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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16일 (일) 19:15 판
매일신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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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년도 | 1910년 |
발행주기 | 기관지, 일간지] |
사시 | 내선일체 |
기타 발행물 | 월간매신, 국민신보, 매일신보사진특보 |
매일신보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기관지로 발생되던 한국어 일간 신문
목차
개요
약칭 '매신'으로 불린다
1904년 7월 18일 영국인 배설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를 일제가 사들여 1910년 '한인 병합 조약'이 채결된 직후에 <[경성일보]>가 <[대한매일신보]>를 인수하여 제호에서 '대한'이라는 두 글자를 뺀 뒤 <[경성일보]>의 자매지로 <[매일신보(每日申報)]>를 개제하였다. 경영상으로는 일어판 일간지 <[경성일보]>에 통합시켰기에 <[경성일보]>의 일본인 사장과 편집국장 밑에 소속되어 일제의 한국 통치를 합리화하고 [[1]]를 주장하는 논조로 발간되었다.
특징
1920- 1930년대
1920년 초까지의 무단정치 기간에는 <[매일신보]>가 유일한 한국어 일간지였으므로, 이 신문에 [이인직], [조중환] ,[이해조] ,[이상현] 등 신소설 또는 법안 소설을 발표하였고, [이광수]가 데뷔작 [무정], [개척자]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또한 편집국을 <[경성일보]> 편집국에서 분리시켰고, 1938년 4월 16일 <[경성일보]>에서 완전 독립된 주식회사가 되었다. 또한 제호도 <[매일신보](每日新報)>로 바꾸고 최린이 사장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이때도 주식의 과반수를 조선총독부가 소유하고 있었다.
한계
반일 성향을 가지고 있는 <대한매일신보>와는 달리 일본인이 사장과 편집국장을 맡은 상황이었기에 <[매일신보]>는 조선총독부와 일제의 통치에 협조적인 일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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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네트워크 그래프
각주
<references/ 뿌>
작성자 및 기여자
- 작성자: 전유미
- ↑ 내선일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