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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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성종 14년(1483)에 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비 소혜왕후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옛 수강궁터에 창건한 궁이다.수강궁이란 세종 즉위년 1418년, 세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의 거처를 위해서 마련한 궁이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연결되어 동궐이라는 하나의 궁역을 형성하면서, 독립적인 궁궐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창덕궁의 모자란 주거공간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창경궁은 숙종이 인현왕후를 저주한 장희빈을 처형한 일과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일 등 크고 작은 궁중 비극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성종대 창건된 창경궁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고, 광해군 8년(1616)에 재건되었다. 그러나 인조2년(1624) 이괄의 난과 순조30년(1830) 대화재로 인하여 내전이 소실되었다. 화재에서 살아남은 명정전, 명정문, 홍화문은 17세기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보여주며, 정전인 명정전은 조선왕궁 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국보 1점

  • 제226호 명정전

보물 7점

  • 제384호 홍화문
  • 제385호 명정문 및 행각
  • 제386호 옥천교
  • 제818호 통명전
  • 제846호 풍기대
  • 제851호 관천대
  • 제1119호 팔각칠층석탑

등록문화재 1점

  • 제83호 대온실

역사

창경궁은 원래 1418년에 세종이 즉위하며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서 지은 수강궁(壽康宮)으로 태종 사후에 한동안 사용이 되지 않다가 성종 14년(1483년)에 대왕대비인 세조의 비 정희왕후 윤씨, 성종의 생모 소혜왕후 한씨,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 한씨를 모시기 위하여 1483년 ~ 1484년 사이 대대적으로 궁역을 확장하여, 창성하고 경사스럽다는 뜻의 '창경(昌慶)' 으로 고쳐지어 세운 별궁이 바로 창경궁이다.

성종 때에는 정전인 명정전(明政殿), 편전인 문정전(文政殿), 침전인 수령전(壽寧殿), 그리고 환경전(歡慶殿), 경춘전(景春殿), 인양전(仁陽殿), 통명전(通明殿), 양화당(養和堂), 여휘당(麗暉堂), 사성각(思誠閣) 등이 건립되었으며, 궁의 둘레는 4,325척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선조가 몽진을 더난 후 경복궁, 창덕궁과 함께 전소되었다가 광해군 7년(1615년) 4월에 주요 건물들을 재건하기 시작하여 이듬해 11월에 마무리되었다. 광해군 때 중건된 이후에는 창덕궁의 부속 궁궐로 활용되었으므로 창덕궁과 더불어 동궐로 불렸다. 창경궁 재건보다 7년 앞서 창덕궁이 먼저 재건되어 법궁이 됨에 따라 창경궁은 조선 전기에는 그다지 활용되지 않았으나, 창덕궁과 인접한 관계로 조선 왕조 역사의 중요한 무대로 활용되는 기회가 많아졌다. 창경궁은 잦은 화재로 건물이 소실되었다가 재건되기를 반복하였는데, 인조 때와 순조 때에 큰 화재가 일어났다. 이처럼 창경궁에는 화재로 건물의 변화가 생기고 여러 사건도 일어났다.

경궁은 순종이 즉위하고 나서 급속히 변형되기 시작하여 일제 강점기에 결정적으로 훼손되었다. 1909년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 순종 황제의 마음을 달랜다는 이유로 강제로 창경궁 내부 궁문, 담장, 많은 전각들을 훼손하고 궁 안에 일본식 건물을 세우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어 유원지로 조성하였다. 권농장 자리에는 연못을 파서 춘당지라 불렀으며, 연못가에 정자를 짓고 궁원을 일본식으로 바꾸었다. 그 뒤쪽에는 식물관을 짓고, 동쪽에는 배양당을 지었으며, 통명전 뒤 언덕에는 일본식 건물을 세워 박물관 본관으로 삼았다. 또한 일제는 남아있는 건물들도 개조하여 박물관의 진열실로 만들었다.

1911년에는 자경전터에 2층 규모의 박물관을 세우고 창경궁의 명칭을 ‘창경원’으로 바꾸어 격하하였으며, 1912년에는 창경궁과 종묘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절단하고 도로를 내어 주변 환경을 파괴하였다. 1915년에는 문정전 남서쪽 언덕 위에 장서각을 건립하였고, 1922년에는 벚꽃을 수천 그루 심어 벚꽃숲을 만드는가 하면 1924년부터 밤 벚꽃놀이를 열었다. 일제침략기에 일본인들에 의하여 창경원으로 전략하면서 대부분의 건물이 철거, 훼손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의 발굴, 복원 공사로 명정전, 문정전 일곽만이 복구되었다.

1930년도에 창경궁


창경궁은 해방 이후에도 계속 동·식물원으로 쓰이다가 1981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창경궁 복원 계획이 결정되면서 원형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1983년 12월 31일자로 공개 관람이 폐지되고 명칭도 창경원에서 다시 창경궁으로 회복되었으며, 이듬해인 1984년 1월 수정궁의 철거를 시작으로 6월에는 동물 사육장을 폐쇄한 뒤 서울대공원으로 이관하였다. 1986년 8월까지 동물원과 식물원 관련 시설과 일본식 건물을 철거하고 없어졌던 명정전에서 명정문 사이 좌우 회랑과 문정전을 옛 모습대로 회복하여 1986년 8월 23일 일반에 공개하였다. 1992년에는 일본식 건물인 장서각이 철거되었다.

문화재청은 1단계(2015년 ~ 2021년)및 2단계(장기 계획)에 걸쳐 창경궁을 원형 복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덕수궁과 경복궁 또한 동시에 정비되고 있는만큼 예산 부담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까지 창경궁과 종묘 사이의 지상 보행길 복원에 들어가 율곡로는 지하 터널로 이어지고 지상에는 담장과 보행길이 함께 조성될 예정이다.

연표

문화재청 제공 창경궁 연표
년도 내용
1418년(세종즉위년 11월초 3일) 상왕전(태종)신궁으로 수강궁 영건
1483년(성종 14년) 수강궁터에 창경궁 영건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
1616년(광해군 8년) 명정전, 문정전, 환경전, 인양전, 공사청, 홍화문 등 중건
1623년(인조 원년) 인조반정시 저승전 소실
1624년(인조 2년) 이괄의 난으로 통명전, 양화당, 환경전 등 소실
1633년(인조 11년) 통명전, 양화당, 환경전, 함인정 등 중건
1670년(현종 11년) 건극당 건립
1777년(정조 원년) 자경전 건립
1779년(정조 3년) 월근문 건립
1790년(정조 14년) 통명전 화재
1830년(순조 30년) 환경전 화재로 함인정, 경춘전, 숭문당, 영춘헌, 오행각, 빈양문 소실
1834년(순조 34년) 통명전, 경춘전, 환경전, 여휘당 등 중건
1857년(철종 8년) 선인문, 동북소, 부장청, 위장소, 주자소의 대청과판당 등 60여칸 화재
1877년(고종 14년) 창경궁 수리
1909년(순종 2년) 창경궁내 동ㆍ식물원 개설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으로 폐원
1954년 서울 수복으로 개원
1963년 1월18일 사적 제123호 지정
1983년 10월 동ㆍ식물 서울대공원에 인계
1983년 12월30일 창경궁 본래 이름으로 환원
1983년 12월31일 공개관람 중단
1985년 4월 복원공사 착공
1986년 8월23일 복원공사 준공, 공개관람 재개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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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전경

창경궁 전경(낮) 창경궁 전경(저녁)
창경궁 전경(낮).jpg
창경궁 야간개장.jpg

창경궁 복원도

창경궁 복원도.jpg

궁문 권역

궁문권역 설명
홍화문
홍화문(弘化門)은 창경궁의 정문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우진각지붕으로 동향이며, 문 왼쪽인 서북쪽 모서리에 계단이 있어서 위층으로 오르내릴 수 있다. 2층으로 된 목조 건물로 좌우에 한 쌍의 십자각을 세워 궁궐 대문으로서의 형식을 갖추었다. 홍화문은 1484년(성종 15)에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616년(광해 8)에 다시 지어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홍화문은 임금이 친히 나가 백성들과 대면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영조는 1750년 균역법을 시행하기 이전에 홍화문으로 나가 양반 및 평민들을 직접 만나 균역에 대한 의견을 경청하였고, 정조는 1795년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을 기념하여 홍화문 밖에 나가 가난한 백성들에세 쌀을 나누어 주었다.

월근문
월근문(月覲門)은 정문인 홍화문(弘化門) 북쪽에 있는 문으로 대문과 작은문이 나란히 붙어있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이 문은 정조 임금이 친부(親父)인 사도세자의 묘(廟)를 수시로 참배하기 위하여 1779년(정조 3년)에 건립하였다. 정조가 매달 초하루 사도세자의 묘에 참배하러 갈 때에는 반드시 이곳을 거쳐가야 했기 때문에 월근문(月覲門)이라 지었다 한다.
선인문
선인문(宣仁門)은 정문인 홍화문(弘化門)에서 이어진 궁 담장의 남쪽에 위치한 문(門)으로 1484년(성종 15년)에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17년(광해군 8년)에 재건이 되었는데, 1857년(철종 8년)에 다시 소실되어 1877년(고종 14년)에 복원한 바가 있다. '동궐도'를 보면 현재의 월근문(月覲門)과 같은 솟을지붕과 유사한 외관을 취하고 있었으나 2번째 복원 때 지금의 모습으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야사에 의하면 선인문(宣仁門) 부근에서 장조(사도세자)가 뒤주 속에서 운명했다고 한다.

집춘문
창경궁의 동북쪽에 있는 집춘문(集春門)은 관덕정 북쪽, 성균관과 창경궁 사이의 담장에 난 궁문으로 성균관과 마주 보이는 곳에 있다. 조선의 역대 임금들이 이 문을 통하여 성균관으로 행차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성균관과 이어진 길을 없앰으로써 쓸모가 사라졌으나 2008년 성균관과 잇는 길을 종로구에서 복원하였다. 현재, 집춘문의 외부 지역에는 민가(民家)가 들어서 있어 출입문(出入門)으로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정전 권역

정전권역 설명
명정문
명정문(明政門)은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의 출입문이다. 명정문은 홍화문과 같은 동향(東向)을 하였는데, 명정전(明政殿)으로 이어지는 동서(東西) 중심축 선상에 정확하게 놓이지 않고, 남향으로 약 1.2m 벗어나 있다. 문의 좌우에 연결된 동행각을 명정문에 맞추었기 때문에 행각으로 둘러싸인 명정전 앞뜰은 반듯한 사각형이 아니라, 약간 기울어진 모습이다.
명정전(품격과 실용을 추구한 정전(政殿))
명정전(明政殿)은 창경궁의 제 1의 전각(殿閣)으로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연회 등의 공식적 행사를 치렀던 정전이다. 1484년(성종 15)에 건립되어 임진년의 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6년(광해 8)에 재건(再建)되어 현재까지 이르렀고, 현존하는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경복궁의 근정전과 창덕궁의 인정전이 중층 규모로 지어진 것에 비해 명정전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다. 이는 처음에 창경궁이 정치를 위해 지어진 궁궐이 아니라 왕대비 등의 생활공간으로 지은 궐이기 때문이다. 명정전은 단층이지만 2단으로 쌓은 월대 위에 세워져 있어 정전의 위용을 갖추었다. 앞쪽에 펼쳐진 마당, 즉 조정(朝庭)에는 얇고 넓적한 박석(薄石)을 깔고 중앙에는 삼도(三道)를 두어 왕궁의 품위를 갖추었다. 명정문과 행각이 조정에 둘러싸여 있다. 행각들은 왕실 친위부대의 주둔지나 왕실의 초상을 치르기 위한 재실(齎室)로도 쓰였다.


편전 권역

편전권역 설명
문정전(국왕이 정무를 보던 곳)
문정전(文政殿)은 왕의 공식 집무실인 편전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 내삼출목, 외이출목, 단층 팔작집, 겹처마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향(東向)인 명정전과 달리 남향(南向)건물이다. 정전인 명정전과 등을 돌리고 있는데 이런 특이한 배치구조는 다른 궁궐에서 는 찾아보기 어렵다.

편전이지만 왕실의 신주를 모신 경우도 있다. 영조의 첫째 왕비인 정성왕후와 철종의 비인 철인왕후의 신주를 모시는 곳으로 사용한 것이 그 예이다. 문정전 일원은 일제강점기 때 헐리어 창경원의 동물원과 식물원 자리로 이용되었다. 1984년부터 발굴 조사를 한 후, 1986년에 문정문, 동행각과 함께 복원되었다.

숭문당(군신(君臣) 간의 학문이 교류되던 곳)
숭문당(崇文堂)은 창경궁의 전각 중 하나로 정면 4칸, 측면 3칸의 홑처마로 된 팔작기와집으로 경종 때 건립 되었다. 1830년(순조 30)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그해 가을에 중건한 것이 오늘날의 '숭문당'의 모습이다.

명정전 뒤쪽에 있는 빈양문의 남쪽에 맞닿은 전각이다. 현판과 내부에 걸린 일감재자(日監在滋)라 쓴 게판은 영조가 쓴 것으로 학문을 숭상하는 뜻답게 당시 영조도 학문을 숭상하고 인재를 양성하였고, 이곳에서 왕이 친히 학생을 접견하여 시험을 치거나 때로는 연회를 베풀어 그들을 격려하였다.


침전 권역

침전권역 설명
경춘전(왕실의 생로병사가 이루어진 곳)
경춘전(景春殿)은 창경궁의 침전 중 하나로 왕비의 침전이다. 정면 7칸, 전후퇴칸을 포함에서 측면 4칸으로 된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를 하고 있다. 1484년(성종 15년)에 세워졌으며 임진년에 일어난 왜란 당시 소리되었다가 1616년(광해군 8)에 재건되었으나, 순조 30년에 불탄 것을 1834년(순조 34)에 다시 복원하였고 오늘날 까지 이른다. 지금의 현판은 순조대왕이 쓴 것이다.

이 경춘전(景春殿)은 소혜왕후(성종대왕의 모(母))한씨와 인현왕후 민씨가 세상을 떠난 곳이자 정조대왕과 헌종대왕이 탄생한 장소이기도 하다.

환경전(대장금이 중종대왕을 진료한 곳)
환경전(歡慶殿)은 창경궁의 침전 중 하나로 정면 7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이며 1484년(성종 15)에 건립되었으며, 임진왜란에 소실된 것을 1616년에 재건하였다.

환경전은 침전임에도 불구하고 용마루가 있다. 중종이 이 전각에서 붕어하였으며, 세자 시절의 광해군, 광해군의 세자, 소현세자 등이 거처하였다가 소현세자(인조대왕의 맏아들) 사후(死後) 1652년(효종 3) 14세 까지 승선군(인조의 서자 중 장남)도 머물렀다.

조선시대의 의녀들 중 유일하게 왕의 주치의 역할을 했던 이가 대장금이다. 1515년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의 출산을 맡았고, 1522년 자순대비의 병을 치료한 후 이 공으로 중종의 치료를 전담하게 된다. 대신들은 의원이 아닌 의녀를 주치의로 삼은 것에 불만이 많았으나 중종의 대장금에 대한 신뢰가 깊어 마지막까지 대장금에게 진료를 맡겼다.

통명전(장희빈의 저주가 이루어진 곳)
통명전(通明殿)은 창경궁의 침전 중 하나로 정면은 7칸이고 측면이 4칸으로 팔작지붕을 한 전각이다. 내전 가장 깊숙한 곳에 남향(南向)으로 위치한 전각으로 왕비의 침전으로 쓰였다. 또한, 중종과 명종비의 빈(정1품 후궁)의 처소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월대 위에 기단을 형성하고 그 위에 건물을 올린 것이며, 연회나 의례를 열 수 있는 넓은 마당을 갖추고 있다.

통명전(通明殿)은 창경궁 창건 때 세워졌지만 임진왜란으로 인해 소실되었다가 재건이 되었으나 이괄의 난(亂)과 정조대왕 때 화재를 입었다. 지금의 모습은 1834년(순조 34)에 중건된 것이다. 장희빈(숙종대왕의 부인)이 복위된 인현왕후를 저주하기 위해 꼭두각시와 동물의 사체(死體) 등을 통명전에 주위에 묻어 두었다고 한다. 이것이 발각되어 장희빈은 사약을 받았다.

양화당(통명전 옆 접대 공간)
양화당(養和堂)은 창경궁의 침전 중 하나로 정면 6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 건물이다. 현판은 순조대왕의 어필이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던 인조대왕이 환궁을 하면서 이곳에 거처한 일이 있으며, 철인왕후(철종비)가 1878년(고종 15)에 이곳에서 운명하였다.

영춘헌과 집복헌(후궁들의 처소, 정조대왕의 독서실 겸 집무실)
영춘헌(迎春軒)과 집복헌(集福軒)은 창경궁의 북쪽에 위치한 침전 건물이다. 집복헌은 영춘헌의 서쪽 방향에 5칸으로 연결된 서행각이다. 이 건물들이 지어진 연대는 정확히 알여지지 않았고, 1830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34년에 재건되었다.

영춘헌(迎春軒)은 창덕궁 중희당 부근에 있던 장남궁을 헐어 재건한 것이다. 집복헌(集福軒)에서는 사도세자(정조의 父)와 순조대왕(정조대왕의 子)가 탄생했다. 또한, 정조대왕은 순조대왕을 낳은 수빈 박씨를 총애해 집복헌(集福軒)에 자주 출입하면서 가까운 영춘헌(迎春軒)을 독서실 겸 집무실로 사용하였다.

기타 권역

기타권역 설명
빈양문
빈양문(賓陽門)은 명정전(明政殿)을 돌아나와 만날 수 있는 명정전의 후문(後門)이자 창경궁의 침전권역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중앙간의 지붕이 솟아있는 솟을지붕 형식이다. 명정전 후면(後面)에 설치된 가설한 툇마루부터 양문까지 복도각이 쭉 연결되어 날씨가 궃은 날에도 편히 왕이 행차를 할 수 있게 배려한 곳이다.
함인정(사랑방 같은 정자(亭子))
함인정(涵仁亭)은 창경궁의 정자 중 하나로 환경전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면 3칸과 측면 3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를 하고 있다. 또한, 빈양문을 지나 나오면 바로 만날 수 있는 건물이며, 내밀한 침전권역으로 가기 전에 거쳐갈 수 밖에 없는 건물이다.

이곳은 특히 영조대왕이 문무 과거에서 장원 급제한 사람들을 접견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동궐도에는 함인정(涵仁亭)의 서쪽과 동쪽에 벽체를 둘러 막혀 있지만 현재는 사방이 트인 모습이다.

관덕정(문무의 정신을 담은 곳)
관덕정(觀德亭)은 활을 쏘던 정자(亭子)로 1642년(인조 20)에 지어졌다. 건립 당시에는 취미정(翠微亭)으로 불리다가 1664년 현종 때 관덕정으로 이름이 바뀌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앞쪽의 넓은 터는 군사 훈련장과 무과 시험장으로 쓰였다. 정자 뒤로는 단풍 숲이 우거져서 여러 임금이 단풍의 아름다움을 읊은 시들이 전해진다. 집춘 문은 관덕정 북쪽 담장에 난 궁문으로 문묘(文廟, 또는 성균관)가 마주 보이는 곳 에 있다. 역대 임금들이 문묘로 나갈 때는 이 문을 이용했다.

춘당지(왕이 농정(農政)을 살피던 곳)
춘당지(春塘池)는 창경궁 후원에 있는 연못으로 본래 이 곳은 임금이 농업(農業)을 장려하기 위해 농사를 시연하는 땅인 권농장(勸農場)이 있던 곳이었다. 이를 일제가 1909년에 없애고 이 자리에 연못을 파서 일본식(式) 정원을 만든 것이다. 광복 후(後)에는 이 위를 떠다니는 케이블카가 개통되기도 했었다. 1980년대에 한국식 정원으로 다시 개조되었다.
대온실(식물원)
대온실은 창경궁 후원 춘당지 북쪽에 위치한 서양식 건물로 1909년 목재와 철재, 그리고 유리로 지어진 우리 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다.

일제가 순종황제를 유폐시킨 후 황제를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세워졌으며 일본 황실 식물원 책임자였던 후쿠와가 1907년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에서 시공해 건축 당시 동양 최대의 규모였다. 열대 지방의 관상 식물을 비롯한 희귀한 식물을 전시하였다. 처음에는 대온실 후면에 원형 평면의 돔식 온실 2개를 서로 마주 보게 세웠으나 후에 돔식 온실 2개는 철거하여 현재 대온실만 남아있다. 건축 양식은 19세기 말 시작된 세계 박람회 전시 건물의 양식을 따른 근대 건축물로 한국 근대 건축사의 유산 중 하나다. 원래는 창경원에 딸린 식물원이었으나 식물원 자체는 창경궁 복원 공사에 따라 1983년에 서울대공원으로 이전하고, 1986년에 궁이 복원된 후에는 자생목본류를 중심으로 야생화를 함께 전시하는 공간이 되었다. 현재 대온실은 2004년 2월 6일에 등록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되었다.

관천대
관천대는 높이는 2.2m이고,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 대 위에는 99cm의 받침대가 놓여 천문 관측기구를 설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처음에는 창덕궁 금호문 밖에 세워졌으나, 일제 강점기에 이전되었다가 현재의 자리에 옮겨졌다.

관천대 위에는 별을 관측하는 기구인 소간의(小簡儀)가 놓였으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과학의 문
과학의 문은 창경궁과 국립어린이과학관 사이에 놓여 있는 문이다. 1973년 故 박정희 前 대통령의 지시로 지어졌으며,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 걸려 있다. 폐쇄되었었으나 2007년에 개방되었다.
풍기대
풍기대(風旗臺)는 조선시대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재는 풍기(風旗)를 세웠던 창경궁에 있는 석대이다.
옥천교
옥천교(玉川橋)는 창경궁 금천 위에 놓여진 다리이다. 대한민국 보물 제38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창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모든 궁궐 마당에는 시냇물이 흐르는데, 이는 법전이 있는 궁궐의 안쪽과 외부의 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며, 궁궐 뒤의 산과 짝을 이루어 좋은 운을 불러들이는 길지(吉地)가 되라고 궁궐 앞쪽에 일부러 낸 물길을 낸 것이다. 이를 '금천'이라 부른다. 여기서, 창경궁의 금천은 <옥천>이라 부른다. 그래서 이 옥천에 놓인 다리라 하여 '옥천교'라고 하는 것이다.

사건

동물원

일제시대 때 궁궐의 권위를 격하시키기 위해 1909년 창경궁 내의 전각들을 허물어 버리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으며, 이름을 창경원으로 낮추기도 하였다. 또 궁궐안의 나무들 역시 기존의 나무들을 베어낸 후 벚꽃나무를 심었다. 창덕궁과 바로 붙어있는 궁궐이기도 한다. 지도를 보면 창경궁과 종묘사이에 도로가 보인다. 원래 종묘와 창경궁 사이에는 도로가 없었다. 이것 역시 일제가 이를 갈라놓기 위해 설치한 도로이다.


여자와 남자.jpg

문정전 방화

2006년 4월 창경궁 문정전에 불이 일어났다. 화제 이유는 창경궁 문정전(文政殿.임금이 평상시 정사를 보던 곳)에 불을 지르게 된 것은 도시계획도로로 수용된 자신의 집 부지의 보상금이 적은 것에 대한 불만이 있어 불을 지르게 되었다. 불을 질러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로 마음먹고 유명 문화재를 방화 대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창경궁 관리소 직원은 "문정전이 목조건물이라 불길이 번졌으면 국보 226호 명정전 등 창경궁 내 많은 유적이 훼손될 뻔 했다. 불은 문정전의 왼쪽 문을 태우고 천장 등을 그을려 400만원 정도의 재산 피해를 냈다"고 말했다.

이야기

조선 왕조는 건국 초기부터 경복궁을 법 궁으로, 창덕궁을 보조 궁궐로 사용하는 양권 체제를 이어왔는데 왕실 가족이 늘어나면서 비좁아진 두 궁궐을 보충을 위해 창경궁이 마련되었다. 왕실의 웃어른인 세조 비 정희왕후와 예종 비 안순왕후, 덕종 비 소혜왕후가 편히 지낼 수 있도록 창경궁을 중건했던 성종이다. 창경궁은 이러한 성종을 지극한 효심을 나타내는 의미로 ‘효의 궁’ 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다른 궁처럼 왕을 위해서가 아닌 생활공간을 보충하기 위해서 지어졌기 때문에 규모나, 배치 등의 다른 점이 많다.

관람안내

관람 요금 및 시간

관람시간

2월 ~ 5월, 9월 ~ 10월 6월 ~ 8월 11월 ~ 1월
매표 관람 매표 관람 매표 관람
09:00 ~ 17:00 09:00 ~ 18:00 09:00 ~ 17:30 09:00 ~ 18:30 09:00 ~ 16:30 09:00 ~ 17:30

※ 휴궁일(休宮日): 매주 월요일

※ 창경궁, 창덕궁 연계관람 가능 (별도 관람권 구입)

매표장소 : 함양문 (창경궁 경내)

매표시간 : 위 매표시간과 동일


관람요금

  • 일반권

※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문화가 있는날) : 무료

대상 개인 단체
내국인 만25세 ~ 만 64세 1,000원 800원 (10인 이상)
외국인 만 19세 ~ 64세 1,000원 800원 (10인 이상)
만 7세 ~ 만 18세 500원 400원 (10인 이상)
  • 무료대상자
  • 내국인
 ※ 무료 관람대상자는 반드시 관련 증빙(주민등록증, 국가유공자증, 복지카드, 교원자격증, 관광통역안내사 및 문화관광해설사 자격증 등)을 매표소에 제시 후 무료입장권 발급 받고 입장.
  • 만 6세 이하 어린이, 만 7세~24세 이하 청소년, 만 65세 이상 국민
  • 국빈 및 그 수행자, 외교사절단 및 그 수행자
  • 국·공립기관에서 정양 중에 있는 상이군경
  • 공무수행을 위하여 출입하는 자
  • 학생인솔 등 교육활동을 위해 입장하는 초·중·고 교원(유치원 및 보육시설 교사 포함)
  • 한복을 착용한 자
  • 「장애인 복지법」,「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5.18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참전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및 기타 개별법령에 의하여 입장료가 감면된 자
  •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 및 문화관광해설사 자격증을 패용하고 단체관람객 인솔·안내를 위해입장하는 자
  • 「효행 장려 및 지원법」에 따른 효행우수자
  •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기초생활수급자
  • 차상위계층 중 자활급여, 건강보험료 경감대상, 장애수당, 한부모 가정 중 하나 이상의 급여를받고 있는 자 및 기타 보건복지부장관이 인정한 차상위계층
  • 병무청 발급 병역명문가증 소지자(본인에 한함)
  •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및 전수교육조교
  • 군복을 입은 현역군인
  • 문화재위원 및 전문위원
  • 기타 문화재청장 또는 해당 유적관리기관의 장이 인정하는 자

※ 창경궁 소재지 종로구 주민 50% 할인(15.1.29.부터 시행)

< 감면 대상자는 주민등록증, 청소년증, 주민등록등본 및 신분증등 증빙 제시 >

  • 외국인
    • 만 6세이하
    • 만 65세이상 ('14.10.1.부터 시행)
    • 한복착용자


  • 특별권
구분 이용시간 관련요금 비고
5대궁 통합관람권 대인 10,000원
  • 구매일로부터 3개월간 사용가능
  • 4대궁 및 종묘 매표소에서 구입 가능
상시관람권 09:00 ~ 18:00 (한달 중 언제나) 10,000원
  • 구매일로부터 1개월간 사용가능
  • 사진 1매 제출
  • 구입한 고궁만 입장 가능
점심시간 관람권 12:00 ~ 14:00 (3개월간 점심시간중) 3,000원
  • 구매일로부터 3개월간 사용가능(10회한정)
  • 구입한 고궁만 입장 가능
시간제관람권 12:00 ~ 13:00 (1년간 점심시간중) 30,000원/100,000원
  • 구매일로부터 1년간 사용 가능 (창경궁, 덕수궁)/
  • 구매일로부터 1년간 사용가능
  • 창경궁, 덕수궁, 경복궁, 14개능 가능
  • 동반 1인 무료

야간개장

밤에 창경궁 모습


창경궁 2018야간개장
기간 2018.10.21(일)~2018.11.03(토)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요금 현장판매 : 만65세 이상 어르신, 외국인
관람요금 1,000원(일반인,만65세 이상 어르신,외국인)

관람 규칙

  • 관람객은 궁내에서 음식물을 드실 수 없음
  • 반려동물ㆍ운동기구ㆍ놀이기구ㆍ돗자리 등 반입금지
  • 웨딩촬영은 평일만 가능 (토,일,공휴일 불가)
  • 수목 열매 및 도토리 등 채취금지
  • 경내 전지역 금연 엄수
  • 기타 관람분위기 저해행위 금지
  • 인화물질 반입금지


한복무료관람 안내

한복을 입은 관광객
  • 한복무료관람 가이드라인
  • 공통
    • 전통한복·생활한복 모두 무료관람 대상 포함
    • 상의(저고리)와 하의(치마, 바지)를 기본으로 함. 단, 두루마기만 걸친 경우에는 한복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상·하의를 갖춰 입어야 함
    • 남성은 남성한복 여성은 여성한복 착용자만 무료관람 대상으로 인정함
    • 궁궐의 품격에 어울리는 한복 착용 권장
  • 남성
    • 저고리: 여미는 깃 형태 유지 고름·매듭 방식은 관계없음
    • 바지: 사폭바지 형태에 준하는 바지

사폭바지.gif

▶사폭바지 이미지

  • 여성
    • 저고리: 여미는 깃 형태 유지 고름·매듭 방식은 관계없음
    • 치마: 통치마·풀치마 등 형식 제한 없음 단, 과도한 노출 금지

편의시설

주차장안내

  • 주차 대수: 33대
  • 주차장 운영시간 09:00 ~ 19:00 (연중무휴)

(단, 야간특별관람 등 특별한 상황에 따라 운영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구분 기본2시간 초과요금(매 10분) 회전시간(10분)
일반차량 3,000원 500원 무료
승합차(12~16인승) 4,000원 500원 무료

찾아가는 길

주소

지도를 불러오는 중...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우03072)
  • 전화 : (02) 762-4868~9
  • 팩스 : (02) 762-9514

교통편

  • 지하철
    •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출구 300m 직진
    • 횡단보도 건너 왼쪽길로 직진 300m


  • 버스
  • 혜화동로터리 방향에서 홍화문쪽으로(정류소번호 : 01002)
    • 파랑버스(간선) : 100, 102, 104, 106, 107, 108, 140, 143, 150, 151, 160, 162, 171, 172, 272, 301, 710
    • 공항버스 : 6011
  • 원남동사거리 방향에서 홍화문쪽으로(정류소번호 : 01224)
    • 파랑버스(간선) : 151, 171, 172, 272, 601


  • 자동차
    • 경부고속도로 – 서초IC – 반포IC - 한남IC - 한남대교 - 남산1호터널 - 청계천2가 사거리 - 종로2가 사거리 - 재동교차로(안국역) 우회전 -

돈화문 교차로 - 원남사거리 좌회전 후 직진 - 서울어린이과학관 맞은편 신호앞에서 좌회전 (서울어린이과학관 지나 바로 주차장)

작성자 및 기여자

김준하

최민경

이수연

이슬기

박용진

출처

문화재청 창경궁 http://cgg.cha.go.kr/agapp/main/index.do?siteCd=CGG

위키백과 창경궁 http://ko.m.wikipedia.nym.mx/wiki/%EC%B0%BD%EA%B2%BD%EA%B6%81

문화체육관광부 http://www.mcst.go.kr/main.jsp

창경궁 둘러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2q-LDEUZScs

사진(옥천교,경춘전,환경전,양화당) https://blog.naver.com/luckycmw/60021439125

사진(풍기대) https://cafe.naver.com/ddosan/6641

사진(춘당지,관덕정) https://blog.naver.com/lhwpaper/40211451394

사진(통명전)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 blogid=0KI8j&articleno=4124236&categoryId=432629&regdt=20080510143810

사진(숭문당) http://danbiduri.tistory.com/23

사진(문정전) http://sky0107.tistory.com/1764

사진(명정전) http://www.hanokschool.biz/2013/community/data_general.asp?code=&subp=&mode=&bbsid=library&gbn=viewok&cate=&ps=12&sp=&sw=&gp=6&ix=3946

사진(명정문) http://picpen.chosun.com/view/picpenViewDetail.picpen?picpen_seq=3919

사진(창경궁 전경) https://blog.naver.com/inblue99/220569664582

사진(홍화문) https://blog.naver.com/333goo/60183213725

사진(월근문) https://blog.naver.com/ljhbatman/140210122776

사진(선인문) https://blog.naver.com/asherjin/220771163519

사진(관천대) https://blog.naver.com/jau123/221215492592

사진(풍기대) https://blog.naver.com/nocleaf/90006727502

사진(대온실) https://blog.naver.com/wodbs0129/220265839070

사진(빈양문) https://blog.naver.com/hellokku/220195648332

사진(함인정) https://blog.naver.com/osunseng/220953181587

사진(영춘헌과 집복헌) http://blogfiles.naver.net/20111120_165/rh1945_1321753913337uR51I_JPEG/5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