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인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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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12월 6일 (목) 00:22 판 (이상준 작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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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서울 종로구에 소재한 조선시대의 성문이다.
일반적으로 동대문이라고 부르지만 본래의 이름은 흥인지문(興仁之門)이다.
수도권 전철 1호선(128)과 4호선(421)의 동대문역이 흥인지문의 아래를 지난다.

상세설명

흥인지문(興仁之門)은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종로6가에 있는 조선시대 도성에 딸린 8문 가운데 하나로 정동(正東)방향에 있어 동대문이라고도 부른다.
1963년 보물 제 1호로 등록되었다.
흥인지문(興仁之門)은 서울의 8문 가운데 유일하게 '之'자가 이름에 들어간다. 원래 '흥인문'이었던 이 문의 이름이 언제부터 '흥인지문'으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철종실록까지 흥인지문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고종 때 이 문을 고쳐 지으면서 흥인지문으로 바꾼 것으로 유추한다. '之'를 넣은 이유로는 풍수지리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유추되는데 풍수지리에 따르면, 사방위 중 동쪽만 지(地)의 기세가 부족하였기에 지(地)의 음을 따서 지(之)를 덧붙였다고 한다.
흥인지문은 현재의 모습을 하기까지 1396년 축성 이후 여러번의 고쳐짓는 과정을 거쳤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
시기 목적
1396년(태조 5년) 최초 축성
1453년(단종 원년) 수리
1869년(고종 6년) 성문, 중층 문루 개선

1869년에 있던 공사를 통해 우리가 아는 현재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역사

건축양식

흥인지문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모양을 한 우진각 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을 하고 있다.

이것의 형태는 가늘고 약하며 지나치게 장식한 부분이 많아 조선 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흥인지문 성벽의 석축은 높이 6.8m, 석재의 단수는 12단으로, 태조, 세종, 숙종시기 축성 의 특징을 모두 반영하고 있다.

흥인지문 바깥쪽으로는 성문을 보호하고 튼튼히 지키기 위하여 반원 모양의 옹성(甕城)을 쌓았는데, 한성의 성문 8개 중 유일하게 옹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흥인지문 근처의 지형이 적을 막아내는 데 적합하지 않았기에 인공적으로라도 약점을 막아내기 위함이었다.

다만 옹성의 한쪽 에만 통로가 있는 편문 형식으로 문은 달지 않았다.

통로의 방향을 한쪽으로 치우쳐 반원 모양으로 만든 이유는 성문을 감추고 적을 공격하기에 합리적으로 계획된 시설이라 할 수 있다.

흥인지문은 조선시대 처음 축조된 옹성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점에서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태조, 세종, 숙종시기 축성 의 특징 반영한 모습
시기 건축 부분 건축 특징
1396 도성 성곽 불규칙한 잔 석재, 성의 경사면 기울기도 큰 편
세종 성곽 하부 모가 둥근 석재를 쌓음
세종 성곽 상부 태조 때 사용된 잔 석재를 활용
숙종 도성 성곽 정방형으로 다듬어 벽돌을 쌓듯 빈틈이 없이 견고하게 축조

관련 사진

사진출처 : 문화재청, http://www.cha.go.kr, 2018.12.01

주변 명소

관련 동영상

이름에 '之'가 들어가는 이유

동대문 보수공사 상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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