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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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개요

경기도 광주시·성남시·하남시에 걸쳐 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었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축조되어 북한산성(北漢山城)과 더불어 서울을 남북으로 지키는 산성 중의 하나이다.

위치

대한민국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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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흔히 북한산성(北漢山城)과 함께 조선의 도성인 한양의 방어를 위하여 쌓은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의 발굴조사 결과, 8세기 중반에 조성된 성벽과 건물터 등이 확인되어, 신라 주장성(晝長城)의 옛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시대 남한산성은 주봉인 해발 497.9m의 청량산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연주봉(467.6m), 동쪽으로는 망월봉(502m)과 벌봉(515m), 남쪽으로도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여 성벽을 쌓았다. 성벽의 바깥쪽은 경사가 급한데 비해 안쪽은 경사가 완만하여, 방어에 유리하면서도 적의 접근은 어려운 편이다. 성벽과 성 안에는 많은 시설물과 건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방어 시설과 관청, 군사훈련 시설 등이 남아 있다.

남한산성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게 인정되어 2014년 6월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신규 등재되었다.

역사적 사건

병자호란 남한산성.jpg

주요한 사건으로는 병자호란이 있다. 병자호란 중인 1636년 12월 15일부터 이듬해 1월 30일까지 남한산성에서 조선군이 청군의 공격을 막아내다 결국 실패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공방전 40여 일 동안 청군은 수차례 대규모 공격에도 불구하고 성을 돌파하는데는 실패했지만, 농성 중인 성 내부의 물자가 고갈될 때까지 포위를 풀지 않으면서 서서히 조선군을 조였다. 결국 조선군은 남한산성이 뚫려서가 아니라 식량이 다 떨어진 탓에, 그리고 강화도가 함락된 탓에 청군에 항복하고 말았다.

이에 대한 줄거리를 바탕으로 영화 남한산성(영화)이 만들어졌다.

주요 문화 유적

남한산성 행궁

남한산성 행궁.jpg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남한산성 주변에 있는 조선의 행궁(行宮)으로 사적 제480호로 지정되어 있다. 1624년(인조 2년) 조선 16대 임금 인조의 명으로 착공하여 2년 후인 1626년(인조 4년)에 완공하였다. 이후 멀쩡히 잘 전해지던 것을 일제가 행궁과 관아에 방화하여 불에 타 소실되어서 행궁지로 남아있다가 2011년 행궁구역의 대부분을 복원하였다.

병자호란 때 원래 강화도로 피난을 시도하려던 인조가 강화도 피난이 좌절되면서 결국 남한산성으로 옮겨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이곳을 임시 궁궐로 사용하였다.

수어장대

수어장대.jpg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이다. 남한산성에 구축된 5장대 중 하나이다. 5장대 중 동장대를 제외한 4장대는 17세기 말엽까지는 단층 누각 건물의 형태로 남아있었지만, 18세기 중엽에는 5장대 모두 붕괴되어 터만 남아있었다. 그 후 18세기 중후반에는 서장대남장대를 2층 누각형태로 건립하여 19세기 후반까지 남아있었지만, 현재는 서장대인 수어장대만이 남아있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의 서쪽 주봉인 청량산 정상에 세워져 있으며 지휘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세워진 누각이다. 성내에 현존하는 건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다. 왼쪽에는 청량당이 있으며, 뒤편에는 우물이 있어 장대에서 근무하는 장졸에게 물을 공급했다고 한다.

가는 길

대중교통 버스번호 및 역
버스 9번, 9-1번(주말), 15-1번, 52번, 333번, 2007번
지하철 8호선 남한산성입구역, 산성역

관련영상

작성자

김현수

참고문헌

  • 국가문화유산포탈[1]
  • 네이버 지식백과[2]
  • 나무위키 남한산성[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