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이혜민2051129 (토론 | 기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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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은 용이 바위로 변하여서 절을 지을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해서 절 이름을 부석사로 하였다고 한다. | 의상은 용이 바위로 변하여서 절을 지을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해서 절 이름을 부석사로 하였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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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 따르면, 의상이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의상이 신라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게 했고, 절터까지 따라와서 절을 세우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본래 이 절터에는 사교의 무리가 모여 있었는데, 의상이 이 곳에 절을 세우려고 하자 선묘가 무거운 바위를 사교의 무리들의 머리 위로 띄워 이곳에 절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무량수전 옆에 큰 바위가 있는데,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선묘가 띄웠던 바위이며 아직도 떠 있다고 한다. | 《삼국유사》에 따르면, 의상이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의상이 신라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게 했고, 절터까지 따라와서 절을 세우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본래 이 절터에는 사교의 무리가 모여 있었는데, 의상이 이 곳에 절을 세우려고 하자 선묘가 무거운 바위를 사교의 무리들의 머리 위로 띄워 이곳에 절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무량수전 옆에 큰 바위가 있는데,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선묘가 띄웠던 바위이며 아직도 떠 있다고 한다. | ||
==구조== | ==구조== |
2020년 12월 4일 (금) 23:55 판
부석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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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부석사 |
한문명 | 浮石寺 |
종파 | 해동 화엄종 |
창건시기 | 676년(신라 문무왕 16) |
창건자 | 의상조사 |
소재지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북지리 148) |
소개
창건시기
신라 문무대왕 16년(676년)에 의상이 왕명을 받아 세운 화엄종 사찰
위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 중턱
유래
의상은 용이 바위로 변하여서 절을 지을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해서 절 이름을 부석사로 하였다고 한다.
전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의상이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의상이 신라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게 했고, 절터까지 따라와서 절을 세우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본래 이 절터에는 사교의 무리가 모여 있었는데, 의상이 이 곳에 절을 세우려고 하자 선묘가 무거운 바위를 사교의 무리들의 머리 위로 띄워 이곳에 절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무량수전 옆에 큰 바위가 있는데,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선묘가 띄웠던 바위이며 아직도 떠 있다고 한다.
구조
무량수전
- 지정종목
국보
- 지정번호
제 18호
- 소재지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사로 345 (부석면, 부석사)
- 종류
건축물
- 크기
정면 5칸, 측면 3칸
- 요약
부석사(浮石寺)의 본전으로서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창건하였으며 무량수전은 남향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 구조 : 추녀의 네 귀를 8각 활주로 받쳐주고 있다. 전면 기둥 사이에는 중앙어간과 양협간에 분합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하고 단간에는 창문을 달았다. 기둥에는 알맞은 배흘림이 안정감을 주며 간결한 두공과 우주에 보이는 귀솟음 수법은 건물 전체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자잘한 정자살 분합문 위에 시원스런 포벽, 그 위에 가늘고 긴 기왓골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1]
안양루
- 성격
누정, 누각, 누문
- 건립 시기
조선후기
- 건물 구조
정면 3칸, 측면 2칸인 다포계 겹처마 팔작지붕건물이다. 부석사의 무량수전의 바로 앞에 세운 2층 누각 건물로서, 2단으로 쌓은 높고 거대한 석축 위에 세워져 있다. 앞쪽 2줄의 기둥은 아랫기단 위 자연석 주춧돌에 놓여 있고, 뒷줄의 짧은 기둥은 윗기단에 놓이게 하였다.[2]
- 사진자료
이 외 구조
구조명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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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묘각(善妙閣) | 무량수전 북서쪽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의상조사의 창건 설화와 관련된 선묘라는 인물을 모신 건물이다. |
조사당(祖師堂) | 대한민국의 국보 제 19호로 무량수전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산 중턱에 위치하며 의상과 역대 조사를 기리는 곳이다. |
취현암(醉玄庵) | 조사당 동쪽 바로 옆에 있다. 1997년도에 복원되어 2002년까지 선원으로 활용되다 현재 부석사 산내암자로서 쓰이고 있다. |
응진전(應眞殿) | 무량수전 영역의 북편 위쪽에 떨어져 위치해 있으며, 자인당과 함께 거의 일렬로 남향하여 일곽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
자인당(慈忍堂) | 선방의 용도로 사용되던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이다. |
단하각(丹霞閣) | 최근세 지어진 것으로, 응진전 뒤쪽에 위치한다."단하"(丹霞)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른다고 한다. |
범종루(梵鐘樓) | 누각식 문 구조로, 2층 정면 3칸, 측면 4칸으로 이루어졌다. |
선열당(禪悅堂) | 범종각과 안양루 사이에 위치하며,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채로 이용되고 있다. |
응향각(凝香閣) | 취현암 앞에 위치하며 원래는 강원 건물이었다고 한다. 무량수전으로 오르는 계단 오른쪽에 위치했었는데,1980년 철거하고 뒤로 물려서 신축하였다. |
삼성각(三聖閣) | 무량수전 서쪽 석축 아래에 위치해 있다. 원래는 축화전(祝花殿)이라 불렀는데 영조 때 대비의 원당으로 지은 건물이라 한다. |
종각(鐘閣) | 범종을 보관하는 건물로, 1980년의 보수공사 이후 신축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맞배집으로, 기둥만 새우고, 기둥 사이는 홍살로 막았다. |
- 사진자료
관련 영상
- 자연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