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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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12월 10일 (월) 09:52 판 (지도 및 찾아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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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명

개요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성문. 조선왕조가 건국되고 5년 뒤인 1397년 태조5년에 도성을 에워싸는 성곽을 축조하면서 함께 세워졌으며, 소문 가운데 동문과 북문 사이에 위치하였으므로 '동소문(東小門)'이라고도 한다. 왕래가 적고 풍수지리상 항상 닫아둔 숙정문을 대신하여 실질적인 북문 역할을 했다.

역사

혜화문은 태조 5년(1396) 도성을 쌓을 때 축조된 동소문이다. 도성의 동북쪽에 위치하여 함경도ㆍ강원도 등 북방과 직결되는 관문 구실을 하였으니, 실질적으로는 숙청문(숙정문)을 대신하여 북대문의 구실도 겸하였다.

그런데 성종 24년(1493) 상왕궁이었던 수강궁을 대비들을 위한 창경궁으로 수축하여 동궐의 경내로 삼으면서 그 정문을 '홍화문' 이라고 하였다. 동소문의 원래 이름을 궁궐의 정문이름으로 사용하였으니, 홍화문의 의미 역시 조선왕조 5대 궁궐의 정문에 '화(化)' 자를 넣어 왕도정치에 따른 임금의 성덕이 궁궐 밖에 사는 백성들을 교화하여 아름다운 풍속을 유지하게 인도하고자 함을 엿볼 수 있다. 거기에 '클 홍(弘)' , '크게 할 홍' 자와 어우러져 큰 교화를 기대하고, 만인을 크게 교화시켜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기원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혜화문 정문.jpg

이에 창경궁의 궁성 정문 이름과 서울성곽 동소문의 이름이 중복되어 혼동을 가져왔다. 따라서 중종 때 이 동소문의 이름을 홍화문에서 '혜화문' 으로 개칭하였다. 또한 개칭된 '혜화' 의 이름 또한 임금으로 상징되는 성덕에 의한 정치행위가 큰 은혜로움이 되어 도성 밖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만인을 교화하고자 하였던 뜻은 지닌 것으로, 본래의 이름이었던 '홍화' 와 의미상으로 거의 같다.

한편 영조 15년(1739)에는 혜화문의 문지도리와 문짝이 부러지고 상하여 밤에 문을 닫지 못하므로 어영청(御營廳) 군인 10여명으로 지키도록 하였고, 영조 20년(1744)에는 예전에 문루가 없던 것을 어영청에 명하여 세우게 하고 편액을 걸었으며, 속칭 동소문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임진왜란 때 문루가 파괴된 것을 이때에 와서야 중건하였기 때문에, 예전에는 문루가 없었다고 표현된 것이다.

혜화문 안.jpg

영조 때에 중건된 혜화문은 일제 때에 철거되었다. 일제는 1913년 <시가지건축취체규칙>을 공포하고 도성 내에 성곽을 철거하여 신작로를 만들고 각종 공공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1911년부터 1917년 4월까지 기간에 도로 확장과 개설 계획에 따라, 혜화문은 1916년경에 철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928년에 문루가 철거되고 1939년에는 성문마저 철거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현재의 혜화문은 원위치인 동소문로 가운데에서 서북쪽으로 약 30m 정도 옮겨 1992년 12월 29일에 이전∙복원공사를 시작하여 1994년 10월 15일에 완공되었다.

건축양식

혜화문은 다음과 같은 건축 양식을 가지고 있다.

홍예문:문 위부분을 반원 모양으로 둥글게 만든 문

육축:성곽에서 주된 방어 및 통로 영할을 하는 문루

문루:아래에는 출입하는 문을 두고 위에는 누를 지어 사방을 살피게 하는 건물

육측을 두고 하부를 큰 장대석으로 받치고 그 위로 무사석을 쌓아 올렸다.

위쪽 좌우 2개의 누조를 돌출시겼고 그 상부에는 낮은 담을 쌓아 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관련 이야기

  • 봉황 그림

일반적으로 홍예 안쪽 천장에는 용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야 하나, 혜화문에는 봉황이 그려져 있다. 그 이유는 성문 밖 지역에서 참새 등이 많아 농사에 피해가 컸기 때문에 그 피해를 막기 위하여 새들의 왕이라는 봉황을 그려넣었다. 이를 통해 선조들의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다.

  • 임꺽정

소설 '임꺽정'에서는 임꺽정의 스승격인 갖바치가 혜화문 인근에 산다는 설정으로 나온다.갖바치는 천한 신분임에도 정암 조광조와 허물없이 어울리던 인물로 묘사된다.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죽임을 당한 이후 임돌이의 딸이 갖바치의 아들과 혼인하게 되자, 누이를 따라 상경한 장사 소년 임꺽정은 한 동네에 사는 이봉학, 박유복과 함께 갖바치에게서 글을 배우면서 이들과 의형제를 맺는다. 그러던 중 이봉학은 활쏘기에 비상한 재능을 발휘하게 되고, 박유복은 창던지기의 명수가 되며 임꺽정은 검술을 배워 뛰어난 검객이 된다.

지도 및 찾아오는 길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307 (혜화동, 혜화문) 03076
해당 담당관청 전화번호 02-73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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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명소 및 인물

대표적인 관광 명소

  1. 북촌한옥마을
  2. 쇳대박물관
  3. 한국가구박물관
  북촌한옥마을 사진.jpg           

1. 북촌한옥마을 : 경복궁과 창덕궁, 금원(비원) 사이 북악산 기슭에 있는 한옥 보존지구로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뜻으로 북촌이라고도 한다. 북촌은 고관대작들과 왕족, 사대부들이 모여서 거주해온 고급 살림집터로 한옥은 모두 조선시대의 기와집이다.
원래 이 지역에는 솟을대문이 있는 집 몇 채와 30여 호의 한옥만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말부터 한옥이 많이 지어졌고, 1992년 가회동한옥보존지구에서 해제되고, 1994년 고도제한이 풀리면서 일반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다. 총 2,297동의 건물이 있는데, 이 가운데 1,408동이 한옥이고 나머지는 일반 건물이다.
북촌 거리에는 북촌양반생활문화전시관과 북촌 한옥촌 상징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으며, 옛 선조의 생활모습을 구경할 수 있는 가회동 전통 마을축제가 열린다. 주변에 경복궁·창덕궁·덕수궁·금원·삼청공원 등의 관광지가 있다.
주소는 서울시 종로구 계동 105 북촌 문화센터에 있다.

  쇳대 박물관.jpg

2. 쇳대박물관 : 2003년 11월 5일, 20여 년 동안 철물점을 운영해온 최홍규(崔弘奎)가 개관하였다. 사라져가는 한국의 옛 자물쇠를 수집·보존·연구하며 전시활동을 통해 자물쇠의 아름다움과 과학적 우수성을 알리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최홍규가 소유한 한국과 세계 각국의 자물쇠 3,000여 점 중 3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쇳대는 열쇠를 말하는 방언이다.
4층짜리 건물의 4층에 230㎡ 넓이의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으며, 3개 전시실과 이벤트홀로 구성된다. 제1전시실에서는 각종 자물쇠를 시대별·형태별로 전시하고 있는데, 조선시대에 사용되었던 자물쇠로는 ㄷ자형 자물쇠, 둥근원통형 자물쇠, 함박형 자물쇠, 물고기형 자물쇠, 용형 자물쇠, 거북형 자물쇠 등 약 40여 점이 있고, 고려시대 자물쇠 3점, 통일신라시대 자물쇠 1점, 빗장 11점, 열쇠패 8점, 대형자물쇠 7점이 있다.
제2전시실에서는 함(函), 궤(櫃), 인장함(印章函), 영정함(影幀函), 빗접 등 조선시대 목가구에 쓰인 각종 자물쇠 15점을 전시하고 있다. 제3전시실에서는 아프리카·유럽·티베트·중동·인도·중국 등 세계 각국의 자물쇠를 전시하고 있다. 2004년 가을에는 특별기획전시 '대장간'을 개최하였다.
사면이 녹슨 철판으로 뒤덮인 독특한 외관의 철제건물은 건축가 승효상의 작품이며, 건물 설계도와 모형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3층에는 미술전시, 문화공연, 이벤트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는 '갤러리 쇳대'가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이고, 매주 월요일에는 휴관한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에 있다.

  한국가구박물관.jpg

3. 한국가구박물관 : 한국의 전통 목가구를 중심으로 옹기·유기 등의 전통 살림살이를 전시하는 전문박물관이다. 소장품을 종류별(안방·사랑방·부엌), 재료별 (먹감나무·은행나무·대나무·소나무·종이), 지역별로 분류하여 전시하고 있다.
소장자료는 목가구류·유기류·옹기류·목기소품 등 총 2,000여 점이다. 소장품 전시 외에 특별전과 국제 교환전시회를 열고 관련 출판물을 발간하는 등 우리 나라의 전통 생활가구를 널리 알리는 일에도 힘쓰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창덕궁·운현궁·종묘·국립중앙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볼 만하다. 주소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대사관로 121(성북동 330-577) 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