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가는 전봉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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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나의 20대 초반이 80년대였고, 전라도로 상징되는 역사적 상황이 안일한 서정시만 써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한국의 역사적 현실이 오순도순 같이 모여 살지 못하던 내 가족의 상황과도 흡사했다”라며 당시의 심정을 밝혔다 | *시인은“나의 20대 초반이 80년대였고, 전라도로 상징되는 역사적 상황이 안일한 서정시만 써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한국의 역사적 현실이 오순도순 같이 모여 살지 못하던 내 가족의 상황과도 흡사했다”라며 당시의 심정을 밝혔다 |
2020년 6월 19일 (금) 23:11 판
전문
서울로 가는 전봉준안도현눈 내리는 만경들 건너가네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그 누가 알기나 하리
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름 없는 들꽃이었더니
들꽃 중에서도 저 하늘 보기 두려워
그늘 깊은 땅 속으로 젖은 발 내리고 싶어하던
잔뿌리였더니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목 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주지 못하고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주지도 못하였네
그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주지 못하였네
못다 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
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
한 자 세 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여오나니
그 누가 알기나 하리겨울이라 꽁꽁 숨어 우는 우리나라 풀뿌리들이
입춘 경칩 지나 수군거리며 봄바람 찾아오면
수천 개의 푸른 기상나팔을 불어제낄 것을
지금은 손발 묶인 저 얼음장 강줄기가
옥빛 대님을 홀연 풀어헤지고
서해로 출렁거리며 쳐들어갈 것을
우리 성상(聖上) 계옵신 곳 가까이 가서녹두알 같은 눈물 흘리며 한 목숨 타오르겠네
봉준이 이 사람아
그대 갈 때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
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
오늘 나는 알겠네
들꽃들아그날이 오면 닭 울 때
흰 무명때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
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소리에
귀를 기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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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은“나의 20대 초반이 80년대였고, 전라도로 상징되는 역사적 상황이 안일한 서정시만 써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한국의 역사적 현실이 오순도순 같이 모여 살지 못하던 내 가족의 상황과도 흡사했다”라며 당시의 심정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