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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text-align:center;"|'''단체명'''|| style="width:70%;"|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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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21길 30 (태평로 1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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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기업종류''' || 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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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국가'''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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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창간일''' || 1920년 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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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창립자'''|| [[대정실업친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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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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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1920년 3월 5일에 창간된 신문사로 한국의 신문사들 중 두 번째로 오래된 신문사이고 한국어 신문 중에는 첫번째로 오래된 신문이다. 현재까지도 종이신문을 발간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내에서 2021년 기준 유료 부수가 100만부가 넘는 신문이다. 방송사로는 조선 TV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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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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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일 부터 6.25까지의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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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발생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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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3월 5일|| [[대정실업친목회]]에 의해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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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4월 28일|| [[영친왕]]과 [[마사코]]와의 결혼 비판 기사로 인해 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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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8월 15일|| 자본금 불입으로 [[유문환]]이 2대 사장으로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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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8월 27일|| 미국 의원단 방한을 환영하는 기사로 1주간 정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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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9월 5일|| [["당국의 소위 문화 통치는 기괴치 아니한가"]]라는 논설로 무기 정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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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background:#3ca9a9; color:#ffffff; font-size:130%; text-align:center;"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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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4월 8일|| [[조선총독부]]가 조선일보를 인수해 [[송병준]]에게 위임하려 했으나 거절해, 3대 사장은 [[남궁훈]]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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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text-align:center;" | [[파일:조선일보.png|20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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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9월 13일|| [[신석우]]가 조선일보를 인수. 4대 사장으로 [[이상재]]가 취임함. 신간회 결성 주도 및 한글 교재 무상 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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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width:80px; text-align:center;" |'''명칭''' || [[주식회사 조선일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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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1월|| 러시아가 일본과 외교관계를 맺자, 김준연을 파견. 5대 사장 [[신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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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한자''' || 朝鮮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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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7월|| 조선일보 6대 사장으로 [[안재홍]]이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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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 ||[[안재홍]]이 재만동포 자금 횡령 사건에 연류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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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사장 [[유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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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사장 [[조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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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사장 [[방응모]] [[교육 필화]]로 인해 총독부에게 기사 압수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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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 || 조선총독부의 [[민족 말살정책]]으로 조선일보 발간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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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1월 23일 ||미국의 지원을 받아 다시 속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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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 [[이승만]]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 노선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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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 1950년 6월 24일 ||[[이승만]] 정부의 출범 지지 , 반민족 행위자 강력 처벌과 처단 주장, 국가 보안법 제정당시 남용소지 비판 및 국가 보안법 사용 규범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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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창간일''' || 19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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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북한에게 조선일보가 넘어가면서 인민군 기관지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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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종류''' || 일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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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0월 1일|| 전세가 역전되어 대한민국의 기관지가 되어 한국 전쟁 이슈를 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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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 ||이승만 정부와 대한민국 국근을 지지, 그러나 국민방위군 사건 등과 같은 국군에게 불리한 내용은 다루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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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 자유진영 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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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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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일제 신문 발행을 하고, 일요일은 온라인 서비스만 제공한다. 종합뉴스는 평일과 토요일에만 싣고, 경제는 평일에 싣는다. 별도엔 기타, 생활 정보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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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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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hosun.com 조선일보홈페이지]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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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j1HKSYpU_YY 조선일보 유트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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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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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언론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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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지 : [[주간조선]]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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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지 : [[스포츠조선]]
  
===1920===
+
관광 숙박 시설에 관한 잡지 : [[월간 산]]
1920년 4월 1일 3·1운동 이후에 조선총독부가 문화통치를 표방하고 한국인이 발행하는  민간신문을 허가하였고, 그 중에서 하나가 김성수(金性洙)를 대표로 창간했던 동아일보 였다.
 
창간할 당시부터 민족대변지의 자각에서 출발하여 격렬한 항일필봉을 휘둘렀고 일제의 주요 탄압대상이 되었다.
 
창간한지 2주 만인 4월 15일에 기사 ‘평양에서 만세소요’ 가 문제가 되어 발매·반포 금지를 당한 것을 비롯하여 수많은 발매·반포의 금지·압수·삭제 등으로 총독부에게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1920년 9월 일본 왕실의 상징인 3종신기(三種神器)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다음해 1월까지 정간을 당하였다.
 
1926년 3월 국제농민조합본부에서 보낸 3·1운동 6주년 기념 축사를 번역하여서 게재했다는 이유로 4월까지 정간을 당하였다,
 
1920년 동안 신문 면수는 창간 때 4면이던 것이 1925년 8월 6면, 1929년 9월 8면 으로 점차 증면하였다.
 
===1930===
 
1930년 4월 한민족의 항쟁을 격려한 미국 언론인 서한을 실었다는 이유로 9월까지 정간을 당하였다.
 
1936년 8월 베를린올림픽의 마라톤경기에서 우승한 손기정의 유니폼에 그려진 일장기를 삭제하였고 그 사진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다음해의 6월까지 정간을 당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에 동아일보 제호 배면의 무궁화도안 삭제에 관한 명령 등 총독부의 압박이 강화되었다.
 
1930년동안 1934년 9월 10면, 1936년 1월 12면으로 점차 증면되었다.
 
  
===1940===
+
취미 문화 관련 : [[월간 낚시]]
1940년 8월 10일 총독부의 강압에 의해 폐간을 하게 되었다.
+
 
1945년 12월 1일, 강제 폐간을 당한 지 5년 4개월 만에 중간(重刊)되었다. 체재는 타블로이드판의 2면제로 발행하었다. 광복 이후 무수히 나오는 신문계들 사이에 전통 있는 신문의 출현은 민중에 큰 기대를 주는 힘이 되었고, 우익민족진영에게는 더 큰 힘이 되었다.
+
어린이를 위한 신문 : [[어린이조선일보]]
1948년 10월 배대판(倍大版)을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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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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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회사 : [[디지틀조선]],[[월간조산]],[[조선에듀케이션]],[[헬스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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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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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언론상 취재보도상-신문부문(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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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언론상 어젠다상 - 신문 부문(2015년),(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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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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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F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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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정실업친목회]] || [[조선일보]] || A는 B를 창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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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 일간지 || A는 B의 성격을 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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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 한글신문사  || A는 최초의 B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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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문환 || [[조선일보]]  || A는 B의 2대 사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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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훈 || [[조선일보]]  || A는 B의 3대 사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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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재 || [[조선일보]]  || A는 B의 4대 사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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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석우 || [[조선일보]]  || A는 B의 5대 사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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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홍 || [[조선일보]]  || A는 B의 6대 사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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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태 || [[조선일보]]  || A는 B의 7대 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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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만식 || [[조선일보]]  || A는 B의 8대 사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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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총독부]] || [[조선일보]]  || A는 B를 억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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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7일, 6·25전쟁으로 인하여 마지막 호외를 낸 후 휴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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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0월 4일 복간하여 타블로이드 2면을 간행하였지만 1951년 1·4후퇴로 인하여 다시 휴간하고, 1월 10일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복간을 하였다. 지방신문의 인쇄시설을 이용하여 타블로이드 2면을 겨우 발행하였다.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EC%9D%BC%EB%B3%B4 조선일보-위키피디아]
1952년 2월 부산 토성동에 임시사옥을 지었고 배대판 2면을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1955년 3월 15일자 신문에 대통령에 관련된 기사의 표제에 오식(誤植)이 있었다는 이유로 무기정간처분을 받았지만 1개월 만에 해제되었다.
 
===1960===
 
1960년 12월, 4·19혁명 이후 사회혼란 와중에 기사에 대해 불만이 쌓인 박태선장로교(朴泰善長老敎) 신도 1,000여 명에게 습격을 받는 불상사를 겪었다.
 
1961년 5·16군사정변 이후에 언론의 제약이 심해졌고 몇 차례의 필화사건을 겪었다. 5·16군사정변 이후 주 36면 석간으로 발행되었다. 
 
===1970===
 
1970년 3월 주 48면 석간으로 기존에 비해 증면되었다.
 
1974년 12월 하순부터 ‘광고탄압’이라는 한국신문사상 전무후무 사태를 맞이 하였다. 이듬해 2월, 8명의 임원을 퇴임시키고 일부 기구를 축소하여 난국을 타개하고자 노력하였고, 많은 일반 독자들이 광고란을 구입하여 소규모이지만 재정적인 지원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이 탄압은 1975년 7월에야 풀렸다.
 
===1980===
 
1981년 1월부터 주 72면으로 증면하여 발행하였다. 1984년 4월 2일 새 활자를 채택하였으며 면적이 31% 확대되었다. 기본 체제도 17단에서 15단으로 개선하였다. 1992년 7월 최첨단 인쇄시스템을 가동하였다,
 
===1990===
 
1993년 4월 1일 조간으로 발행하고 있다.
 
===2000년대===
 
2002년 1월 동아일보 모바일 서비스를 개시하였다. 2005년 8월엔 32면 컬러 인쇄 체제를 완료하였다.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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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1/08/2010010800011.html 격동의 역사와 함께한 조선일보 90년. 조선일보 인수해 혁신시킨 신석우 임시정부 때는 '대한민국' 국호(國號) 정해]
[http://www.donga.com/ 동아닷컴] <br/>
+
[[분류 : 독립신문]] [[분류 : 한글 신문]]
[https://www.facebook.com/dongamedia 페이스북] <br/>
 
[https://twitter.com/dongamedia 트위터] <br/>
 
[https://www.instagram.com/dongailbo/?hl=ko 인스타그램]
 

2022년 6월 20일 (월) 10:49 기준 최신판






개요

조선일보는 1920년 3월 5일에 창간된 신문사로 한국의 신문사들 중 두 번째로 오래된 신문사이고 한국어 신문 중에는 첫번째로 오래된 신문이다. 현재까지도 종이신문을 발간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내에서 2021년 기준 유료 부수가 100만부가 넘는 신문이다. 방송사로는 조선 TV가 있다.


연표

창간일 부터 6.25까지의 연표

년도 발생 사건
1920년 3월 5일 대정실업친목회에 의해 창간
1920년 4월 28일 영친왕마사코와의 결혼 비판 기사로 인해 압수
1920년 8월 15일 자본금 불입으로 유문환이 2대 사장으로 취임.
1920년 8월 27일 미국 의원단 방한을 환영하는 기사로 1주간 정간
1920년 9월 5일 "당국의 소위 문화 통치는 기괴치 아니한가"라는 논설로 무기 정간
1921년 4월 8일 조선총독부가 조선일보를 인수해 송병준에게 위임하려 했으나 거절해, 3대 사장은 남궁훈이됨.
1924년 9월 13일 신석우가 조선일보를 인수. 4대 사장으로 이상재가 취임함. 신간회 결성 주도 및 한글 교재 무상 배포
1925년 1월 러시아가 일본과 외교관계를 맺자, 김준연을 파견. 5대 사장 신석우
1931년 7월 조선일보 6대 사장으로 안재홍이 취임.
1931년 ~ 안재홍이 재만동포 자금 횡령 사건에 연류됨.
7대 사장 유진태
8대 사장 조만식
9대 사장 방응모 교육 필화로 인해 총독부에게 기사 압수됨.
1940년 ~ 조선총독부의 민족 말살정책으로 조선일보 발간 중단.
1945년 11월 23일 미국의 지원을 받아 다시 속간.
1947년 ~ 이승만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 노선 지지.
1948년 ~ 1950년 6월 24일 이승만 정부의 출범 지지 , 반민족 행위자 강력 처벌과 처단 주장, 국가 보안법 제정당시 남용소지 비판 및 국가 보안법 사용 규범 제시
1950년 6월 25일 북한에게 조선일보가 넘어가면서 인민군 기관지가 됨.
1950년 10월 1일 전세가 역전되어 대한민국의 기관지가 되어 한국 전쟁 이슈를 다룸.
1951년 ~ 이승만 정부와 대한민국 국근을 지지, 그러나 국민방위군 사건 등과 같은 국군에게 불리한 내용은 다루지 않음.
1954년 ~ 자유진영 지지

지면

주 6일제 신문 발행을 하고, 일요일은 온라인 서비스만 제공한다. 종합뉴스는 평일과 토요일에만 싣고, 경제는 평일에 싣는다. 별도엔 기타, 생활 정보를 싣는다.

관련링크

조선일보홈페이지

조선일보 유트브

자매언론기관

주간지 : 주간조선

스포츠지 : 스포츠조선

관광 숙박 시설에 관한 잡지 : 월간 산

취미 문화 관련 : 월간 낚시

어린이를 위한 신문 : 어린이조선일보

자회사 : 디지틀조선,월간조산,조선에듀케이션,헬스조선

수상목록

삼성언론상 취재보도상-신문부문(2014년)

삼성언론상 어젠다상 - 신문 부문(2015년),(2013년)

네트워크 그래프

RDF 표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대정실업친목회 조선일보 A는 B를 창립했다.
조선일보 일간지 A는 B의 성격을 띄고 있다.
조선일보 한글신문사 A는 최초의 B이다.
유문환 조선일보 A는 B의 2대 사장이다.
남궁훈 조선일보 A는 B의 3대 사장이다.
이상재 조선일보 A는 B의 4대 사장이다.
신석우 조선일보 A는 B의 5대 사장이다.
안재홍 조선일보 A는 B의 6대 사장이다.
유진태 조선일보 A는 B의 7대 사장이다.
조만식 조선일보 A는 B의 8대 사장이다.
방응모 조선일보 A는 B의 9대 사장이다.
조선총독부 조선일보 A는 B를 억압했다.

출처

조선일보-위키피디아

격동의 역사와 함께한 조선일보 90년. 조선일보 인수해 혁신시킨 신석우 임시정부 때는 '대한민국' 국호(國號) 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