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스의 심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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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트로이목마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 결국 트로이목마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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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0일 (목) 23:44 기준 최신판
파리스의 심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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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파리스의 심판 |
아티스트 | 페테르 루벤스 |
제작연대 | 1597년 ~ 1599년경 |
기법 | 오크 패널에 유채 |
크기 | 133.9 x 174.5 cm |
소장처 | 런던 내셔널 갤러리 |
개요
그리스 신화, 파리스의 심판을 토대로 페테르 루벤스가 만든 작품.
작가
작품 배경
파라스의 심판 속에 나온 황금 사과를 둔 세 여신의 다툼의 시초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인간 펠레우스의 결혼식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은 성대하게 열렸고 모든 올림푸스 신들과 무사이들이 초대를 받았었다.
단 하나의, 불화의 여신 에리스를 제외하고.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은 재앙의 시초가 될 황금 사과 하나를 잔칫상에 떨어트렸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문구가 적힌 사과를 차지하기 위해 모든 여신들이 다투었고 결국 가장 위대한
신들의 여왕 헤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 이 세 여신만 남게 되었다.
그들의 다툼을 중재할 수 없었던 제우스와 올림푸스의 신들은 이 판결을 인간들 중에 가장 잘생겼던 양치기 파리스에게 맡기게 된다.
세 여신은 파리스에게 각자 하나씩 약속한다.
헤라는 부귀영화와 권세를,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테네는 전쟁에서 승리와 명예를 약속한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했고 이는 선택받지 못 한 여신들의 질투와 시기를 불러왔고
결국 트로이목마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