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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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고려 후기의 장군이자 조선의 제 1대 왕(1335~1408). 고려 말 요동정벌을 위해 북진하던 중 위화도에서 회군(위화도 회군)하여 당시 고려의 우왕을 폐위시켰다. 신진사대부와 협력하여 고려의 개혁을 주도했다.
후에 조선(朝鮮)을 건국하고 도읍을 한양(漢陽)으로 옮겼다.

일대기

태조 이성계는 함경도 영흥에서 출생하였으며 함경도 함흥에서 성장하였다. 하지만 본관은 전주이다.
실록에 따르면 이성계는 태어날 때 부터 수려한 외모를 가졌으며 총명하고 지략과 용맹이 다른 이에 비하여 월등히 뛰어났다고 한다. 무예 또한 뛰어났는데 특히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신궁(神弓)'이라는 별명을 가지고있을 정도로 명궁이었다고 한다.
그의 군사적 활약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오며 이성계는 전장에 나아가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성계(李成桂)는 고려시대까지 사용하던 이름으로 조선 개국 후에는 이단(李旦)으로 개명하였다.
이성계는 조선 개국 전에는 고려말의 유능한 장군으로 그 관직이 문하시중에 이르렀다. 고려 우왕(禑王) 때,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로서 요동 정벌을 나섰으나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우왕을 폐위하고 문하시중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 사건이 위화도 회군이다.
이후 이성계는 고려의 정권을 장악하고 후에 고려 공양왕에게서 보위선양의 형식으로 직접 왕위에 오르게 된다. 이성계는 국호를 조선으로 바꾸고 도읍으로 한양으로 옮겨 조선의 초기 기틀을 닦았다.
후에 왕자의 난으로 인해 이방원에게 권력을 뺐기고 1401년 한양을 떠나 함흥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그 후 이방원과 화해 후 절에서 여생을 보내다 1408년 승하한다.

주요업적

고려

기록에 따르면 태조 이성계는 한국사에서 손에 꼽히는 무장 중 한명이다. 그의 영웅담은 정사야사에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또한 이성계는 30년 동안 전장에 나아가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아래는 이성계의 고려시대 장군으로서의 업적이다.

고려 장군으로서의 업적
시기 내용
1361년 홍건적 진압
1362년 원나라 장수 나하추의 침입 방어
1364년 원나라 덕흥군최유의 침입 방어
1370년 만주 동녕부 점령(1차 요동정벌)
1378년 개경 침입 왜군 격퇴
1380년 황산대첩
1388년 위화도회군

조선

태조 이성계의 장수로서의 업적은 화려하며 당시 백성들에게 인기가 높았으나 조선을 건국한 후 왕위에 즉위한 이후 여론은 좋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개성 왕씨들과 권문세족들을 숙청했기 때문이었다.

조선 제 1대 왕으로서의 업적
시기 내용
1393년 국호를 조선으로 변경
1394년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
1394년 조선경국전편찬

태조 이성계가 왕으로서 이룬 업적은 크게 위의 세가지라고 볼 수 있다.

관련 문화재

관련 영상

◆관련 영상◆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 스토리 - [5]
태조 이성계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 - [6]
조선초기 태조부터 세종까지를 주제로 한 드라마 '용의눈물' 1화의 일부 - [7]

참고문헌

이성계, 네이버백과사전
태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위화도회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선태조, 위키피디아

기여자

김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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