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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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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조선 후기 한성판윤을 지내고 을사늑약 체결을 반대한 한규설(1848∼1930)의 저택이다. 원래 장교동에 있던 것을 국민대학교에서 사들여 교내로 옮겨 지었으며, 1890년 이전에 지은 건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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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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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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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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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대 건립, 1980년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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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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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855번지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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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성신여대입구역→북한산보국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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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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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동 한규설 가옥은 189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대한제국기 참정대신을 지낸 한규설(1848∼1930)이 살았던 곳이다. 한규설은 을사조약을 끝까지 반대하다 파면되었으며, 일제시기에는 교욱운동에 투신하였다. 원래 중구 장교동에 있던 집을 1980년 12월 20일 국민대학교로 옮겨 새로 지었는데, 이 때 솟을대문, 좌우 행랑채, 중문간 행랑채

2021년 6월 8일 (화) 21:45 판

소개

지정번호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7호

시대

1890년대 건립, 1980년 이건

소재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855번지 2호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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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는 길

1.성신여대입구역→1116(지선 버스)→국민대후문정류장

2.성신여대입구역→북한산보국문역

역사

장교동 한규설 가옥은 189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대한제국기 참정대신을 지낸 한규설(1848∼1930)이 살았던 곳이다. 한규설은 을사조약을 끝까지 반대하다 파면되었으며, 일제시기에는 교욱운동에 투신하였다. 원래 중구 장교동에 있던 집을 1980년 12월 20일 국민대학교로 옮겨 새로 지었는데, 이 때 솟을대문, 좌우 행랑채, 중문간 행랑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