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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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생애 초반

중종은 조선 성종과 정현왕후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이역(李懌), 본관은 전주(全州) 이씨이다. 1494년에 진성대군(晉城大君)으로 봉해졌다가 1506년 음력 9월 2일에 연산군의 폭정에 반발한 대신들이 일으킨 반정이 성공함에 따라 조선의 새 임금으로 추대 되었다.

즉위와 개혁

즉위 초반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반정세력에 의해 국왕으로 등극한 중종은 정국 공신들의 세력에 밀려 실질적인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국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도 이복 형인 연산군의 폭정으로 엉망이 된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고자 선(先)왕이 폐지시켰던 모든 법제를 복귀시켰으며, 국왕의 자문을 담당하는 기관인 홍문관의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신하들의 월과 춘추과시, 사가독서 등을 시행했다. 또한 중종은 왕도 정치를 앞세워 공신들의 세력 팽창을 억누르려고 시도했으나 힘이 역부족하여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로 인해 중종은 사림 세력을 다시 등용하기로 결심했다.

사림파의 등용과 개혁 정치

큰어머니 월산대군부인의 친정 남동생이자, 후궁인 경빈 박씨의 양아버지인 박원종, 희빈 홍씨의 친정아버지 홍경주 등을 부담스럽게 여긴 중종은 박원종등의 공신들의 월권행위를 비판하다가 눈밖에 난 남곤을 등용했다. 이어 훈구 공신들의 질병과 연이은 죽음, 그리고 훈구 공신들의 죽음으로 훈구파가 주춤한 틈을 타 사림파 인사를 홍문관과 사간원, 사헌부, 춘추관 등의 하위직에 등용함으로써 사림파를 다시 정계로 끌어들였다.

중종은 갑자사화로 밀려났던 사림파[1]를 중심으로 현량과를 실시하는 등 철저한 유교적 개혁 정치를 행하여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과격한 사림파인 조광조의 개혁 정책은 보수적인 기득권층인 훈구 세력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그를 절대적으로 신임하고 지지하던 중종마저도 싫증을 내게 된다. 특히 조광조 등 급진 사림파의 위훈삭제(공신 명부에 올라온 공신들이 진짜 공을 세웠는지를 확인하는 작업)로 다수의 공신들이 명단에서 이름이 삭제되는 일이 벌어지자 훈구파들의 위기감은 극에 달했다.

중종과 조광조와의 갈라짐

중종 반정 이후 비대해진 훈구파[2] 권신들과 척신들의 전횡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중종은 보다 강력한 왕권을 확립할 수 있는 왕권강화를 원했다. 그러나 조광조는 도학 정치 실현이 목적으로서 중종과는 목적이 달랐다. 결국, 왕권 확립을 꾀하던 중종이 훈구파에 대적하기 위해 정암을 키웠으나 조정암 등 사림파가 또 다른 세력으로 부상하는 것을 경계하였다. 급진 사림파의 개혁 정책에 염증을 느낀 중종은 심정, 김전 등 훈구파와 남곤 등의 온건 사림파를 이용, 친위 쿠데타를 계획했다.

중종은 사림파 역시 하나의 비대해진 새로운 기득권층으로 해석하여 강력한 왕권의 걸림돌로 인식했다.결국, 주초위왕 사건으로 한때는 중종의 총애를 받던 조정암과 그 무리는 운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개혁의 폐지

중종 임금에게 한 궁녀가 궁궐의 나뭇잎 하나를 가져다 바친다. 벌레가 갉아먹은 자리를 따라 나뭇잎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주초위왕 : 조씨가 왕이 된다>>

반정으로 등극한 중종은 자신 또한 쿠테타로 축출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여, 평소 이복 형제들, 성종의 다른 왕자나 기타 왕족들을 불신하고 경계했다. 이러한 중종에게 주초위왕 사건은 조광조를 내치게 되는(기묘사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외척의 전횡

조광조[3]를 비롯한 사림세력[4]이 실각하자, 외척 세력이 새로이 등장하여 중종의 치세 중기와 후기에는 외척 세력과 반정 공신들 간의 정권 다툼으로 인해 크고 작은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 정국이 편안할 날이 없었다. 1531년에는 기묘사화 후 집권했던 심정·이항(李沆)·김극복(金克福) 등이 권력에서 밀려났고, 1537년에는 심정 일파를 모함한 김안로(金安老)·허항(許沆)·채무택(蔡無擇) 등이 역모사건으로 제거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정국이 불안해지자 그 동안 잠잠하던 남쪽의 왜구들이 삼포왜란[5]을 일으켜 경상도 해안 일대에 엄청난 피해가 있었다. 또 북쪽에서는 여진족이 4군 6진 지역을 빈번하게 노략질하는 등 오랑캐들의 약탈이 끊임없이 발생하자 중종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비변사를 설치하였다. 그밖에 《속삼강행실도》(1514),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등 다방면에 걸친 책들이 편찬, 간행되었으나 기묘사화 이후로는 문화 발전 정책이 거의 정지되었다.

최후 및 능묘

중종은 치통에 고통을 받았고, 의원이 치아를 발치하면 어떤 치아를 뺀 자리에서는 고름이 나와 멎지 않고 오래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어의들 조차 그의치통을 잡지 못했다.

38년 2개월이라는 긴 세월 동안 왕위에 머물러 있었던 중종은 정국이 혼란을 거듭하는 바람에 이렇다 할 만한 업적을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1543년 3월부터 대리청정을 맡긴 인종(왕세자)에게 왕위를 넘겨준 다음날인 1544년 11월 29일 , 57세를 일기로 승하하였다. 능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에 있는 선정릉으로 능원에 중종 혼자만 묻혀 있다.

원래 왕릉을 조성할 때는 조선 최고의 풍수지리 학자 들로부터 최고의 명당자리를 찿아 능을 조성하는데, 정릉은 조선의 왕릉 중에서 풍수지리가 좋지 않은 자리라는 얘기가 있다. 그 근거로, 비가 올때 물이 능의 가운데 부분까지 침수가 되는데, 이러한 경우는 조선의 왕릉 중에서 정릉이 유일하다. 특히 장맛비가 한차례 지나가면 정릉의 능선은 완전히 침수가 되어 그 물이 제실까지 들어가는 등의 피해가 생기자 1562년 원래 경기도 고양시에 있던 정릉을 현재 성종이 안장되어 있는 선릉 주변으로 이장한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선정릉 사진

선정릉.jpg

가계

  • 조부 : 의경세자
  • 조모 : 인수대비
  • 부왕 : 제9대 임금 성종
  • 모후 : 정현왕후 윤씨(氏)(자순대비)
  • 이복형 : 제10대 임금 연산군(폐주)

중종(1488~1544, 재위38년2개월:1506~1544)

  • 정비 : 단경왕후 신씨(端敬王后 愼氏, 1487년 - 1557년)
  • 계비 : 장경왕후 윤씨]](章敬王后 尹氏, 1491년 - 1515년)
    • 효혜공주(孝惠公主) 옥하(玉荷)
    • 조선 인종(왕세자 호)(峼) : 제 12대 인종(仁宗)(재위: 1544년 ~ 1545년) - 비(妃) 인성왕후(仁聖王后) 나주 박씨(朴氏)
  • 2계비 : 문정왕후 윤씨(文定王后 尹氏, 1501년 - 1565년)
    • 의혜공주(懿惠公主) 옥혜(玉蕙)
    • 효순공주(孝順公主) 옥련(玉蓮)
    • 경현공주(敬顯公主) 옥현(玉賢)
    • 인순공주(仁順公主) - (요절)
    • 조선 명종(경원대군 환)(慶原大君 峘) : 제 13대 조선 명종(明宗)(재위: 1545년 ~ 1567년) - 비(妃) 인순왕후(仁順王后) 청송 심씨(沈氏)
  • 후궁 : 경빈 박씨(敬嬪 朴氏,1492 - 1533년)
    • 복성군 미(福城君 嵋) (1509년 - 1533년) - 정부인(正夫人) 파평 윤씨(尹氏) 군부인(郡夫人)
    • 혜순옹주(惠順翁主) 철환(鐵環)
    • 혜정옹주(惠靜翁主) 석환(石環)
  • 후궁 : 희빈 홍씨(熙嬪 洪氏, 1494년 - 1581년)
    • 금원군 영(錦原君 岭)
    • 봉성군 완(鳳城君 岏)
    • 5명의 왕자 중에서 3명은 조졸
  • 후궁 : 창빈 안씨(昌嬪 安氏, 1499년 - 1549년)
    • 영양군 거(永陽君 岠)
    • 정신옹주]](靜愼翁主) 선환(善環)
    • 덕흥대원군 초(德興大院君 岹)
    • 둘째아들 이이수는 조졸
  • 후궁 : 귀인 한씨(貴人 韓氏, 1500년 - 1575년)
    • 왕자 (조졸)
  • 후궁 : 숙의 나씨 (淑儀 羅氏, 1489년 - 1514년)
    • 1남 - 태어났으나 조졸
  • 후궁 : 숙의 김씨(淑儀 金氏)
    • 숙정옹주(淑靜翁主)
  • 후궁 : 숙의 홍씨(淑儀 洪氏)
    • 해안군 희(海安君 㟓)
  • 후궁 : 숙의 이씨(淑儀 李氏)
    • 덕양군 기(德陽君 岐)
  • 후궁 : 숙원 이씨(淑媛 李氏)
    • 정순옹주(貞順翁主)
    • 효정옹주(孝靜翁主)
  • 후궁 : 숙원 권씨

중종이 등장한 작품

드라마

방송 기간 방송사 작품명 연기자 참고
1985년 MBC 풍란 (드라마) 최상훈
1994년~1995년 KBS 장녹수 (드라마)
1996년 KBS 조광조 (드라마) 이진우 (배우)
1996년 KBS 임꺽정 최상훈
1998년 SBS 홍길동 (드라마) 김규철
1998년~2000년 KBS 왕과 비 최우혁 (1985년)
2001년~2002년 SBS 여인천하 (드라마) 최종환
2003년~2004년 MBC]] 대장금 임호 (배우)
2006년 KBS2 《황진이 (2006년 드라마)》 박찬환
2007년~2008년 SBS 《왕과 나 (드라마)》 노영학
2011년~2012년 JTBC 《인수대비 (드라마)》 전준혁
2013년 KBS2 《천명 - 조선판 도망자 이야기》 최일화
2016년 MBC 《옥중화》 김법래
2017년 SBS 《사임당, 빛의 일기》 최종환《여인천하 (드라마)》(2001년)에 이어 두 번째 중종 역을 맡았다.
2017년 KBS2 7일의 왕비 연우진

드라마 클립 및 관련 영상

여인천하(女人天下)

대장금(大長今)

영화

개봉일 작품명 연기자 참고
1988년 2월 18일 연산일기 이경영
2015년 5월 21일 간신 고경표

애니메이션

방송 기간 방송사 작품명 연기자 참고
2005년 MBC 장금이의 꿈 최한(성우)

용어 및 설명

기묘사화 : 1519년(중종 14) 남곤 ·홍경주 등의 훈구파에 의해 조광조 등의 신진 사류들이 숙청된 사건

갑자사화 : 1504년(연산군 10)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의 복위문제에 얽혀서 일어난 사화.

사가독서 : 조선시대에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전념하게 한 제도

정암 : 조광조의 아호(雅號)

속삼강행실도 : 1514년(중종 9) 대제학 신용개 등이 『삼강행실도』의 속편으로 편찬한 책.

신증동국여지승람 : 1530년(중종 25) 이행(李荇)·윤은보(尹殷輔)·신공제(申公濟)·홍언필(洪彦弼)·이사균(李思鈞) 등이 『동국여지승람』을 증수, 편찬한 책.

훈구파 : 조선 초기 세조 때 이후 공신세력을 중심으로 형성된 관료집단을 이르는 용어

사림파 : 조선 중기에 성리학을 바탕으로 정치를 주도한 양반 지배층

반정 : 옳지 못한 임금을 폐위하고 새 임금을 세워 나라를 바로잡음. 또는 그런 일.

조졸 = 요절(일찍 죽음)

출처

사진(선정릉)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sTpD&articleno=87&categoryId=1&regdt=20160113231739

위키백과(중종)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A4%91%EC%A2%85

사진(중종)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2663996&memberNo=39134585&vType=VERTICAL

용어 및 설명 https://dic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