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소노인가부좌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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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화소노인(樹話少老人)가부좌상은 근원 김용준이 [[수향산방]]([[노시산방]])에서 수화 [[김환기]]를 그린 그림이다. 1947년 4월 어느날, 근원이 수향산방(노시산방)에 놀러가서 즉흥적으로 그린 그림이다. 깡마른 체구, 거구에 안경을 쓴 김환기의 모습에 예술가적 기품이 담겨있으며, 김환기의 특정이 해학적으로 표현되었다. | + | 수화소노인(樹話少老人)가부좌상은 근원 김용준이 [[수향산방]]([[노시산방]])에서 수화 [[김환기]]를 그린 그림이다. 1947년 4월 어느날, 근원이 수향산방(노시산방)에 놀러가서 즉흥적으로 그린 그림이다. 깡마른 체구, 거구에 안경을 쓴 김환기의 모습에 예술가적 기품이 담겨있으며, 김환기의 특정이 해학적으로 표현되었다. 한국전쟁으로 수화 [[김환기]]가 부산영도다리 근처에서 살던 시절 산정([[서세옥]])에게 자신이 가장 아끼던 그림이라고 보여주었다는 그 그림이다. 수화가 미국으로 이주했을 때도 근원의 이 그림을 고이 간직했다는 것을 보아, 근원을 향한 수화의 각별한 마음을 알 수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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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6일 (토) 14:03 기준 최신판
개요
1947년
작품 설명
수화소노인(樹話少老人)가부좌상은 근원 김용준이 수향산방(노시산방)에서 수화 김환기를 그린 그림이다. 1947년 4월 어느날, 근원이 수향산방(노시산방)에 놀러가서 즉흥적으로 그린 그림이다. 깡마른 체구, 거구에 안경을 쓴 김환기의 모습에 예술가적 기품이 담겨있으며, 김환기의 특정이 해학적으로 표현되었다. 한국전쟁으로 수화 김환기가 부산영도다리 근처에서 살던 시절 산정(서세옥)에게 자신이 가장 아끼던 그림이라고 보여주었다는 그 그림이다. 수화가 미국으로 이주했을 때도 근원의 이 그림을 고이 간직했다는 것을 보아, 근원을 향한 수화의 각별한 마음을 알 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