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홍화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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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의 정문으로 홍화는‘조화를 넓힌다’, 즉 덕을 행하여 백성을 감화시키고 널리 떨친다는 뜻이다. 창경궁 창건 당시에 처음 건립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16년에 재건된 건물이다.
 
창경궁의 정문으로 홍화는‘조화를 넓힌다’, 즉 덕을 행하여 백성을 감화시키고 널리 떨친다는 뜻이다. 창경궁 창건 당시에 처음 건립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16년에 재건된 건물이다.
 
홍화문은 국왕이 직접 백성들을 만났던 곳이기도 하다. 영조는 1750년에 균역법을 시행하기 전에 홍화문에 나가 양반과 평민들을 만나 균역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정조는 1795년에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을 기념하여 홍화문 밖에 나가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고, <홍화문 사미도(弘化門 賜米圖)> 라는 기록화에 그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홍화문은 국왕이 직접 백성들을 만났던 곳이기도 하다. 영조는 1750년에 균역법을 시행하기 전에 홍화문에 나가 양반과 평민들을 만나 균역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정조는 1795년에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을 기념하여 홍화문 밖에 나가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고, <홍화문 사미도(弘化門 賜米圖)> 라는 기록화에 그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2023년 6월 4일 (일) 14:11 판

홍화문문.jpg

창경궁의 정문으로 홍화는‘조화를 넓힌다’, 즉 덕을 행하여 백성을 감화시키고 널리 떨친다는 뜻이다. 창경궁 창건 당시에 처음 건립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16년에 재건된 건물이다. 홍화문은 국왕이 직접 백성들을 만났던 곳이기도 하다. 영조는 1750년에 균역법을 시행하기 전에 홍화문에 나가 양반과 평민들을 만나 균역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정조는 1795년에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을 기념하여 홍화문 밖에 나가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고, <홍화문 사미도(弘化門 賜米圖)> 라는 기록화에 그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