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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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연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6월 5일 (수) 20:0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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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1910~1986)

생애

대표 월북 문인 작가 박태원(朴泰遠)은 1910년 1월 7일(음력 1909년 12월 7일) 서울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경성제일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에 위치한 호세이(法致) 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박태원은 1930년 호세이 대학을 중퇴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그는 고모의 도움으로 현대소설의 아버지라 평가받는 ‘이광수’를 만나 문학 공부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서울로 돌아온 그는 그 해(1930)에 <신생> 10월호에 단편소설 『수염』으로 문단에 데뷔한다. 그러나 프로 문단의 지나친 정치성에 염증을 느낀 박태원은 시인 이상과 함께 1933년 구인회에 입적하여 그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매진하게 된다.

  • 구인회 : 1933년에 결성된 문학 친목단체. 경향주의문학에 반하여 순수예술을 추구하며 문학의 순수성과 자율성을 옹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인회의 일원으로는 유치진, 이태준, 정지용, 이상, 박태원, 김유정 등이 있었다.

이 시기 그의 작품들인 『천변풍경』, 『성탄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은 30년대적 모더니즘의 경지를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된다. 여기에는 아무런 목적 없이 경성 거리를 배회하는 당대 지식인의 무기력한 모습이 잘 그려지고 있다. 평론가 최재서는 이상(李箱)의 소설과 박태원의 이러한 소설들을 두고 우리 소설에 리얼리즘의 확대 심화를 가져온 작품이라 평가하고 있기도 하다.

박태원은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절친한 친구였던 이상이 ‘하융’이란 필명으로 그린 삽화와 함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발표하면서 당시 한국 문단에서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 작가로 떠오르게 된다. 이후 『천변풍경』, 『여인성장』과 『성탄제』 등을 발표하며 근대 시기 도시 서울의 풍속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소설화한 작가로 평가받게 된다. 작품 활동을 이어가면서도 박태원은 구인회 회원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나갔다. 특히 우리에게 『달밤』이라는 작품으로 친숙한 작가 이태준, 강한 실험정신과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는 열정을 가졌던 시인 이상과 각별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0년 박태원은 6·25 동란 중 ‘남조선문학가동맹 평양시찰단’의 일원으로 월북하게 되었다고 추측된다. 사실 박태원은 부유한 집안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였고 당시 명동의 거리를 활보하며 최고의 모던 보이로 소문났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월북 작가들과는 이질적인 측면이 많았고 그의 월북 사유에는 아직도 많은 의문이 존재한다. 실제로 박태원이 어떤 목적과 방식으로 월북을 하였는지 그 정황은 확실하지 않다. 다만 구인회 활동을 하며 절친했던 이용악, 이태준, 오장환 등을 따라 월북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당시 1950년 7월경 남한에서 박태원을 보았다는 소설가 조용만의 증언이 박태원에 대한 마지막 증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삶이 커다란 전환 맞이하게 된 것은 해방공간 속에서의 좌익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문학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은 1950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박태원은 서울에 부인과 2남 3녀를 남긴 채 혼자 월북을 택하게 되었다. 한국전쟁이 계속되고 있던 1951년 박태원의 아우 박문원과 당시 중학생이던 의붓딸 정태은도 그를 따라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태원은 월북 직후 인민군을 따라 종군작가로 나서서 전쟁터의 참혹함 속에서 이전의 자신 및 자신의 세계에 대해서 반성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반평생을 잘못 살았던 것이 아닐까” 하고 그는 자신에게 묻는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그는 1955년까지 ‘평양문학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중편들인 『조국의 품』, 『리순신장군』, 『조국의 기발』 등을 써내는 한편 시조 시인인 조운과 공동으로 『조선창극집』을 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시도는 초기 북한사회를 뒤흔든 하나의 중요한 사건에 의해 지연된다. 1956년 초에 일어난 남로당 계열에 대한 숙청작업의 문학적 표현인 ‘림화 리태준’에 대한 단죄는 박태원에게도 또한 커다란 그늘을 드리운다. 당시 북에서는 남로당 계열 숙청 이후 잔존파인 이태준을 제거하고자 했고, 이태준과 동인이었던 박태원 또한 결국 구인회 시절에 대한 자기비판을 하게 되었고, 월북한 것을 슬퍼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박태원은 결국 이 사건으로 남로당 계열로 몰려 문학적, 정치적 숙청을 당하고 4년 간 평남 강서지방의 한 협동농장으로 추방되어 강제노동을 하게 된다. 이 시기 그의 건강은 극도로 악화된다.

1960년에 다시금 작가로 복귀했을 때, 박태원은 이미 심한 영양실조와 함께 시력을 잃어 가고 있었다. 그가 앓았던 병은 시신경 위축에 색소성 망막염으로 불치의 병이었다. 이로써 그가 급기야 실명(失明)에 이르는 것은 1965년의 일이다. 그리고 박태원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어 1975년에는 전신불수의 처지가 되고 만다.

이처럼 극도로 어려운 시기 박태원은 병마와 싸우며 대하 역사 소설을 집필하였다. 병상에 누워 있어 직접 글을 쓸 수 없었던 박태원 대신 북한에서 재혼한 아내 권영희가 구술을 받아 적어 완성된 소설이 바로 북한 최고의 역사 소설로 손꼽히는 『갑오농민전쟁』이다. 그와 재혼한 아내 권영희는 박태원의 경성제일고보 동창이자 구인회 동료였던 정인택의 아내로, 정인택 사후 1956년 박태원과 재혼하였다. 또한 과거 권영희는 박태원의 절친한 친구로 유명했던 시인 이상의 연인이기도 했다. 『갑오농민전쟁』은 1977년 초부터 집필되기 시작하였으며, 1984년 말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갑오농민전쟁』의 3부작 중 마지막 3부는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해인 1987년에 출판된다.

박태원은 1986년 7월 10일 77살의 나이에 고혈압으로 사망하게 된다. 사망 시기가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은 다른 남로당 계열 문인들과 다르게 박태원의 경우 사망 후 <조선문학>에 부고 기사가 실렸기 때문에 그 시기를 확실히 알 수 있다. 그의 죽음 앞에 북조선 작가동맹중앙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추모의 말을 남기고 있다. “우리 인민들의 사랑을 받던 재능 있는 작가 박태원 동지가 서거한 데 대하여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시한다.” 이와 같은 생애를 살아온 박태원의 필명은 몽보(夢甫)·구보(丘甫)·구보(仇甫)·구보(九甫)·박태원(泊太苑)이다. 1926년 《조선문단(朝鮮文壇)》에 시 『누님』이 당선되었으나, 소설로서의 등단은 1930년 《신생(新生)》에 단편 『수염』을 발표하면서 이루어졌다. 1933년 구인회(九人會)에 가담한 이후 반계몽, 반계급주의 문학의 입장에 서서 세태풍속을 착실하게 묘사한 『소설가 구보(仇甫)씨의 1일』 『천변풍경(川邊風景)』 등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그의 소설에 있어 특기할 사항은, 문체와 표현기교에 있어서의 과감한 실험적 측면과, 또 시정 신변의 속물과 풍속세태를 파노라마식으로 묘사하는 소위 풍속소설의 측면이다. 이러한 특징은 그가 예술파 작가임을 말해주는 중요한 요건이다.

작품세계 (활동내역)

작가(예술가)의 작품 세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이곳에 기술합니다.


작가가 아닌 사람의 경우에는 주요한 업적을 중심으로 기술합니다.

작품 및 저서

  • 구보 박태원 작품집

1.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문장사, 1938.12. 7


2. 천변풍경, 박문서관, 1938. 3(1차) 1947. 5. 1(2차)


3. 지나 소설집, 합자회사 인문사, 1939. 4. 17


4. 여인 성장, 매일신보사, 1942


5. 군국의 어머니, 조광사, 1942


6. 아름 다운 봄, 영창서관, 1942


7. 중국 동화집, 정음사, 1946 1


8. 중등 문범, 정음사, 1946


9. 조선 독립순국열사전, 유문각, 1946


10. 약산과 의열단, 백양당, 1947.1


11. 홍길동전, 조선 금융조합연합회, 1947. 11


12. 성탄제, 을유문화사, 1948. 2. 10


13. 중국소설선 I. 정음사, 1948. 2. 11


14. 중국소설선 II, 정음사, 1948. 3. 20


15. 금은탑, 한성도서, 1948 |


16. 수호지, 정음사


17. 삼국지, 정음사


18. 리순신 장군전, 국립출판사, 1959


19. 조선창극집, 국립 출판사 1955


20. 리순신 장군이야기, 국립출판사, 1955 1


21. 정수동 일화집 1955. 국립 출판사


22. 야담집 1955. 국립출판사


23. 심청전, 문학예술 서적출판사, 1958 1


24. 삼국연의, 문학예술서적 출판사, 1959 1


25 만화 갑오농민전쟁 그림: 홍종원 1960. 2. 20, 국립미술출판사


26. 임진조국전쟁, 문학예술 서적출판사, 1960 1


27. 계명산천은 밝아오느냐, 1부 1권 문예출판사, 1965


28 계명산천은 밝아오느냐, 1부 2권 문예출판사, 1966


29. 갑오농민전쟁 제1부, 문예출판사, 1974


30. 갑오농민전쟁 제2부, 문예출판사, 1980


31. 갑오농민전쟁 제3부, 문예출판사, 1986

기타(수상내역 등)

위 항목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해당 인물을 설명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를 자유롭게 기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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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주어(S) 목적어(O) A는 B를 ~하다(P)

참고문헌

작성자 및 기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