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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이야기)
(역사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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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이야기===
 
===역사적 이야기===
 
*6.25 전쟁
 
*6.25 전쟁
  미아리 고개는 서울에서 북쪽으로 가는 길목의 첫 번째 큰 고개였고, 북쪽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문턱이 되는 고개였다. 따라서 한국전쟁 당시 서울의 최후 방어선이 되었고 그곳에서 인민군과 한국군의 교전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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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리 고개는 서울에서 북쪽으로 가는 길목의 첫 번째 큰 고개였고, 북쪽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문턱이 되는 고개였다. 따라서 한국전쟁 당시 서울의 최후 방어선이 되었고 그곳에서 북한군과 한국군의 교전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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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이 퇴각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포로를 데리고 갔는데, 수많은 지식인, 애국지사들이 줄줄이 묶여 이 고개를 넘어 북으로 끌려갔다.
  
 
===관련 책===
 
===관련 책===

2021년 6월 18일 (금) 13:04 판

개요

서울특별시의 성북구 동선동과 돈암동 사이에 위치한 고개로 한국전쟁과 연관이 깊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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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대입구역에서 가는 법

한성대입구역 1번 출구 -> 삼선교.한성대학교.조소앙활동터 정류장에서 109번 버스 승차 -> 미아리고개.미아리예술극장 하차 후 도보 3분

이름의 유래

미아리고개라 불리게 된 이유는 오래 전부터 이곳에 미아사라는 절이 있었으므로 미아동의 동명이 생겨났고, 이 고개가 미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였기 때문이다. 
혹은 일제 때 미아동에 공동묘지가 조성된 후 미아리고개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되놈이 넘어온 고개라고 하여 되넘이고개(돈암현)로 불리기도 하였고, 병자호란 때는 오랑캐가 이곳으로 넘어왔다고 해서 적유령이란 명칭이 사용되었다.

(병자호란 당시에는 여진족이 한성의 부녀자를 붙잡아 이곳을 통해 끌고 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소개

역사적 이야기

  • 6.25 전쟁
미아리 고개는 서울에서 북쪽으로 가는 길목의 첫 번째 큰 고개였고, 북쪽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문턱이 되는 고개였다. 따라서 한국전쟁 당시 서울의 최후 방어선이 되었고 그곳에서 북한군과 한국군의 교전이 벌어졌다. 
북한군이 퇴각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포로를 데리고 갔는데, 수많은 지식인, 애국지사들이 줄줄이 묶여 이 고개를 넘어 북으로 끌려갔다.

관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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