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학당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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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12월 6일 (일) 18:4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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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배재학당동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약식 학교건물로서 배재학당의 교사이다.1916년에 건립된 이 건물은 옛 배재학당의 교실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처음 지어질 때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으며, 앞쪽의 현관과 양옆 출입구의 돌구조 현관이 잘 보존되어 있다. 또한 매우 우수한 건물의 구조와 모습, 건물에 사용된 벽돌 구조를 자랑한다. 이 건물은 건물의 형태도 매우 우수하여 한국근대건축의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

배재학당 앞쪽 현관

배재학당앞모습.jpg


배재학당 옆 출입구

석굴암상단.jpg

위치

37.56377550181483, 126.97233465790667

배재학당

배재학당의 등장

배재학당은 1885년 미국인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세운 최초의 서양식 근대교육기관이다. 아펜젤러는 의사 윌리엄 스크랜튼(Scranton,W.B)[4]의 집 1채를 산 다음 방 2칸 벽을 헐어 작은 교실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겸라, 고영필이라는 두 명의 학생을 얻어 수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영어를 가르친다는 뜻에서 ‘영어학교’로 불리다가, 1886년 '인재를 기르는 집'이라는 의미의 '배재영재'에서 '배재'를 따 고종황제가 직접 '배재학당'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였다.

배재학당동관의 설립과 사용

배재학당동관은 배재학당이 1916년 조선총독부에 고등보통학교 설립인가를 받을 무렵에 만들어졌다. 연면적 1,194.59㎡에 지하실이 있는 3층 벽돌 건물이며, 6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였다. 배제고등학교는 서울시 강동구 고덕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이 건물을 학교 건물로 사용하였다. 배제학당동관은 2001년 서울시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되었으며, 2008년에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하였다.

교육 내용

<배재사>의 내용으로 볼 때, 학제로는 문과(文科), 신과(神科), 상과(商科), 수물과(數物科), 응용화학과(應用化學科), 농과(農科)의 여섯 과로 되었는데 교직원은 18명이고 학생을 89명이었다.

졸업생

이승만

찾아오는 길

참고 자료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