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와 살육"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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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16일 (일) 15:24 판

구분

어문 > 소설 > 중·단편소설

출간시기 및 발표매체

1925년에 조선문단에서 출간됐다.

줄거리

자기 키보다 넘는 나뭇짐을 걸머진 경수는 험한 비탈길을 엉금엉금 걷는다. 짐에 괴로운 그는 산 임자가 뒷덜미를 집는 것 같아 더욱 괴롭다. 하지만 추위에 벌벌 떨고 있는 식구들을 생각하면서 이를 악물고 오 리가 가까운 집에 도착했다. 경수에게는 산후 풍으로 고생하는 아내와 세 살 난 딸 학실이, 그리고 늙으신 어머니가 있다.

경수는 어둑한 부엌 문 앞에 앉아서 물끄러미 부뚜막을 본다. 열흘 넘게 산후 풍에 신음하는 아내가 때가 지덕지덕한 포대기에 싸여 누워있다. 어머니는 아까 안채에서 집세 때문에 야단을 치고 갔다고 말씀하신다. 경수는 괜히 화가 난다. 경수네가 옛날부터 그렇게 가난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 시대에는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하지만 자기가 가장인 이때에 와서 가난으로 굶주린 가족들 앞에 얼굴을 내놓기가 부끄러웠다.

경수는 이런 가난에 가족마저 귀찮은지 모두 죽어라! 하고 저주를 했다가 무서운 꿈이나 본 듯이 눈을 떴다 감으며 돌아눕는다. 돌아누운 채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데 풍이 다시 시작되었는지 아내가 경수를 부른다. 경수는 역증나게 대답을 하고, 소리없는 눈물을 흘리는 아내의 모습에 곧 후회를 한다. 아내의 입술은 파랗고, 손가락 발가락이 모두 곱아들었으며, 팔다리의 관절도 줄어 붙어 있었다. 어머니와 경수가 주물러 펴려고 애쓰지만 아내의 팔다리는 점점 굳어만 간다. 결국 어머니의 말씀에 경수는 의원에게 간다.

어쩐 일인지 네 번이나 거절하던 최 의사가 오늘은 경수를 따라온다. 맥을 짚어 본 의사는 병을 고쳐줄테니 의채 오십 원을 주겠다는 계약서를 쓰라 한다. 돈은 없지만 아내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계약서를 써준다. 의사는 아내의 팔다리에 동침을 놓은 후 약화제 한 장을 써주면서 박 주사 약국에 가서 약을 지으라 한다. 아내의 몸은 점점 풀리면서 순하여진다. 경수는 의사가 적어준 약화제를 들고 약국에 들어선다. 그러나 경수는 모든 설움이 복받쳐서 눈물에 앞에 캄캄하다. 세상이 너무도 자기를 학대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새삼스럽게 슬프고 쓰리고 원통하다. 결국 그는 주먹으로 눈물을 씻으며 빈손으로 약국 문을 나선다.

집에 오자 아내가 약을 지어왔냐고 묻는다. 하지만 경수는 약을 못지어 왔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어 이제 약을 가지러 가야겠다고 한다. 불빛이 어스름한 방안에 앉아있다. 어디 가신 어머니가 얼른 오시지 않는 것이 조마조마한 그의 눈에 환상이 보인다. 괴물들이 철관으로 아내의 심장을 질러 놓고는 검붉은 피를 빨아먹고 자기 옆에 있는 괴물들도 자기의 피를 빨아먹는 환상이었다.

경수는 악 소리를 치며 벌떡 일어섰다. 그때까지 어머니는 오시지 않았다. 경수의 눈에 기구한 어머니의 시체가 보이는 듯하다. 이런 상상을 부인할 때마다 그러한 생각을 하는 자신이 고약스럽고 악착스럽다. 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경수는 깜짝 놀라 일어섰다. 누군가 히슥한 것을 등에 업고 경수 앞에 나타났다. 그의 어머니가 팔다리에 검붉은 피를 흘리며 업혀온 것이다. 어머니를 방에 들여다 눕혔다.

김참봉은 어머니가 지나인의 집 개에 물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중에도 옆구리에 무언가를 꼭 껴안고 있었다 했다. 그것을 풀자 한 되도 못되는 누런 좁쌀이 우시시 나타났다. 며느리를 먹이려고 자기 머리에 다리(月子)를 풀어 가지고 물남에 쌀을 팔러 갔다가 당한 일이었다. 경수의 아내가 흑흑 운다. 너무도 무서운 광경에 놀랐는지 또 풍증이 일어났다. 누구 하나 뜨뜻한 물 한술 갖다주는 이가 없고, 모였던 사람은 하나 둘씩 가버린다.

경수는 머리가 띵하였다. 경수의 눈에 또 환상이 나타난다. 어둑한 구석구석으로부터 몸서리치도록 무서운 악마들이 뛰어나와 집을 불사르고 어머니를, 아내를, 학실이를, 자기까지 태워 버리려고 확확 몰려온다. 그 악마들은 시퍼런 칼로 온 식구를 쿡쿡 찌른다.

이러한 환상이 그의 눈앞에 활동사진같이 나타날 때 그는 벌떡 일어섰다. 그의 손에는 식칼이 쥐어져있다. 그는 으악∼ 소리를 치면서 칼을 들어서 내리찍는다. 아내, 학실이, 어머니 할 것 없이 내리찍는다. 그리고는 밖으로 뛰어나간다. 그는 주저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부수고, 사람이 보이면 사람을 찌른다.

고요하던 거리에는 사람의 소리로 요란하다. 경수는 어느새 웃장거리 중국 경찰서 앞까지 이르렀다. 그는 경찰서 앞에서 파수보는 순사를 콱 찔러 누이고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창문을 부순다. 눈에 보이는 사람을 다 찌른다. 경찰서 안에서는 총소리가 연방 난다. 벽력같이 울리는 총소리는 쌀쌀한 바람과 함께 거기에 처량히 울린다. 모든 누리는 공포의 침묵에 잠겼다.


작품해설

주인공 경수가, 아내의 병을 미끼로 탐욕을 채우려는 최의사와 약국 주인 박주사의 몰인정 때문에 결국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는 줄거리의 작품이다. 경수는 어머니와 처자식을 부양하면서 극도로 빈궁하게 살아간다. 땅이 없어 농사도 지을 수 없고, 자본이 없어 장사도 할 수 없고, 교사나 사무원 노릇도 말 한 번 잘못하면 쫓겨나는 신세이기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집주인은 집세를 독촉하고, 아내가 다 죽어가는 판인데 의사는 한 달 내에 진료비를 못 갚으면 일 년 간 머슴살이를 하겠다는 계약서를 받고서야 침을 놓아준다. 그나마 받아낸 처방전을 가져가도 약국에서는 돈이 없다고 약을 지어주지 않는다.

도저히 타개할 수 없는 궁핍한 현실 앞에서 경수는 탐욕에 물든 최의사와 박주사에게 적개심을 품게 되고, 마침내 잔인한 자기 파괴로 치닫기에 이른다. 노모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아서 ‘한 줌도 못되는 누런 좁쌀’을 사오다 중국인 개에게 물려 인사불성이 된 것을 보자, 마침내 경수의 분노는 폭발하고 만다. 그는 우선 가족을 몰살하고 밖으로 뛰어나와 닥치는 대로 살인을 저지르며 중국 경찰서까지 파괴한다. “모두 죽여라! 이놈의 세상을 부수자! 복마전 같은 이놈의 세상을 부수자! 모두 죽여라!”, “내가 미쳐? 내가 도적놈이야? 이 악마같은 놈들 다 죽인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경수가 저지른 살인은, 환경 충격에 의한 자기 방위로서의 나르시시즘적 충동 때문으로 풀이해 볼 수가 있다.

즉, 현실 대응이 더 이상 불가능할 때, 자신을 옥죄는 가족들에 대한 부담이 극악한 환경으로부터 놓여나고자 하는 경수의 파괴적 행동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경수가 발광하게 되기까지의 상황을 대단히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얼마간의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 작품은, 당시의 전면적 궁핍상을 반영하면서도, 식민지 현실에 대한 개인적 차원의 분노와 저항을 형상화하는 데 그침으로써 조직적 계급 의식의 각성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신경향파적 소설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특징

이 소설의 가치는1920년대 만주벌판을 무대로 신음하다 사라져간 동포들의 참상이나 그 정황을 다룬 특이함에서 보다 오히려 한 가족의 수난을 통해 전민족적 단위로서의 역경과 궁핍으로 연역 확대가 가능한 그 상징적 표출 속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생존의 권리마저 거부당했을 때 야기될 수 있는 비극적인 생의 종말을 보여준다. 작가의 초기 소설이 흔히 그렇듯 이 소설의 갈등은 개인 대 사회라기보다 가족을 한 단위로 하는 소집단과 사회라는 특이한 갈등관계를 형성한다.

정수는 가족에 대한 강한 연대의식구심력 때문에 당시 유행처럼 번졌던, 새로운 질서를 표방하고 거창한 구호를 외쳐대는 혁신운동에 헌신하지 못하고 그대로 가족의 일원으로 잔류하여 소박하나마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였다.

가족이야말로 어둡고 고통스런 삶을 위무받을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러므로 이 삶에서의 일탈이나 상실은 그대로 존재의 근거와 뿌리를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중요한 의미를 내포했다. 이역땅 만주를 지배하는 사회질서도 우리나라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이 있는 자, 가진 자들만을 비호하는 사회양식 그대로였다.

산임자·집주인·의원·약국주인 등으로 대표되는 가진 자들은 하나의 지배계층으로 상징되고, 이에 덧붙여 원주민인 중국인의 횡포와 살을 에는 모진 추위는 헐벗고 빈한한 자들을 괴롭히는 요인으로 가중된다.

극도의 굶주림과 추위, 게다가 가족의 생존권마저 거부당한 극한상황 속에서 취할 수 있는 주인공의 행동으로는 광기 어린 극단적 발악밖에 남는 것이 없다. 그는 가족을 몰살하는 자학과 닥치는 대로 타인을 도살하는 가학의 이중적 극치 속에서, 자타를 부정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강변한다.

이 소설의 가치는 1920년대 만주벌판을 무대로 신음하다 사라져 간 동포들의 참상이나 그 정황을 다룬 특이함보다, 오히려 한 가족의 수난을 통해 전 민족적 단위의 역경과 궁핍으로 연역 확대가 가능한 상징적 표출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단일한 효과, 기분·정서, 집중된 인상의 제시, 그리고 서술된 시간의 단축 등의 구조적인 특성은 근대 단편소설의 특징과 부합되는 수작(秀作)으로 간주할 수 있다. 주인공이 발광하여 닥치는 대로 살육하는 과정에서 그 대상이 선별되지 못했다는 점은 주제의식 및 역사의식의 결여라는 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참고문헌

한국문예위원회 http://munjang.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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