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로 돌아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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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친 나의 어머니 김홍숙의 인생을 짧게나마 기록하고 내게 울림이 있던 이야기들을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작성합니다.

김홍숙, 그녀는

1970년 11월 24일 서울시 동대문구에서 태어나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가부장적이고 엄격하신 공장을 운영하셨던 아버지, 살림하는 주부 어머니 밑에서 자라 평범한 어린이, 평범한 학생, 평범한 성인으로 자라 30살에 '엄마'가 되었다.

청소년 김홍숙

학교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거나 활동적이지 않은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다. 공부에도 흥미를 크게 느끼지 못한 대부분의 청소년과 비슷한 학교생활을 보냈다. 아버지가 6.25 때 고생을 많이 하시고 힘들게 가정을 이루시고 집안을 일으키셨던 분이셔서 자녀들의 공부에 대한 성취 욕망이 큰 편이셨다. 그래서 그 당시 공부방, 주산학원, 웅변학원, 서예학원을 다녔지만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좋게 말하면 느긋하고 나쁘게 말하면 무기력한 성격 탓에 구체적인 꿈은 없었지만 하루하루 사는 게 재밌었던 청소년이었다.

대학생 김홍숙

성인이 되어 태어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대학 문화와 경제적으로도 굉장히 풍요롭던 90년대 초반을 살며 그 당시의 대학생들처럼 강남, 이태원 나이트를 가며 리바이스 청바지나 게스 청바지에 나이키 농구화, 또는 군화를 즐겨 입고 팥죽색 립스틱, 갈매기 눈썹, 진한 아이라인을 그리고 다니는 멋쟁이 20대 생활을 보냈다. 어쩌면... 나도 엄마의 이런 점을 닮아 꾸미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을 여기다 써야 할 듯하다.

엄마 김홍숙

가족사진




대학교에서 만난 지금 말로 남사친이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24살부터 5년을 연애하고 28살에 결혼을 하게 된다. 첫사랑과 결혼에 골인하고 1년 반 뒤 지금의 내가 나오게 됐다. 첫째인 내가 아기 때는 목욕할 때도 울고, 매일 밤마다 울고, 잠도 안 자고 울어서 초보 엄마였던 김홍숙은 같이 울었다. 집에서 거의 나갈 수도 없었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기 힘들었으며 TV도 내가 깰까 봐 소리도 없이 화면만 멍하니 봤다. 그 당시에는 아이를 키울 때 도움 되는 정보들도 부족했기 때문에 자책하기 일쑤였다. 기억도 나지 않는 아기 때지만 죄송한 마음이 크다.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엄마들은 우리를 키우기 위해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때로 돌아간다면-➀

내가 내 자식들은 성실하게 열심히 사는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 자신은 그렇게 살아보지 못했던 것 같아서 20대 때로 돌아가면 열심히 살아가보고, 노력해 보고, 좀 치열하게 살아보는 그런 삶을 살아보고 싶네요.

그렇게 하지 못한 게 좀 후회도 되고 그렇습니다.


엄마의 20대 시절을 내가 감히 왈가왈부할 수는 없지만 엄마는 충분히 열심히 살았고, 노력했고, 치열하게 살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지나간 시절에 대해 후회할 수 있지만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열정적인 자신의 모습을 누군가는 알아줬을 것이며 엄마 또한 그랬을 것이다. 엄마가 성실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고, 우리 가족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엄마의 바람대로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만 성실한 게 아니라 사람을 만나던, 연애를 하던, 친구와 만나던, 취미를 가지던 모든 분야에 열정을 갖고 살아갈 것이며 하고 싶은 것을 원 없이 해보고 모든 생활의 기본을 성실하게 임하며 좋은 어른으로 자리 잡고 싶다.


그때로 돌아간다면-➁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부분이 되게 후회스러워요. 아이들한테 너무 엄격하게 하지 않았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글씨 좀 못쓰면 어떻고 영어 발음 좀 제대로 안 하면 어떻고...

만약에 지금의 나라면 안 그럴 것 같아요.

초보엄마 김홍숙


엄마의 부모 가치관은 '부모는 부모여야 한다.'라고 한다. 부모는 아이가 사회에 나가서 어른으로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항상 보호해 줘야 하며 부모는 부모와 자식 간의 당연한 위계질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엄마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서포트해 주시고 항상 도움 되는 충고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어른이셨기 때문에 엄마도 그 점을 보고 배운 듯하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부모가 되기 위해 규칙을 스스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서 자식들에게 완벽을 강요한 점은 후회가 된다고 했다. 엄마는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우리를 키운다면 그때보다 더 자유롭게 해주고 엄한 기준을 조금 내려놓아서 자신도 더 즐겁고 행복하게 육아를 해서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자신도 부지런하고 바르게 살지 못했으면서 자식들한테는 규칙을 엄하게 강요했던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그런데도 자식들이 하나도 엇나가지 않고, 반항하지 않고 잘 커줘서 너무 고맙다고 했다.


나에겐 그 시절의 엄마가 있었기에 내가 이렇게 잘 성장할 수 있었고 엄마는 내가 보고 배울 수 있었던 어른이었다. 나와 동생이 엇나가지 않고 반항하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가 알아서 잘 큰 게 아니라 엄마의 그런 모습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10대 때는 대부분의 사춘기 학생들이 엄마와 갈등이 있었던 것처럼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의 입장이 어렴풋이 이해가 될 것 같다. 내가 훗날 엄마가 된다면 그제서야 엄마의 마음을 다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엄마가 된다면 엄마가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부모의 모습을 배웠던 것처럼 나도 엄마 아빠로부터 부모의 모습을 배워 자식들에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마치며

김홍숙이 상상하는 자신의 노년의 삶

"내가 원하는 노년의 삶은 아프지 않고 자식들이 나이 먹어가면서 자기 인생을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또 가정을 이루면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자기 몫을 열심히 잘 하고 아이도 잘 키우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서포트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서포트 해주면서 평범하게 나이 드는 그런 노년이 아닐까 싶어요. 대신 좀 건강해서 민폐 안 끼치는 그런 노년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이런 얘기는 우리 딸도 중간중간 알고 있던 부분이 있었을 텐데 다시 이렇게 정리를 해보면서 내 인생이 이랬었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고 우리 딸한테도 내 인생에 대해 얘기해 줄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나중에 더 자세한 얘기를 나눕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