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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background:#3ca9a9; color:#ffffff; font-size:130%; text-align:center;" | '''김광균 문학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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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text-align:center;" | [[파일:조지훈 전집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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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width:80px; text-align:center;" |'''저자''' || 김광균(1914~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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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출판사''' ||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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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출판년도''' ||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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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쪽수''' || 7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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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ISBN''' || 9788956269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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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개 및 해설'''==
 
=='''시 소개 및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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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6일 (수) 13:48 판


시 소개 및 해설

성북마을발견x문학에서 시를 읽을 수 있습니다.

화자는 도시가 사막과 같은 곳이라 표현한다. 해가 지고 도시는 꽃밭이 되어 택시와 사람들은 고기떼처럼 흘러나오지만 어두운 밤 북악산엔 방향등 하나가 허상의 거리를 비출뿐 이다. 화자는 등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 우리 모두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정지된 시간 속으로 가기 위해 괴로운 일력을 한 장씩 떼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한다. 여기서 발췌한 2연에서는 김광균이 자신의 집에서 본 북악산의 밤 풍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시인 소개

이름:김광균(金光均), 호는 우사(雨社) 또는 우두(雨杜)

1914년 (당시)경기도 개성 출생으로 시인이자 기업가이다. 1926년 『중외일보』에 「가신누님」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30년대 『시인부락』과 『자오선』의 동인으로 활동을 하였으며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설야」가 당선되면서 문단에서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였다. 모더니즘 시인으로 활발히 활동하다가 6.25전쟁 이후 집안 사정으로 건설 사업을 운영하였다. 그는 1980년대 초부터 다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시집 『추풍귀우』(1986), 『임진화』(1989)는 성북동에 거주했던 시기에 간행한 것으로 여기에 수록된 작품 중 일부에는 성북동과 그의 집이 묘사되어 있다.

시와 관련된 이야기

도시를 사막에 비유하여 도시의 풍경을 회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김광균의 시에서 고향은 그의 유년시절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그리움의 공간인 반면, 도시는 삭막함, 우울함, 비애, 고독 등의 정서가 내재된 공간이다. 이 시에서도 화자는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도시는 사막과 같이 메마르고 황량한 곳으로 묘사되며 그리운 그 곳을 상기시키는 공간, 고달픈 인생을 지속하는 공간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시의 평가

도시의 상실적 정서를 애상적으로 그려낸 모더니즘 시인이다. 그의 시는 도시적 정서의 모더니즘 시 중에서도, 언어의 회화적 시각적 효과를 중시했던 이미지즘의 시로 평가된다. 아스팔트와 고층빌딩 등 물질문명을 함축한 도시에 대해 '존재의 소멸'을 예감했던 그는 애상이라는 농도 짙은 서정을 통해 생명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주었다.

김기림이 모더니즘의 이론을 도입했다면 그는 이것을 작품으로 구현했다. 젊은 시절의 회화적 색채의 시어가 노년에는 바람 부는 모래밭 같이 황량한 풍경으로 대치되기는 했지만 도시적 감각이 배어있는 시각적 이미지는 그가 평생 간직한 시적 본령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