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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 특징==
 
==우익 특징==
우익 정치사상은 국가주의나 민족주의, 가부장주의의 특징을 지니며, 현대에서는 반공주의와 개발주의, 시장주의의 경향을 강하게 나타낸다. 20세기 초반에 나타난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는 1917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회주의혁명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난 대표적인 우익 정치운동이었다. 전후에도 프랑스의 '드골주의', 이탈리아의 네오파시즘운동, 독일의 네오나치당운동 등으로 우익 정치운동의 영향은 지속되고 있으며, 인종주의와 국수주의의 성향을 띤 스킨헤드 등의 극우 정치세력의 폭력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기도 하다. 냉전 체제의 해체를 전후로 해서는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가 우익을 대표하는 정치사상으로 등장했는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세계에 확산한다는 명분 아래 힘의 논리를 중시하고 자유무역과 경쟁의 원리를 강조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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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 정치사상은 국가주의나 민족주의, 가부장주의의 특징을 지니며, 현대에서는 반공주의와 개발주의, 시장주의의 경향을 강하게 나타낸다. 20세기 초반에 나타난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는 1917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회주의혁명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난 대표적인 우익 정치운동이었다. 전후에도 프랑스의 '드골주의', 이탈리아의 네오파시즘운동, 독일의 네오나치당운동 등으로 우익 정치운동의 영향은 지속되고 있으며, 인종주의와 국수주의의 성향을 띤 스킨헤드 등의 극우 정치세력의 폭력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기도 하다. 냉전 체제의 해체를 전후로 해서는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가 우익을 대표하는 정치사상으로 등장했는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세계에 확산한다는 명분 아래 힘의 논리를 중시하고 자유무역과 경쟁의 원리를 강조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한국 사회에서도 역사적·사회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각 정치세력의 사상적 기준과 이해 관계에 따라 ‘우익(우파)’의 개념은 다른 의미로 쓰여왔다. 초기에는 민족주의가 우익 정치사상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나타났지만, 해방 이후에는 반공주의와 개발주의 이데올로기가 더욱 지배적인 경향으로 자리를 잡았다. 군사정권 시대에는 대립된 모든 정치사상과 세력, 집단운동을 좌익으로 분류하며 탄압했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독립된 우익 정치운동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민족주의조차 국가 기관의 영향에서 벗어나면 좌익으로 내몰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정치사상의 분화가 뚜렷해지면서 우익 사회운동과 시민운동이 출현하기 시작하였고, 2000년대에는 전통적인 우익과 구분된다는 의미에서 ‘뉴라이트(New Right)’라고 부르는 운동과 세력이 나타났다.
 
 
한국 사회에서도 역사적·사회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각 정치세력의 사상적 기준과 이해 관계에 따라 ‘우익(우파)’의 개념은 다른 의미로 쓰여왔다. 초기에는 민족주의가 우익 정치사상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나타났지만, 해방 이후에는 반공주의와 개발주의 이데올로기가 더욱 지배적인 경향으로 자리를 잡았다. 군사정권 시대에는 대립된 모든 정치사상과 세력, 집단운동을 좌익으로 분류하며 탄압했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독립된 우익 정치운동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민족주의조차 국가 기관의 영향에서 벗어나면 좌익으로 내몰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정치사상의 분화가 뚜렷해지면서 우익 사회운동과 시민운동이 출현하기 시작하였고, 2000년대에는 전통적인 우익과 구분된다는 의미에서 ‘뉴라이트(New Right)’라고 부르는 운동과 세력이 나타났다.
 
 
 
[네이버 지식백과] 우익 [right, 右翼] (두산백과)
 

2018년 6월 18일 (월) 19:51 판

우익

유래

프랑스 혁명(1789년∼1799년) 당시 국민공회에서 입헌군주제를 주장한 지롱드당이 의장석의 오른쪽 자리에, 중간 성향의 마레당이 가운데, 급진 개혁을 주장하는 몽테뉴당이 왼쪽에 앉은 것에서 우익, 중도, 좌익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일반적 의미의 우익

경제적으로는 자유로움을 옹호하며 혁신보다는 안정을, 평등과 분배와 같은 생산성이 떨어지는 정책보다는 개개인을 경제 성장의 수단 또는 도구로 보는 동시에 개개인들의 경쟁을 사회 발전의 수단화로 보며, 개개인의 자치능력을 향상시켜 곧 국가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에 중점을 둔다. 경쟁 중점과 개발성장주의 측면은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 일본의 군국주의 등의 극단적인 사상 조류로 흐르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을 통해 이러한 극우는 붕괴되었으나, 인종주의, 국수주의 등의 성향을 띤 스킨헤드와 네오나치즘을 신봉하는 네오나치 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대부분의 우익은 민족주의적이지만, 좌파 민족주의 운동이 태동하거나 제국주의 세력에게 식민지를 겪고 그들이 기득권이 된 국가의 경우는 오히려 상대적인 좌파에 비해 민족주의적이지 못하다. 2차 대전 후, 1970년대 이후부터 유럽, 오세아니아, 북미, 남미 등의 국가에서 중도(자유주의)와 분배를 중요시하는 좌파적 정치세력이 유행하여 확산되었다. 1980년대 이후엔 정치성향이 중도우파, 중도좌파라는 좌익, 중도, 우익의 정치적 성향이 일부 혼합되는 형태가 나타나 21세기까지 이르고 있다.

대한민국에서의 우익

기타 비정치계 인물 중 우익으로 지목되는 대표적 인물로는 주로 반공주의 성향의 언론인인 선우휘, 송복, 이도형, 김형진, 논객이자 각종 단체에서 활약하는 서정갑, 홍관희, 이상돈, 전원책, 박창암 등이 있다. 그 밖에 독립운동 연구가 신용하, 고구려 연구가 서덕수, 서길수 등도 우익 지식인으로 분류된다. 광복이후에는 단순히 반공주의 진영 전체를 의미하기도 하였다.

우익 사상

우파적 집단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 초국가주의, 통제주의, 민족주의, 자유민족주의, 드골주의, 종족적 민족주의, 민족통일주의.

정치적 보수주의

보수자유주의, 민족보수주의, 녹색보수주의, 사회보수주의, 신보수주의, 신우익 사상, 자유보수주의, 반공주의

경제적 보수주의

자유지상주의, 신자유주의, 아나코자본주의,자 유보수주의, 보수자유주의

종교주의

기독교 근본주의, 기독교 보수주의, 기독교 우파, 이슬람 민주주의, 이슬람 원리주의, 와하브파, 살라프파

고보수주의

반동주의


우익 특징

우익 정치사상은 국가주의나 민족주의, 가부장주의의 특징을 지니며, 현대에서는 반공주의와 개발주의, 시장주의의 경향을 강하게 나타낸다. 20세기 초반에 나타난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는 1917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회주의혁명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난 대표적인 우익 정치운동이었다. 전후에도 프랑스의 '드골주의', 이탈리아의 네오파시즘운동, 독일의 네오나치당운동 등으로 우익 정치운동의 영향은 지속되고 있으며, 인종주의와 국수주의의 성향을 띤 스킨헤드 등의 극우 정치세력의 폭력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기도 하다. 냉전 체제의 해체를 전후로 해서는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가 우익을 대표하는 정치사상으로 등장했는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세계에 확산한다는 명분 아래 힘의 논리를 중시하고 자유무역과 경쟁의 원리를 강조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한국 사회에서도 역사적·사회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각 정치세력의 사상적 기준과 이해 관계에 따라 ‘우익(우파)’의 개념은 다른 의미로 쓰여왔다. 초기에는 민족주의가 우익 정치사상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나타났지만, 해방 이후에는 반공주의와 개발주의 이데올로기가 더욱 지배적인 경향으로 자리를 잡았다. 군사정권 시대에는 대립된 모든 정치사상과 세력, 집단운동을 좌익으로 분류하며 탄압했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독립된 우익 정치운동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민족주의조차 국가 기관의 영향에서 벗어나면 좌익으로 내몰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정치사상의 분화가 뚜렷해지면서 우익 사회운동과 시민운동이 출현하기 시작하였고, 2000년대에는 전통적인 우익과 구분된다는 의미에서 ‘뉴라이트(New Right)’라고 부르는 운동과 세력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