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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
 
====유래====
 
프랑스 혁명(1789년∼1799년) 당시 국민공회에서 입헌군주제를 주장한 지롱드당이 의장석의 오른쪽 자리에, 중간 성향의 마레당이 가운데, 급진 개혁을 주장하는 몽테뉴당이 왼쪽에 앉은 것에서 우익, 중도, 좌익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일반적 의미의 우익====
 
경제적으로는 자유로움을 옹호하며 혁신보다는 안정을, 평등과 분배와 같은 생산성이 떨어지는 정책보다는 개개인을 경제 성장의 수단 또는 도구로 보는 동시에 개개인들의 경쟁을 사회 발전의 수단화로 보며, 개개인의 자치능력을 향상시켜 곧 국가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에 중점을 둔다. 경쟁 중점과 개발성장주의 측면은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 일본의 군국주의 등의 극단적인 사상 조류로 흐르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을 통해 이러한 극우는 붕괴되었으나, 인종주의, 국수주의 등의 성향을 띤 스킨헤드와 네오나치즘을 신봉하는 네오나치 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대부분의 우익은 민족주의적이지만, 좌파 민족주의 운동이 태동하거나 제국주의 세력에게 식민지를 겪고 그들이 기득권이 된 국가의 경우는 오히려 상대적인 좌파에 비해 민족주의적이지 못하다. 2차 대전 후, 1970년대 이후부터 유럽, 오세아니아, 북미, 남미 등의 국가에서 중도(자유주의)와 분배를 중요시하는 좌파적 정치세력이 유행하여 확산되었다. 1980년대 이후엔 정치성향이 중도우파, 중도좌파라는 좌익, 중도, 우익의 정치적 성향이 일부 혼합되는 형태가 나타나 21세기까지 이르고 있다.
 
 
====대한민국에서의 우익====
 
기타 비정치계 인물 중 우익으로 지목되는 대표적 인물로는 주로 반공주의 성향의 언론인인 선우휘, 송복, 이도형, 김형진, 논객이자 각종 단체에서 활약하는 서정갑, 홍관희, 이상돈, 전원책, 박창암 등이 있다. 그 밖에 독립운동 연구가 신용하, 고구려 연구가 서덕수, 서길수 등도 우익 지식인으로 분류된다. 광복이후에는 단순히 반공주의 진영 전체를 의미하기도 하였다.
 

2018년 6월 24일 (일) 15:46 기준 최신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