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장"의 두 판 사이의 차이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심우장의 모습)
(심우장의 모습)
15번째 줄: 15번째 줄:
  
 
'''심우장 외부'''
 
'''심우장 외부'''
[[파일:심우장 밖.jpg]]
+
 
 +
[[파일:심우장 밖.jpg|섬네일]]
 +
 
 +
[[파일:File.png|200픽셀|섬네일|왼쪽|설명]]
  
 
==위치==
 
==위치==

2021년 6월 4일 (금) 03:42 판

심우장

심우장 소개

심우장의 이름의 뜻: 선종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 중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라는 심우에서 유래되었다.

                   *소는 불교에서 마음을 상징한다.

심우장은 1933년, 벽산스님과 조선일보의 사장인 방음모 등에 의해 세워졌다.

1985년 7월 5일에 서울특별시기념물 제 7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2019년 4월 8일, 사적 제 550호로 승격되었다. 심우장은 북향집으로 지어졌는데 그 이유는 만해 한용운이 독립운동가였기 때문에 남향으로 집을 지을 경우 조선총독부를 바라보게 되서 일제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북향집으로 지었다고 한다. 북향이라는 특성 때문에 남향을 바라보는 한옥과는 달리 햇볕이 들지도 않았던 음친한 곳이고 여름에는 습하고 덥고 겨울에는 매우 춥기 때문에 살기에 매우 나쁘다는 평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집에서도 한용운은 죽을 때까지 이 집을 고집하며 일제와 싸우겠다고 다짐하였다. 겨울철엔 혹한, 여름철엔 혹서에 시달리면서도 한용운은 이곳에서 태연하게 지냈다. 1944년에 한용운이 결국 이 곳에서 운명하면서 백범 김구와 경교장과 함께 영원한 위인의 안식처로 남게 되었다.

심우장의 역사

심우장의 모습

심우장 외부

심우장 밖.jpg

위치

참고 문헌

작성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