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서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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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민(2011214)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12월 7일 (월) 15:26 판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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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구 서울역사
1981년 9월 25일 대한민국 사적 제284호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 시대인 1925년, 일본은 전쟁 물자 보급을 위한 기본 운송수단을 목적으로 지었다.
구 서울역사는 우리나라 모든 역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당대의 동양 역사의 1 , 2위를 다룰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대지 면적 70,083평, 연면적 2,006평이다. 또한, 르네상스식 건축물로 독특한 외관을 볼 수 있다.

역사

설립 목적

일제강점기 시대인 1925년, 일본은 본 역(驛)사를 전쟁 물자 공급을 위한 기본 운송수단을 목적으로 지었다.
일본은 구 서울역사를 일본과 만주를 잇는 ‘국제역’으로 기획했으며 모스크바, 베를린까지 연결하려고 했다.
당대 일본이 서울역사를 크고 화려하게 지은 이유는 일본, 만주, 유럽을 잇는 제국의 전초기지로 생각함과 자국의 기술력을 홍보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변천사

구 서울역사의 이름은 시대에 맞춰 여러 번 바뀌었다.
역(驛)사의 변천사는 아래와 같다.

연도 이름 비고
1925 경성역 처음에는 경성역으로 설립되었다.
1947 서울역 광복을 맞이하여 서울역으로 개칭하였다.
민간 소유에서 정부 소유로, 국유화되었다.
1960년대 신설 , 본역사 (구 서울역사) 급격한 서울의 변화와 수송량 증가로 인해, 신설과 본역사를 구분해 사용했다.
2004 구 역사 폐쇄 민간 기업의 자본이 투입되었다.
소유권은 국영기관으로 하되 일정 기간 동안 민간기업에 위탁되어 본 역사가 폐쇄되었다.
2011 문화역 서울 284 국유화로 변환되었다.
근대 문화재 복원 공사를 마치고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났다.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이 개설되었다.

안내

구 서울역사는 현재 문화역 284로 불려지며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났다.
옛 서울역의 모습을 복원하였기에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생활 문화 예술을 볼 수 있다.
국가 소유인 구 서울역사는 시민들에게 문화 예술의 문턱을 낮출 수 있도록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인 공연과 전시회, 상설 프로그램(마켓, 강연, 투어 프로그램…등)이 운영되고 있고, 관람료는 무료이다.
대관신청양식을 작성해 심의를 거친다면, 본인이 직접 전시회를 열 수 있다.

이용 안내

정보 설명
이용 안내
이용 시간 10:00 ~ 18:00
관람 시간 30분 전 입장 마감 (17:30분)
공식 홈페이지 문화역 284
휴관일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

※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로 21시까지 연장 운영함


문의

찾아오는 길

교통정보

교통정보 안내
교통정보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통일로 1 서울역 (본옥) 문화역서울284
지하철 1호선 및 4호선의 1번 출구, 2번 출구
자가용 본 구 서울역사는 별도의 주차공간이 없다. 서울스퀘어, 롯데마트 등 서울역 인근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서울역 버스 정보
서울역 버스 정류장으로는 지선버스와 간선버스, 광역버스가 다닌다.

색깔 버스 버스 번호
서울역 버스 정보
초록색 지선버스 종로11 · 0015 ·701 ·1011 ·7011 ·7013 ·7015 ·7017 ·7019 ·7022 ·7023번
파란색 간선버스 104 · 143 · 163 · 201 · 261 · 262 · 300 · 371 · 400 · 402 · 700 · 701 · 704 · 752 · 405 · 603 · 701 · 702 · 750 · 751번
빨간색 광역버스 1100 · 1200 · 5500 · 9001 ·9301 ·9411 · 9711 · 9712번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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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으로 보는 구 서울역사

구 서울역사 갤러리

구 서울역사
1925년, 설립된 구 서울역사는 당시에 일본의 도쿄역사와 더불어 동양 역(驛)사 1, 2위를 다룰 정도로 큰 규모를 지닌 화려한 건축물이었다.
유럽식 르네상스 건축물인 구 서울역사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주도 하에 도쿄대학 교수였던 츠카모토 야스시가 설계하였다.
남녀노소 나아가 계급 구분 없이 누구나 이용 가능한 구 서울역사는 늘 북적였다.
그렇기에, 일반 시민부터 대한제국 황실과 국가 귀빈, 각 나라의 고위 계층의 공간이 저마다 다르다. 또한, 남자와 여자를 따로 구분하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깃들여진 장소를 엿볼 수 있다.
외부는 비잔틴풍의 돔, 대한민국 표준 시계인 파발마, 붉은 벽돌과 화강암으로 이뤄져 있다. 내부에는 당대에 유명한 벽지와 샹들리에가 갖춰져 있으며 지하와 지상인 1층, 2층이 있다.


구 서울역사 시설 안내
1층에는 중앙홀, 1, 2등석 남성 승객 대합실, 3등 대합실, 부인 대합실, 귀빈실 및 귀빈 예비실, 역장실이 있다.
2층에는 최초의 서양 레스토랑인 '그릴'이 있다.



구 서울역사의 정면과 비스듬하게 바라본 사진이다.


  • 1층

1층에는 중앙홀과 1,2등석 남성 승객 대합실과 부인 대합실, 귀빈실, 역장실, 3층 대합실이 있다.


중앙홀
아름다운 석조 건축물인 중앙홀.
이 곳은 12개의 석제 기둥과 동 서쪽의 반원형 측창이 있다. 상부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어 매우 아름답다.
중왕홀 양 옆에는 매표소가 있었다.


1,2등석 남성 승객 대합실
1 , 2등석을 구매한 남성들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현재는 전시실, 고객봉사실로 사용되며 원형이 많이 변했다. 하지만, 가운데 기둥의 주두 상부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3등 대합실에 비해 고급스럽게 꾸며진 모습을 볼 수 있다.


3등 대합실
기차 일반석을 이용하는 남자와 여성 승객이 대기하던 장소이다.
서울역 광장과 연결되어 바로 대합실 출입이 가능하였고, 항상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던 공간이다.


부인 대합실
1, 2등 대합실을 이용하는 여성 승객만 사용할 수 있는 부인 대합실이다.
부부여도 남녀를 구별하였기에 남성은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다. 당시 근대 문물을 도입하였으나 남녀에 대한 전통적인 가치관들이 남아있었다. 사회적 인식을 대변하는 상징적 공간이기도 하다.
3개의 대합실 중 가작 작지만, 다양하고 멋진 재료와 문양으로 꾸며져 있다.
해방 이후에는 여객과장실로 바뀌었으며 1969년에는 부역장실로 사용되었다.


귀빈실
대한제국 황실과 국가 귀빈, 각 나라의 고위 계층이 머무르는 공간이다.
장식적인 모습이 가장 잘 복원된 공간이자 역사에 기록될만한 유명 인사들이 이 곳을 사용했다.
서울역 내에서 유일하게 난방이 되던 곳이며 대리석 벽난로와 거울, 고급 장식 벽지 등 격조 높은 연출을 볼 수 있다.
귀빈 예비실이란 귀빈을 위한 식당으로, 귀빈을 수행하는 수행원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귀빈실 바로 맞은 편에는 역장실이 있다. 그 이유는 역장이 직접 귀빈실에 머무는 승객을 차와 커피, 다과로 응접하였기 때문이다.


역장실
구 서울역사의 역장실이다.


  • 2층

2층에는 서양식 레스토랑인 '그릴' 밖에 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양식당인 과거 서양식 레스토랑이다.
이름은 ‘서울역 그릴’이며 당시에는 경양식당이 그릴이라고 통용되었을 만큼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넓은 홀과 높은 천장, 화려한 샹들리에 , 40명의 요리사 등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또한, 설립된 이후부터 1988년까지에는 고위 관료 및 대통령, 각국의 유명 인사가 방문하는 고급 문화의 공간으로 여겨졌다.

구 서울역사 영상

여러 사진을 통해 구 서울역사를 둘러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 보다 생동감 있는 구 서울역사를 만나실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하단 우측에는 간단한 설명이 기재되어 있으니 마음에 드는 영상을 선택하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영상 설명
구 서울역사 소개 영상
VR로 만나는 구 서울역사 소개 영상 1.
□ 도슨트는 건축가 조정구님
□ 구 서울역사(문화역 284)의 1층 공간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VR로 만나는 구 서울역사 소개 영상 2.
□ 도슨트는 건축가 조정구님
□ 구 서울역사(문화역 284)의 2층 공간을 보실 수 있습니다.
구 서울역사 요약 소개 영상
□ 구 서울역사 건물 양식 소개
□ 구 서울역사 시설 소개

알면 유익한 구 서울역사 건물

파발마

파발마.PNG [20]


1970년대 후반까지 한국에서 가장 큰 시계였던 파발마
약 160cm 지름인 탑시계는 시민들의 규칙적인 생활을 이끌어주었으며 식민 통치를 원활히 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1968년 10월, 최종철 부역장에 의해 '파발마'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국민 모두가 탑시계를 아끼고 사랑하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강우규 동상

강우규.jpg [21]

동상
2011년, 구 서울역사 RTO공연장 앞에 동상이 세워졌다. 3년 전부터 진행한 모금 활동의 결실을 맺은 이 동상은 뜻깊은 이야기가 있다.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독립운동가 동상으로, 왼손은 주먹을 쥐고 있으며 오른손은 수류탄 모양의 폭발물을 들고 있는 강우규 동상이다.

강우규 의사
일제강점기 때 활동하신 독립운동가이다. 서울역사가 지어지기 전인 1919년 9월 2일, 3·1운동의 여파로 새로 부임한 일본인 조선총독 사이코 마코토를 죽이려고 서울역에 폭탄을 던진 독립운동가이다.
안타깝게도 폭탄은 빗나갔고, 도피 중 붙잡혀 이듬해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되고 만다.

작성자

강지민

참고 문헌

이미지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