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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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은(2011202)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12월 13일 (일) 22:3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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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77년 11월 22일 사적 제257호로 지정되었다.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인 고종(高宗:재위 1863∼1907)이 출생하여 12세에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성장한 잠저(潛邸)이다. 한옥은 제일 앞 남쪽에 대원군의 사랑채인 노안당이 자리잡고, 뒤쪽인 북쪽으로 행랑채가 동서로 길게 뻗어있으며 북쪽에 안채인 노락당이 자리잡고 있다.

역사

서울특별시 사적 제257호로서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에 위치한 운현궁은 조선조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잠저(潛邸)이며 흥선대원군의 사저이며, 한국근대사의 유적 중에서 대원군의 정치활동의 근거지로서 유서 깊은 곳이다. 흥선군 이하응이 왕실집권을 실현시킨 산실이자 집권이후 대원군의 위치에서 왕도정치로의 개혁의지를 단행한 곳이기도 하다. 운현궁은 대원군이 권력에서 하야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정치적 영향력을 내외에 행사한 곳으로서 고종이 즉위하기 전까지 살았던 잠저(潛邸)였기 때문에 역사적 상징성이 더욱 크다. 흥선군의 사저가 운현궁으로 불리게 된 것은 1863년 12월 9일 흥선군을 흥선대원군으로, 부인 민씨를 부대부인으로 작호를 주는 교지가 내려진 때부터였다.

고종이 12살까지 살았던 운현궁은 철종 때 옛 관상감 터였던 운현궁에 왕기가 있다는 내용의 민요가 항간에 유행하였으며, 고종이 등극한 후 대원군이 운현궁 터를 다시 확장하였다. 운현(雲峴)이란 당시 서운관(書雲觀)이 있는 그 앞의 고개 이름이었으며, 서운관은 세조때 관상감(觀象監)으로 개칭되었으나 별호로 그대로 통용되었다. 서운관의 명칭인 운관(雲觀)과 운관 앞의 고개를 가리키는 운현(雲峴)이라는 명칭이 그대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고종의 잠저는 당시 대왕대비 교지를 받들어 영의정 김좌근, 도승지 민치상, 기사관 박해철·김병익 등 일행이 명복(明福-고종의 이름)에게 익종의 대통을 계승토록 하기 위하여 고종을 맞이하러 최상급의 가마행렬을 갖추어 관현(觀峴)의 흥선군 사저에 갔을 때 흥선군의 위엄 있는 자세와 그의 둘째 아들인 명복의 천진스러웠던 모습에 대한 사실적 묘사에서 운현궁이 고종의 잠저였음을 알 수 있다. 한일강제병합 후 일제는 1912년 토지조사를 실시하면서 대한제국의 황실재산을 몰수하여 국유화하고 이왕직 장관을 시켜서 운현궁을 관리하게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운현궁을 유지·관리하는 일은 소유권에 관계없이 이로당의 안주인들이 계속 맡아했다.

운현궁의 소유권이 다시 대원군의 후손에게 넘겨지게 된 것은 1948년 미군정청의 공문에 의해서였다. 이후 그 소유권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정부와 대원군 후손 사이에 법적 공방이 있었으나 그 해 9월 21일 결국 대원군의 5대손 이청(李淸, 1936- )씨에게 운현궁 소유권이 확정되었다. 그러던 것이 1991년 운현궁을 유지, 관리하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기면서 양도 의사를 이청씨가 밝힘에 따라 서울시에서 매입하게 되었고, 1993년 12월부터 보수공사를 시작하였고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된 것이다.

건축

주요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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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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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궁역에 포함된 건물

현재 궁역에 포함된 건물 설명
정문
운현궁의 출입문. 조선시대 당시 정문은 창덕궁 쪽에 있었다. 현재 일반 관광객은 오직 이 문으로만 운현궁을 출입할 수 있다.
수직사
정문 우측에 위치한 수직사는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당시의 운현궁은 상당히 넓었을 뿐만 아니라 고종이 즉위하면서 흥선대원군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 궁에서 파견된 경관들과 관리하는 인원이 많았다.
솟을대문
운현궁 안채인 이로당과 노락당을 출입하는 문.
노안당
운현궁의 사랑채. 흥선대원군이 일상적으로 거처한 곳으로 고종 즉위 후 주요 개혁정책이 논의 되었던 역사적 장소이다. 정면 6칸, 측면 3칸이며 처마 끝에 각목을 덧대어 차양을 설치했다. 노안당이란 현판은 《논어》 - 〈공야장편〉의 '노인을 편하게 하다(老者安之)에서 딴 것으로, 아들이 임금이 된 덕택으로 좋은 집에서 편안하게 노년을 살게 되어 스스로 흡족하다는 뜻이다.
노락당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 정면 10칸, 측면 3칸이다. 1866년(고종 3년)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가 거행되었으며 가족들의 회갑이나 잔치 등 각종 중요 행사 때 사용되었다. 명성황후가 삼간택이 끝난 후 왕비 수업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이로당
운현궁의 안채 역할을 하던 곳으로 노락당에서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가 있은 후 노락당을 안채로 사용할 수 없어지자 새로운 안채로 1869년(고종 6년)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정면 8칸, 측면 7칸이다. 여성들의 공간이므로 외간 남성들의 출입을 삼가기 위해 건물의 구조가 ㅁ자 형태로 이루어졌다.

과거 궁역에 포함되었던 건물

과거 궁역에 포함되었던 건물 설명
양관 정문
양관 정문. 현재는 덕성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 및 덕성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의 정문으로 쓰이고 있다.
양관
운현궁의 유일한 서양식 건물로 원래 아재당과 정자인 영화루, 그리고 은신군과 남연군의 사당이 있던 자리에 1907년(융희 원년) 일제가 한일합병에 앞서 황실 인사를 회유하기 위해 만들어 주었다.[6] 설계자는 일본인 건축가 가타야마 도쿠마(片山東熊). 일제강점기에는 이준공저(李埈公邸), 이우공저(李鍝公邸) 불렸고 8.15 광복 후인 1946년부터 덕성학원에서 소유하여 현재는 덕성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운현궁 영역에서 벗어났다. 이후 교실, 평생교육원 본관, 대학사무국 등으로 사용하다 현재는 보존을 위해 비워둔 상태이다.[7] 바로크 건축양식을 모방해서 만든 건물로 곡선이나 타원형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그 시절 공공기관 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듯, 현관 출입문을 마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돌출되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고풍스런 분위기로 드라마 촬영도 많이 하는데 궁에서는 황태자의 동궁 양관으로, 각시탈에서는 이시용 백작의 저택으로, 그리고 더킹 투하츠에서는 황궁의 일부로 나왔으며 무엇보다 도깨비에서 저승사자가 도깨비 조카한테 산 집으로 유명하다.

양관 초소
양관 본채보다 먼저 지어졌다. 양관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라지만 실제로는 일제가 운현궁을 감시하기 위해 세웠다는 말이 있다. 역시 현재는 덕성여자대학교의 소유이다.

운현궁 관련 서적

운현궁의 봄

운현궁의 봄.jpg

매체 및 간행년도

조선일보1933.4.26-1934.2.17(197회 완) ; 한성도서1948(446면)

원제

雲峴宮의봄

작가명

금동

작품소개

연재 지면에 ‘야사(野史) 운현궁(雲峴宮)의 봄 금동(琴童)’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총 25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흥선대원군이 죽는 장면으로 서두를 시작하여 그의 집권 과정을 거슬러 서술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작품내용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역경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하여 세도가인 안동 김 씨 일파로부터 받는 온갖 멸시와 수모를 참아 낸다. 흥선은 밖에서는 남의 손가락질을 받는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도 가정에서는 둘째 아들 재황을 제왕으로 만들기 위한 왕자 교육을 시키는 이중적 생활을 한다. 승후관 조성하를 통해 김 씨 일파에게 밀려난 왕실의 조 대비를 만나게 되고 그의 환심을 얻는다. 권세를 휘두르는 김문 일파에 대해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있던 조 대비는 철종이 후사가 없이 승하할 시에 흥선군의 둘째 아들 재황을 보위에 올리기로 이하응과 밀약을 맺는다. 철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드디어 재황은 왕실의 대통을 잇게 된다. 국태공이 되어 나라의 권력을 장악하게 된 흥선대원군은 왕의 위에 군림하여 청정함으로써 안동 김씨 일파의 세를 꺾는다. 또 탐관오리를 숙청하고, 사색당파를 혁파하고, 서원을 철폐하여 유림과 양반의 행패를 척결한다. 그 후, 오랫동안 쓸쓸하던 흥선대원군의 집, 운현궁에 드디어 따사로운 봄이 찾아온다.

관람안내

관람 요금 및 시간

관람요금

 ※무료

관람시간

하절기 개장시간 : 9:00부터 18:00 / 입장마감 17:30 (4월초~10월말)

 ※ 코로나19 방지를 위해 1시간 단축운영한다.

동절기 개장시간 : 9:00 부터 18:00 / 입장마감 17:30 (11월초~3월말)

 ※ 매주 월요일 휴관 (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정상 개장한다.)

코로나19 관련 단체관람 안내

 ※단체 관람객 기준 : 10명 이상 (10명 미만은 개인 관람)

<단체 관람객 (10명 이상) 이용 방법>

① 운현궁 관람안내소에 최소 방문 1일 전까지 사전 연락하여 허가 후 입장 (☎ 02-766-9090)

② 단체명, 인원, 입장 시간 등 세부내용 확인 및 출입 대장 작성 후 입장


<단체관람객 입장 방법>

① 1팀에 최대 10명씩 관람객을 나누어 10분 간격으로 입장 제한

② 각 팀 별 관리자를 선정하여 관리자가 대표로 단체 출입 대장 작성 및 단체 관람 시 팀원 관리

③ 실내 공간(유물전시관, 기획전시실) 입장 시 반드시 마스크 착용 필수 및 1~2m 거리두기 관람 준수

관람규칙

  • 운현궁 내의 모든 공간은 금연구역
  • 상업적 용도를 위한 촬영은 사전신청대상
  • 인화물질 및 무기류 등 위험물 소지 불가
  • 주류, 각종 야영용품(텐트, 돗자리, 그늘막 등), 운동기구, 놀이기구 및 취사도구 반입 금지
  • 안내견(장애인복지법 제40조제2항의 장애인 보조견) 이외의 반려동물 출입 금지
  • 음주, 무속행위, 확성기 사용 등 관람분위기 저해행위 금지
  • 문화재 출입금지 구역 내 무단침입 금지
  • 음식물 (생수 외 모든 음료 포함) 절대 반입 금지 : 생수 및 음료는 회랑에서만 섭취 가능
  • 노둣돌(하마비), 절구 등 외부 유물을 밟거나 위에 올라서서 사진을 찍는 등의 유물 훼손 행위 금지

찾아가는 길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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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0-350]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 464
  • 전화 : 02)766-9090
  • 팩스 : 02)742-3900
  • E-mail : help@unhyeongung.or.kr

대중교통 정보

  • 버스 : 종로01 / 종로02 / 6011 / 109 / 151 / 162 / 171 / 172 / 272
  • 지하철 : 3호선(안국) 4번출구 / 5호선(종로3가) 5번출구
 ※주차장이 없으니 주변의 유료주차장을 이용하시거나 가급적 대중교통 이용을 권한다.

작성자

조정은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