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
조정은(2011202)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12월 13일 (일) 19:48 판 (건축)
이동: 둘러보기, 검색

개요

1977년 11월 22일 사적 제257호로 지정되었다.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인 고종(高宗:재위 1863∼1907)이 출생하여 12세에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성장한 잠저(潛邸)이다. 한옥은 제일 앞 남쪽에 대원군의 사랑채인 노안당이 자리잡고, 뒤쪽인 북쪽으로 행랑채가 동서로 길게 뻗어있으며 북쪽에 안채인 노락당이 자리잡고 있다.

역사

운현(雲峴), 구름재라는 이름이 아름다운 운현궁(雲峴宮)은 흥선대원군의 사저(私邸)로 그의 아들 고종이 출생하여 12세까지 성장한 곳이다. 운현이란 조선시대 서운관(瑞雲觀, 후에 관상감으로 개칭) 앞의 고개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저택이 위치한 지명에서 비롯된 것이며, 고종이 즉위하면서 임금의 잠저라는 이유로‘궁’의 명칭을 받게 되어 운현궁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때부터 운현궁은 확장, 증축되기 시작하여 고종이 즉위한 이듬해(1864)에 노락당(老樂堂)과 노안당(老安堂)이 준공되었고, 1870년에 이로당(二老堂)이 완공되었다. 이 무렵에는 아재당(我在堂)과 할아버지 은신군(恩信君)과 아버지 남연군(南延君)을 모시는 사당을 포괄하며 건물을 두르는 담장 둘레가 몇 리에 이르는 규모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창덕궁과 운현궁의 편리한 왕래를 위해 임금 전용의 경근문(敬謹門)과 흥선대원군 전용의 공근문(恭勤門)이 세워지기도 했다.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거점이었으며, 조선 말기 이 땅에 들어온 외국 세력에게는 조선 정치의 상징적 공간으로 인식되어 많은 사건의 중심에 놓였던 곳이다. 현재는 노락당과 노안당, 이로당과 양관(洋館)이 남아 있는데, 건물의 규모나 짜임새, 사용된 목재에서 작은 창틀 하나에 이르기까지 소홀함이 없어 한 시대 세도가의 권세와 살림집 한옥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건축

관람안내

찾아가는 길

작성자 및 기여자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