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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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
10월 16일 전남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 535번지에서 아버지 김봉수, 어머니 문일님의 둘째 아들로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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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
삼화초등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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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 |
해남중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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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 |
광주제일고등학교 입학, 입시위주의 교육에 반대하여 이듬해 자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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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 |
대입검정고시를 거쳐 전남대 문리대 영문과 입학. 3선 개헌 반대운동과 교련 반대운동에 참여, 반독재민주화운동을 이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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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
유신헌법에 맞서 친구 이강과 함께 전국 최초의 반유신투쟁 지하신문 <함성>지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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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 |
전국적인 반유신투쟁을 전개하기위해 지하신문 <고발>지 제작.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8개월만에 석방. 전남대에서 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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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지음. <창작과 비평>여름호에 ‘진혼가’, ‘잿더미’등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 이듬해 광주에 사회과학서점 ‘카프카’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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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 |
해남농민회를 결성(이후 한국기독교농민회의의 모체가 됨). 광주에서 황석영, 최권행과 함께 민중문화연구소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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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 |
상경.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에 가입. 남민전 전위대 전사로 활동. 수배 중 프란츠 파농의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청사) 번역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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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 |
남민전 조직원으로 서울에서활동 중 구속됨. 이듬해 이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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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
첫 시집 [진혼가](청사)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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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
전주교도소로 이감. 독일 함브르크에서 개최된 국제PEN대회에서 ‘김남주 시인 석방결의문’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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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
제2시집 [나의 칼 나의 피](인동), 일본에서 시집 [농부의 밤] 일어판 출간. 일본 PEN클럽 명예회원으로 추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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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
국내문인들의 석방 탄원서와 PEN클럽 세계본부, 미국PEN클럽 등이 정부에 석방 촉구 공문 보냄, 미국PEN클럽 명예회원으로 추대됨. 제3시집 [조국은 하나다](남풍) 및 하이네, 브레히트, 네루다의 혁명시집 시선집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남풍) 출간, 12월 21일 형집행정지로 투옥생활 9년 3개월 만에 전주교도소에서 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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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
1월 29일 광주 문빈정사에서 박광숙과 결혼. 옥중서한집 [산이라면 넘어주고 강이라면 건너주고](삼천리), 시선집[사랑의 무기](창작과 비평사), 제4시집 [솔직히 말하자](풀빛)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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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
광주항쟁시집 [학살](한마당)출간. 92년 12월까지 민족문학작가회의 민족문학연구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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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
제5시집 [사상의 거처](창작과 비평사) 출간. 제9회 신동엽창자기금 받음. 시선집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미래사), 산문집[시와 혁명](나루)출간. 하이네 정치풍자시집 [아타 트롤](창작과 비평사)번역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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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
제6시집 [이 좋은 세상에](한길사), 옥중시선집 [저 창살에 햇살이1, 2](창작과 비평사), 김남주 아포리즘 [길 떠난 길 위에서](제3세대)출간. 제6회 단재상 문학부문 수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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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
제3회 윤상원상 수상. 여의도 여성백인회관에서 ‘김남주 문학의 밤’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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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
2월 13일 새벽 2시 30분 췌장암으로 별세. 광주 망월동 5월 묘역에 안치. 유족으로 부인 박광숙 여사와 아들 토일(土日) 군이 있음. 문학에세이 [불씨 하나가 광야를 태우리라](시와 사회사)출간. 제4회 민족예술상을 수상했으며, 이듬해 유고시집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창작과 비평사) 와 브레히트 등 외국 시인의 작품을 번역한 시집 [은박지에 새긴 사랑],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푸른 숲] 출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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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
5월20일 광주 중외공원에 김남주 시비가 건립되었으며, 김남주의 시 13편에 곡을 부친 가수 안치환의 헌정앨범 'Remember'가 발매됨, 2004년 시선집 [꽃 속에 피가 흐른다](창비) 간행. 계간 <시와 시학>이 주관하는 ‘영랑시문학상’ 제2회 수상자로 선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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