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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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경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12월 16일 (일) 01:41 판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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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조선 제9대 왕

출생-사망 1457년 ~ 1494년

재위기간 1469년 ~ 1494년

가족관계 왕비 공혜왕후(恭惠王后), 정현왕후(貞顯王后), 아버지 덕종(德宗), 어머니 소혜왕후(昭惠王后)

출생

성종의 이름은 혈(娎)이며, 1457년(세조 3년) 세조의 큰 아들이었던 덕종(조선)(德宗)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뒷날 인수대비(仁粹大妃)가 된 한씨로, 좌의정을 역임하였던 한확(韓確)의 딸이었다. 성종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아버지인 의경세자가 사망하였는데, 세자는 성종을 매우 총애하여 궁중에서 성종을 양육하였다. 성종은 다섯 살이 되던 1461년(세조 7년) 자산군(者山君)에 봉해졌다. 1468년(예종 즉위년)에는 세 살 위인 형 월산군(月山君)과 더불어 종친 직품 중 최고등급인 정1품 현록대부(顯祿大夫)에 올랐다.

별명

그에게는‘주요순(晝堯舜) 야걸주(夜桀紂)’란 별명이 붙었다. 낮엔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였던 요순 임금처럼 정사를 돌봤고, 밤엔 중국 하나라의 걸 임금과 은나라의 주 임금처럼 주색잡기에 능한 임금이라는 뜻이다.[2] 별칭에 걸맞게 ‘경국대전’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편찬 등 큰 업적을 남긴 반면, 거의 매일 밤 곡연(曲宴·임금이 궁중 금원(禁苑)에서 가까운 사람들만 불러 베풀던 소연)을 베풀며 기생들과 어울렸고 많은 후궁을 거느렸다. 25년의 재위기간에 총 3명의 왕후와 9명의 후궁을 거느리며 그들에게서 16남 12녀를 얻었다. 자식이 너무 많아 궁궐에서 다 기를 수 없게 되자 궐 밖 여염집에 살게 할 정도였다.

생애

갑작스러운 즉위

1469년에 예종이 죽고 그 아들이 아직 어리자, 정희대비(貞熹大妃)주 02)가 한명회·신숙주(申叔舟) 등 대신들과 의논해 형 월산군(月山君)의 몸이 허약하다는 이유로 성종을 왕위에 올렸다.

즉위 할 무렵 나이는 13세에 불과하였다. 때문에 그 뒤 7년간 정희대비가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했고, 1476년(성종 7)에 비로소 친정을 하였다.

즉위하던 해 명나라 헌제(憲帝)의 고명(誥命)을 받았고, 세조 찬위의 전철을 우려하여 이시애(李施愛)의 난 평정 이후 병조판서와 영의정을 역임하고 명성이 내외에 자자한 구성군(龜城君) 이준(李浚)을 유배시켰다.

학문

성종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국정을 운영하는 것에도 성종의 이러한 성향이 잘 드러났다.

성종은 하루 세 번 경연을 열어 관원들과 학문을 토론하였다. 본래 하루 세 번 경연은 세종대 실시된 바 있었다. 그러나 이후 세조대에는 세조 스스로가 학문을 좋아하지 않아 경연 자체가 자주 열리지 못하였다. 성종은 왕위에 오른 직후부터 꾸준히 경연에 참석하였고, 조강, 주강, 석강의 하루 세 번 경연을 정례화하였다.

특히 성종대 경연의 특징은 국정 현안의 문제들을 경연의 자리에서 논의하였다는 것이다. 주로 경연에서 교재를 읽고 토론하는 것을 마친 후에, 혹은 당시 현안과 관련되는 내용이 경연 내용으로 제시될 때 당시 참여한 경연관들에게 의견을 묻고 경청하였던 것이다.

경연에는 연로한 대신 뿐 아니라 나이가 어린 문신들이 많이 참여하였기 때문에 경연에서의 현안 논의는 대신이 아닌 신진관원들의 의견을 국왕이 직접 들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었다. 이러한 경연에서의 국정논의는 성종대 경연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성종의 문치주의(文治主義)를 잘 보여주는 예시였다.

활동

경국대전

세조대부터 추진해 오던 경국대전(經國大典)이 성종대 초중반 완성되면서, 경국대전에 의거한 국정 운영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경국대전은 세조대부터 편찬에 착수하기 시작하여 몇 차례 완성된 바 있으나, 그때마다 문제점이 제기되어 다시 개정작업에 들어갔다. 1491년(성종 12년) 성종은 당시의 경국대』인 갑오대전을 다시 재검토하도록 명령하고, 이후 교정된 결과는 고치지 말고 준수하도록 지시하였다. 이 작업을 거쳐 1485년(성종 16년) 부터는 새로 교정된 경국대전을 반포하였는데, 이것이 현존하는 경국대전, 즉 을사대전이었다. 그리하여 경국대전은 영세 불변의 지위를 누리는 통치의 법전 지위를 가지게 되었고, 이후 조선의 법전편찬은 경국대전을 모체로 하여 개정 당시 법안을 원래 경국대전의 조문 아래에 부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경국대전












유교

성종은 이전의 국왕들과 달리 불교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대표적인 것이 승려가 될 수 있는 자격증인 도첩 발급을 혁파한 것이었다.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일정한 금액을 나라에 내면 이에 대해 승려가 될 수 있는 자격증, 즉 도첩을 내려주는 것이 당시의 제도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나라에 토목공사 등이 있을 경우 무허가 승려들을 모아 공사를 진행한 후에 대가로 도첩을 발행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대해 유교적 지식인들 대부분이 비판적인 입장이었지만, 대비를 비롯한 왕실은 불교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도첩제도는 쉽사리 폐지되지 않았다. 그러나 성종은 도첩제도의 중지를 결정하였고, 이에 따라 조선에서는 합법적 방식으로 승려가 될 수 있는 길이 차단되었다.

이에 대해 인수대비가 재고해 줄 것을 청하기도 하였으나, 결국 폐지하는 것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도첩제 폐지는 성종에 대한 후대의 평가에서 성종을 유교에 충실한 군주로 칭하게 되는 중요한 근거가 되는 일이었다

사후

평가

사망 이후 조정의 중신들은 성종의 묘호를 두고 논란을 벌였는데, 논의의 핵심은 성종의 묘호를 성종으로 하느냐, 인종으로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유교국가에서 ‘인’ 이란 것은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여졌고 묘호 역시 인종은 가장 높은 등급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인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종의 인품과 업적이 인종이란 묘호와 부합한다고 보았다. 성종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성종이 기존 역대 선왕들의 업적을 집대성한 왕이며, 인종이란 묘호는 중국 송나라의 황제였던 인종이 있으므로 함부러 쓸 수 없는 묘호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묘호는 인수대비가 성종으로 결정하였다.


계승

세 왕비와 여덟 후궁에게서 아들 19인과 딸 11인을 낳았다.

제10대 왕 연산군은 폐비 윤씨의 아들이며 제11대 중종이 된 진성대군(晉城大君) 이역(李懌)은 정현왕후 윤씨의 아들이다.

시호는 강정인문헌무흠성공효대왕(康靖仁文憲武欽聖恭孝大王)이고, 묘효는 성종(成宗)이다. 능호는 선릉(宣陵)으로 광주(廣州)에 있었는데,

현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과 함께 있다.


서울 선릉과 정릉 선릉













등장 작품

TV속의 작품

《사모곡》 (TBC, 1972년 배우:이묵원)

《설중매》 (MBC, 1984년~1985년 배우:길용우)

《한명회》 (KBS, 1994년 배우:박진성, 아역:최강원, 고동현)

《장녹수》 (KBS, 1995년 배우:현석)

《왕과 비》 (KBS, 1998년~2000년 배우:이진우, 아역:김민우)

《왕과 나》 (SBS, 2007년~2008년 배우:고주원, 아역:유승호)

《인수대비》 (JTBC, 2012년~2013년 배우:백성현, 아역:최원홍, 이태우)

《역적》 (MBC, 2017년 배우:최무성)

《7일의 왕비》 (KBS, 2017년 배우:김정학)


영화

윤순홍 - 1985년 《어우동》 영화

윤양하 - 1988년 《연산일기》 영화

유장영 - 2015년 《어우동》 영화

참고문헌

한국민족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9554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84%B1%EC%A2%85#평가와_비판

구글 대전속록 https://www.google.com/search?q=%EB%8C%80%EC%A0%84%EC%86%8D%EB%A1%9D&source=lnms&tbm=isch&sa=X&ved=0ahUKEwiwqIfxn6LfAhUCfLwKHbQMDhQQ_AUIDygC&biw=1518&bih=698#imgrc=Ff-5Jp4Fw6XweM:&spf=1544891123375

[네이버 지식백과] 성종 [成宗] - 조선 정치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국왕 (인물한국사)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3141&cid=59015&categoryId=59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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