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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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金珖燮, 1906년 9월 21일 ~ 1977년 5월 23일)

호 이산(怡山). 함북 경성 출생.

소개

한국의 시인으로 광복 전후 문화계·관계·언론계 등에서 활동하였다.

중앙문화협회, 조선문필가협회를 창립하였고,《자유문학》을 발간하였다.

대표작은 《성북동 비둘기》, 《고독》,《푸른 하늘의 전락》,《고민의 풍토》등이 있다.

예술원회원, 경희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국민훈장 모란장, 건국포장을 받았다.


1928년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모교인 중동(中東)중학에서 10여 년 간 교편을 잡다가

일제강점기 말 창씨개명 (創氏改名)을 공공연히 반대하여 3년 8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문학활동은 1927년 창간한 순문학 동인지 《해외문학 (海外文學)》과 1931년 창간한 《문예월간(文藝月刊)》 동인으로 시작하였다.

이 무렵 《고독(孤獨)》 《푸른 하늘의 전락》 《고민의 풍토》 등 고요한 서정과 냉철한 지적 성격의 시편들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고,

그 후의 작품에는 식민지시대의 지성이 겪는 고뇌와 민족 의식이 짙게 나타나 있다.

8.15광복 이후 상당기간 문화계·관계·언론계 등에서 활동하였다.

1945년에 중앙문화협회를, 1946년에 조선문필가협회를 창립하였으며,

1957년에는 자유문학사(自由文學社)를 설립하여 문예지 《자유문학(自由文學)》을 발간하였다.

1959년 예술원회원에 선임되었으며 경희대학 교수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제4시집 《성북동 비둘기》는 문학적 업적의 결정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1970년에 국민훈장 모란장을, 1977년에 대한민국 건국에 이바지한 공로로 건국포장을 받았다.

성북

북정마을에서 만해 한용운 심우장으로 가는 길목에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벽화가 있다.

삶에 대한 관조와 인간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으로 한국 시단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이산 김광섭은 커가는 자식들을 위해 1961년 성북동 산기슭에 터를 사서 집을 짓고 기거한다.

성북구 성북로10길 30, 건축가 김종업이 설계한 이 집에서 살다가 1965년 4월 고혈압으로 갑자기 쓰러져 투병 생활을 하는 와중에 〈성북동 비둘기〉가 탄생했다.

이 시를 쓰고 나서 그의 노년은 생의 예지로 한층 더 빛나고 원숙한 세계로 침잠한다.

쫓기는 비둘기를 통해 문명에 스러지는 삼라만상을 담담하게 노래한 격조높은 문명비판 정신이 작품의 행간에 배어 있는데,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영원한 법열의 세계에 눈을 뜬 시인의 절절한 심경이 반영된 듯하다.

성북동비둘기벽화.jpg

북정마을

서울 성곽 바로 아래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집들을 종종 보게 된다.

흔히 달동네라고 부르는데, 북성마을은 서울 사대문 안에 남은 마지막 달동네로 꼽히는 곳이다.

숙정문과 혜화문 사이 한양도성 백악 구간 초입에 위치한 이곳은 1969년 김광석 시인이 발표한 「성북동 비둘기」의 배경이 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1960년대 산업화로 인한 도시 개발로 본래 살던 터전을 잃은 달동네 주민들이 모여 사는 곳,

작가가 비둘기로 비유한 이들의 삶터는 아직도 1960~70년대 골목길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비의 대상이 됐었지만, 지금은 한양도성과 더불어 오랜 세월 누적된 주민들의 삶이 살아 있는 생활문화유산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1960~70년대 골목길 풍경 그대로원래 성북동 일대는 조선 후기 왕을 호위하는 어영청(御營廳)의 북둔(北屯)이 자리하던 곳으로 당시 나라에서 거주할 사람들을 모집해 정착시킨 마을이다.

그러다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과 도시 노동자들이 모여 현재의 마을 모습을 갖추게 됐다. 지금은 과거 물길이 지나는 원형 도로를 따라 500가구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리어카가 지나다니지 못할 정도로 다니기 힘든 거리였지만, 1985년 2차에 걸쳐 마을 중심을 둘러싼 소방도로를 준공했다.

당시 골목골목 있던 집들이 철거되며 반쯤 잘리거나 한쪽 지붕이 없는 집들의 잔재를 도로변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북정마을 .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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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비둘기 쉼터

비둘기쉼터.jpg 성북동 비둘기.jpg

자택

서울 성북구 성북동 168의 34.

60년대 5년여 동안 살았던 이곳은 이산이 거쳐간 많은 주소지 가운데 유일하게 그의 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2남2녀를 둔 이산은 커가는 자식들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말년생활을 위해 1961년 성북동 산기슭에 집터를 사들이고 새 집을 올린다.

당대 유명 건축가 김중업 씨의 설계에 따라 3M가량의 축대를 쌓고

60여 평의 대지에 지은 2층 기와집은 40년 가까운 세월에도 단아한 건축미를 간직하고 있었다.

김광섭자택.jpg

작품

성북동 비둘기

전문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를 입에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설명

시의 형식은 3연의 자유시이며, 서정적·풍자적인 경향을 보인다.

비정한 현대문명에 파괴되는 자연에 대한 향수를 주제로 하고 있다.

외형률보다 내재율을 기본으로 한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가슴에 금이 갔다",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

"금방 따낸 돌온기에 입을 닦는다" 등 부드럽고 원숙한 묘사가 돋보이는 시이다.

1연에서는 산이 파괴되어 가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비둘기 가슴에 금이 갔다"라는 간결한 문장 하나로 자연파괴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폭로된다.

2연에서는 성북동 골짜기에는 이제 안식을 찾을 곳이 없다.

3연에서는 평화의 사절로 인식되던 비둘기가 없어지자 인간들의 마음 속에 가득했던 사랑과 평화도 간 곳 없다.

인간성이 파괴된 것이다. 이제 인간들은 "가슴에 금이" 가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자신들이 일구어 놓은 문명에 "쫓기는 새"의 신세가 되었다. 주제가 집약되는 부분이다.

저녁에

전문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설명

1969년 11월 《월간중앙》(제20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1975년에 출판된 김광섭의 시집 《겨울날》에 실려 있다.

인간의 존재성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생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에 이르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린 작품이다.

시의 형식은 전3연 11행으로 이루어진 자유시이고, 내용은 별을 시의 제재로 삼아 관조적·사색적 어조로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과 운명을 노래한 상징적 성격의 서정시이다.

제1연에서는 어둠 속에서 빛나기 시작하는 밝은 별들과 그에 대조되는 인간현실의 고뇌를 "저렇게 많은 중에서의 별 하나"와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나 하나"로 대응시켜 노래하여 인간의 절대고독감을 강조하였다.

핵심연인 제2연에서는 밝음 속으로 사라지는 별과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나를 통해

"별"로 대표되는 자연과 "나"로 대표되는 인간의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을 강조하였다.

별과 나의 거리감은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해 갈수록 심해지는 인간관계의 단절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동시에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숙명을 노래한 것으로 풀이된다.

제3연에서는 인간을 유한한 존재로 보는 시인의 생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엿볼 수 있다.

시인은 빛과 어둠이라는 정반대의 모순 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의 만남을 통해 이별을 노래하고자 한다.

특히 불교적 인연관과 윤회사상을 느끼게 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구절에서

시인은 점점 물신화되어가는 각박한 인간사회라 하더라도 살아갈 희망과 가치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재회의 기대감으로 표현하였다.

이 시는 생명 자체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노래한 김광섭의 후기작품으로 화려한 시적 수사를 절제해 한폭의 수묵화와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물질문명으로 인해 인간적인 따뜻함과 진솔함을 상실해가는 현대인들의 고독한 모습을 "별"과 "나"의 대조를 통해 존재론적 차원으로 승화시켜 형상화한 수작으로 평가된다.

1970년 서양화가 김환기(金煥基)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화제(畵題)로 대작을 그렸으며,

이 시에 곡을 붙인 대중가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만들어져 애창되기도 했다.

고독

전문

하나의 생존자로 태어나 여기 누워 있나니

한 칸 무덤 그 너머는 무한한 기류의 파동도 있어

바다 깊은 그곳 어느 고요한 바위 아래


내,

고단한 고기와도 같다

맑은 정 아름다운 꿈은 잠들다

그리운 세계의 단편은 아즐다

오랜 세기의 지층만이 나를 이끌고 있다

신경(神經)도 없는 밤

시계야 기이타

너마저 자려무나

해바라기

전문

바람결보다 더 부드러운 은빛 날리는

가을 하늘 현란한 광채가 흘러

洋洋한 대기에 바다의 무늬가 인다.


한 마음에 담을 수 없는 천지의 감동 속에

찬연히 피어난 白日의 환상을 따라

달음치는 하루의 분방한 정념에 헌신된 모습


생의 근원을 향한 아폴로의 호탕한 눈동자같이

황색 꽃잎 금빛 가루로 겹겹이 단장한

아! 의욕의 씨 圓光에 묻힌 듯 향기에 익어 가니


한 줄기로 지향한 높다란 꼭대기의 환희에서

순간마다 이룩하는 태양의 축복을 받는 자

늠름한 잎사귀들 驚異를 담아 들고 찬양한다.

마음

전문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리하여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뜨고 숲은 말없이 물결을 재우느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 1. 시와 인생에 대하여/김광섭 지음/ 한국기록연구소/2014
  • 2. 바람이 되어: 김광섭 시집/김광섭 지음/시음사/2014
  • 3. 내 마음의 보석/김광섭 지음/시음/2013
  • 4. 성북동 비둘기/김광섭 지음/시인생각/2013
  • 5. 김광섭 시선/김광섭 지음;이형권 엮음/지식을만드는지식/2012 (성북구립도서관 소장도서)

영상자료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광섭 [2] 성북구립도서관 [3] doopedia, 김광섭, 성북동 비둘기, 저녁에 [4] 김동규, '서울 마지막 달동네' 성북동 북정마을에 맞춤형 지원, [연합뉴스] [5] 정다은, 비둘기는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위클리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