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주의 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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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전주의 화풍

개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서구 전체를 풍미한 예술양식. 고전, 고대(그리스 ∙ 로마)의 부활을 목표로, 고고학적 정확성에 강한 관심을 두고 합리주의적 미학에 바탕을 둔다. 고대적 모티브를 많이 쓰고 냉철한 표현의 완성을 특징으로 한다. 신고전주의라는 용어는 당대에는 통용되지 않는 용어였다. 이 용어가 처음 쓰이게 된 것은 19세기 말 푸생의 회화를 설명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이후 이 용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용어에 걸맞은 시대상을 찾으려는 시도가 있어왔고 1920년대에 미술사학자들과 여타 미술 평론가들이 이 용어를 지금과 같은 용례로 사용하게 되었다. 용어의 기원이 채 100년도 되지 않았기에 이 말은 예술의 각 분야에서 동일한 시기를 지칭하지 않는 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가령 음악의 경우 미술과 달리 이 용어를 19~20세기의 음악에 적용하기도 한다.


특징

형식적인 측면에서 있어서 신고전주의는 17세기 프랑스의 미술사조인 고전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한 점은 소묘와 터치에 있어서 작가 본인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 빛의 표현에 있어서 차가운 조명과도 같은 흰색 계열의 빛을 사용한 점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또 주제에 있어서도 풍경화가 지양되거나 부수적인 요소로 물러나고 인물화, 건물을 그린 그림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건축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묘사된 인물이나 건물은 많은 경우 영웅의 죽음과 헌신과 같은 교훈적이고 도덕적인 주제 일색으로 그려졌으며 신화에 대한 그림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그려진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러한 형식 경향에 있어서 예외가 존재하는데 특히 나폴레옹이 실각한 직후 프랑스 미술에서 이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이탈 경향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화가가 앞에서 이야기 했던 오퀴스트 앵그르다 그는 비단 이국적인 주제 뿐만이 아니라 고전주의 양식이 규범적으로 드러나는 인물화 분야에 있어서도 논란을 많이 샀는데 당대에 "저속하다"는 평가를 받은 <베르탱 씨의 초상>이 그러한 이탈 경향의 대표격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인물의 묘사, 특히 기다림을 참지 못해 초조해보이는 표정과 그를 반영하는 듯 손가락이 모두 펴져 발톱처럼 묘사한 부분은 이 그림의 백미이자 당대의 보수적인 예술평론가들이 숱하게 많이 지적했던 부분이다. 이러한 경향은 비단 앵그르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다비드가 망명한 이후 등장한 그의 제자들의 작품들도 형식에 있어서는 역사화의 규범에 따르고는 있었지만 세세한 표현에 있어서는 낭만주의의 경향을 수용하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 이 때문에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비교에 있어서 둘을 대립되는 경향이 아닌 낭만주의에 포괄하는 개념으로서의 신고전주의를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이 있다. 실제 전세계적으로 널리 유통된 H.W 젠슨의 <서양미술사>의 경우 신고전주의에 대한 개괄에서 이 경향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으며 한국에는 번역되지 않은 최신 판본에서까지 그 서술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신고전주의(新古典主義 , Néo-Classicisme) 대표 화가와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