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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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경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12월 9일 (일) 22:1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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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조선 제9대 왕 출생-사망 1457년 ~ 1494년

재위기간 1469년 ~ 1494년

가족관계 왕비 공혜왕후(恭惠王后), 정현왕후(貞顯王后), 아버지 덕종(德宗), 어머니 소혜왕후(昭惠王后)

출생

성종의 이름은 혈(娎)이며, 1457년(세조 3년) 세조의 큰 아들이었던 덕종(조선)(德宗)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뒷날 인수대비(仁粹大妃)가 된 한씨로, 좌의정을 역임하였던 한확(韓確)의 딸이었다. 성종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아버지인 의경세자가 사망하였는데, 세자는 성종을 매우 총애하여 궁중에서 성종을 양육하였다. 성종은 다섯 살이 되던 1461년(세조 7년) 자산군(者山君)에 봉해졌다. 1468년(예종 즉위년)에는 세 살 위인 형 월산군(月山君)과 더불어 종친 직품 중 최고등급인 정1품 현록대부(顯祿大夫)에 올랐다.

생애

성종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국정을 운영하는 것에도 성종의 이러한 성향이 잘 드러났다. 성종은 하루 세 번 경연을 열어 관원들과 학문을 토론하였다. 본래 하루 세 번 경연은 세종대 실시된 바 있었다. 그러나 이후 세조대에는 세조 스스로가 학문을 좋아하지 않아 경연 자체가 자주 열리지 못하였다. 성종은 왕위에 오른 직후부터 꾸준히 경연에 참석하였고, 조강, 주강, 석강의 하루 세 번 경연을 정례화하였다. 특히 성종대 경연의 특징은 국정 현안의 문제들을 경연의 자리에서 논의하였다는 것이다. 주로 경연에서 교재를 읽고 토론하는 것을 마친 후에, 혹은 당시 현안과 관련되는 내용이 경연 내용으로 제시될 때 당시 참여한 경연관들에게 의견을 묻고 경청하였던 것이다. 경연에는 연로한 대신 뿐 아니라 나이가 어린 문신들이 많이 참여하였기 때문에 경연에서의 현안 논의는 대신이 아닌 신진관원들의 의견을 국왕이 직접 들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었다. 이러한 경연에서의 국정논의는 성종대 경연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성종의 문치주의(文治主義)를 잘 보여주는 예시였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9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