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특별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전시공간)
29번째 줄: 29번째 줄:
 
|-
 
|-
 
|모으다|| [[간송미술관]]의 전신인 우리나라 최초 사립[[박물관]] 보화각이 탄생한 이야기가 펼쳐진다.‘청자상감운학문매병’[[고려청자]]도 이곳에 전시되었다.
 
|모으다|| [[간송미술관]]의 전신인 우리나라 최초 사립[[박물관]] 보화각이 탄생한 이야기가 펼쳐진다.‘청자상감운학문매병’[[고려청자]]도 이곳에 전시되었다.
 +
|-
 
|지키다||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고미술품을 경매한 유일한 단체인 경성미술구락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간송이 경성미술구락부를 통해 사들인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국보 제294호), 예서대련(보물 제1978호), 침계(보물 제1980호) 등을 만날 수 있다.
 
|지키다||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고미술품을 경매한 유일한 단체인 경성미술구락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간송이 경성미술구락부를 통해 사들인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국보 제294호), 예서대련(보물 제1978호), 침계(보물 제1980호) 등을 만날 수 있다.
 
|-
 
|-
|되찾기||  
+
|되찾다|| [[간송]]이 1937년 영국 귀족 출신 변호사 존 개스비에게 수집한 도자기 컬렉션 스무 점을 선보인다. 일본 정세가 불안해지자 개스비는 컬렉션을 처분하려 했고, 간송은 집안 대대로 내려왔던 충남 공주 일대의 땅 1만 마지기를 팔아 개스비 컬렉션을 사들였다. 당시 [[서울]] [[기와집]] 400채 값과 바꾼 [[도자기]]들은 ‘고려청자기린형향로', '고려청자원숭이형연적’ 등으로 훗날 국보 4점과 보물 5점으로 지정됐다.
 
|}
 
|}
 
 
 
  
 
===기타===
 
===기타===

2022년 11월 30일 (수) 17:59 판

간송 전형필

전시공간

전시공간 설명
알리다 서울디자인재단과 간송미술문화재단이 공동으로 기획. 주요 유물 15점을 디지털화한 작품으로 선보이고, 간송미술관의 모습을 가상현실로 구현했다. 2014년 처음으로 외부에서 개최한 <간송문화전>의 지난 5년간의 DDP 나들이를 갈무리하는 구간으로서 의의를 가진다.
전하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흔적이 보인다. 보성학교3·1운동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폐교위기에 처하자, 간송이 황해도의 3000석지기 땅을 처분해 보성학교를 인수한 이야기 등을 만날 수 있다.
모으다 간송미술관의 전신인 우리나라 최초 사립박물관 보화각이 탄생한 이야기가 펼쳐진다.‘청자상감운학문매병’고려청자도 이곳에 전시되었다.
지키다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고미술품을 경매한 유일한 단체인 경성미술구락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간송이 경성미술구락부를 통해 사들인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국보 제294호), 예서대련(보물 제1978호), 침계(보물 제1980호) 등을 만날 수 있다.
되찾다 간송이 1937년 영국 귀족 출신 변호사 존 개스비에게 수집한 도자기 컬렉션 스무 점을 선보인다. 일본 정세가 불안해지자 개스비는 컬렉션을 처분하려 했고, 간송은 집안 대대로 내려왔던 충남 공주 일대의 땅 1만 마지기를 팔아 개스비 컬렉션을 사들였다. 당시 서울 기와집 400채 값과 바꾼 도자기들은 ‘고려청자기린형향로', '고려청자원숭이형연적’ 등으로 훗날 국보 4점과 보물 5점으로 지정됐다.

기타

작성자: 김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