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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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통일 신라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676년 이후를 구분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통일 신라는 당나라의 발전된 문물을 받아들이고 불교 문화를 크게 발전시켰으며, 서역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번성했다.

설명

제29대 태종 무열왕부터 제51대 진성여왕에 이르기까지의 약 220여 년간 존속했으며,시대는 크게 화려한 전성기를 구가했던 중대와 귀족간의 치열한 왕위 쟁탈전이 벌어진 하대로 분류된다. 나당전쟁이 끝나는 676년 시점을 기준으로 삼국시대 때의 수백년간의 끝없던 전쟁이 사라지고, 한반도의 정세가 안정화되며 옛 고구려계, 백제계와 말갈계 등 다양한 종족집단이 신라 내부에 공존하고, 이를 통합하기 위한 정책을 하고, 또한 봉건제에서 중앙집권체제적인 성격을 띠는 등 이전 삼국시대 세 나라 중 하나이던 신라 시절과는 근본적인 국가 성격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구한말 때부터 이 시기를 한정해 부를 때 시대구분을 위해 통일신라로 분류해 부르기 시작했다.

주요인물

  • 장보고

신라 말기에 활약한 장군이자 정치가이다. 지금의 완도 지방에 군사 기지인 청해진을 세운 뒤 해적을 소탕하고 바다의 질서를 바로잡았다. 주변 국가들과의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아 ‘해상왕’이라고 불렸으나, 846년에 그를 시기한 귀족들에 의해 암살당했다.

  • 최치원

신라 말기의 학자이자 문장가이다. 일찍이 당나라에 건너가 학문을 익히고 벼슬길에 올랐으며, 난을 일으킨 황소를 꾸짖는 글을 지어 이름을 떨쳤다. 신라로 돌아온 뒤에는 진성 여왕에게 10개 항의 시무책을 담은 개혁안을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그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 학문을 연구하면서 《계원필경》을 남겼다.

유물과 유적

  • 다보탑과 석가탑

경주 불국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돌탑이다. 신라 경덕왕 때인 751년경 불국사와 함께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불국사의 대웅전 앞 동쪽에는 다보탑이, 서쪽에는 석가탑이 마주 서 있다.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돌탑이며, 각각 국보 20호와 21호로 지정되었다. 다보탑은 정교하고 화려한 멋을 자랑하며, 석가탑은 아사달과 아사녀에 관한 전설이 담겨 유명하다.

다보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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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탑

석가탑.jpg

사진

통일신라.jpg

영상자료

통일신라"

기타

작성자: 이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