이나 문학 강연회를 하는 정도로 모임을 꾸리고, 기관지 《시와 소설》도 단 한 번밖에 펴내지 못한다. 지난날 잡지나 동인지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던 유파들에 비하면 구인회는 이념적 구심점도 없고 활동도 미미해 지리멸렬한 단체로 비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나머지 의견 불일치로 몇 번의 회원 교체가 있었을망정, 이상과 김유정의 죽음으로 불가피한 결원이 생길 때까지 이 모임은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예고하는 역량을 드러내며 아홉 명의 정원을 철저하게 지켜나간다.

박승극이 <동아일보> 1934년 6월 5일 자에 기고한 「문예와 정치」에서 지적한 대로 “그들의 결성의 근거는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명확지 않은 곳에 있었다.” 말하자면 회원을 얽어매는 이념과 목표가 따로 없었다는 것이 오히려 정신적 부담을 덜어줘 아홉 명의 민감한 예술가로 하여금 제 빛깔을 잃지 않고 작품 활동에 몰두할 수 있게 만든 측면도 적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는 해체 이후까지 구인회 출신 문인들의 작품과 행적이 한국 문단사에 여러 갈래로 자취를 남긴 것으로도 입증된다.

구인회는 초기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구심점 구실을 한다. 그러나 구인회 회원 모두를 모더니스트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구인회가 추구하는 방향과 수법은 회원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해 “주지주의, 이미지즘, 초현실주의, 심리주의, 신감각파 등 잡다한 경향”을 포괄한다. 구인회는 이런 여러 경향에 그치지 않고 때로 전통적 소재와 모더니즘 기법을 접목시켜 갖가지 형태의 문학적 스펙트럼을 펼치며 모더니즘 문학의 경계를 한껏 넓히는 한편, 어찌 보면 경계선을 흐릿하게 만들기도 한다.


구인회
창립 회원 김기림 · 이효석 · 이종명 · 김유영 · 유치진 · 조용만 · 이태준 · 정지용 · 이무영
대체 회원 박태원 · 이상 · 박팔양 · 김유정 · 김환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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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시를 새로운 시각에서 만나본다


관련 서적

이상. (2016). 천재 작가 이상 대표작품집. 크리에이트플러스.

정철훈. (2018). 오빠 이상, 누이 옥희. 푸른역사.

이상. (2018). 동해(童骸) : 이상 (한국 문학 BEST 작가 작품). 문학공감대.

김연수. (2016). 꾿빠이, 이상. 문학동네


관련 학술자료

위서현. (2016). 대상관계이론을 중심으로 본 작가 이상과 그의 작품세계. 연세상담코칭연구, 5, 193-216.

김종건. (2004). 이상 소설의 공간설정과 작가의식-[날개] 를 중심으로. 어문학, 221-249.

김주현. (1997). 이상 시의 내적 상호텍스트성. 국어국문학, 118, 295-313.

백문임. (1998). [작가의 근대 탐색과 극복] 이상 (李箱) 의 모더니즘 방법론 고찰. 상허학보, 4, 271-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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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주어(S) 목적어(O) A는 B를 ~하다(P)
이상 일제강점기 A는 B에 활동하였다
이상 동경제국대학병원 A는 B에서 사망하였다
이상 모더니즘 A는 B을 대표한다
이상 조선총독부 건축과 A는 B에서 일한다
이상 조선건축회 A는 B의 소속이다
이상 건축무한육면각체 A는 B를 발표하였다
이상 구인회 A는 B의 소속이다
이상 오감도 A는 B를 저작했다
이상 박태원 A는 B과 친밀하다
이상 소설가구보씨의일일 A는 B를 공동작업했다
이상 조선중앙일보 A는 B에 출품했다
이상 시인 A는 B에 속한다
이상 정지용 A는 B과 친밀하다
이상 화가 A는 B를 지망하였다
이상 초현주의 A는 B의 경향을 띈다
이상 날개 A는 B를 저작하였다
이상 소설가 A는 B에 속한다
이상 의식의 흐름기법 A는 B을 사용하였다
이상 이상문학상 A는 B과 관련이있다
이상 구본웅 A는 B과 친밀하다
이상 자의식문학 A는 B을 대표한다
이상 그림 A는 B에 소질이있다
이상 건축가 A는 B에 속한다
이상 김기림 A는 B과 친밀하다



네트워크 그래프

이상시각화.PNG


  • 이상에 관련된 개체들을 네트워크 그래프로 시각화한 이미지 파일이다.

“Network graphs in this work were created using Vis.js Network Library (Copyright (C) 2010-2017 Almende B.V. )

and MakeGraph Simple Ontology Script Converter (Copyright (C) 2017-2018 Center for Digital Humanities, AKS).”



작성자 및 기여자


참고문헌 및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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