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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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동학농민군이란 1894년(고종 31) 전라도 고부의 동학접주 전봉준 등을 지도자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운동의 동학도들을 일컫는다.

내용

농촌 사회의 분위기가 어수선할 때,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이 여러 가지로 부정을 저질러 농민들의 원성을 샀다. 그는 자기 부친의 선정을 기리는 비석을 세운다고 농민들에게서 많은 경비를 거두었다. 그리고 이전부터 사용하던 저수지를 버리고 농민들을 동원하여 새로운 저수지를 만들고는 약속과 달리 추수할 때 물세를 받아들였다. 이에 농민들은 마을의 지도적 인물인 전봉준을 앞세워 여러 차례 시정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조병갑의 탐학이 더 심해지므로, 분개한 농민들과 동학 교도들이 전봉준의 지휘로 고부 관청을 습격하고 새로 만든 저수지를 무너뜨렸다.

이에 정부에서는 관리를 보내어 사태를 조사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군수의 비행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고 농민들에게 모든 책임을 물어 주동자를 잡아 가두고 처벌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동학 교도를 중심으로 농민들이 다시 일어났으며, 인근 지역에서도 호응하기 시작하여 농민 봉기는 삽시간에 전라도 전 지역으로 번져 나갔다.

이 때 전봉준이 이끈 동학 농민군은 부패한 정치를 바로잡아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평안히 하자는 주장을 내세웠다. 동학 농민군은 황토현 싸움에서 관군과 싸워 승리하였으며, 장성에서는 정부에서 보낸 정예 부대마저 격퇴하였다.

이어 동학 농민군은 각지에서 관군을 물리치고 북상하여 마침내 전주를 점령하였다. 이처럼 동학 농민군의 세력이 점점 커지자, 이를 진압할 자신이 없는 정부는 청나라에 군대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청이 군대를 파견하자, 일본도 조선에 있는 일본인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군대를 파견하였다.

한편, 정부는 농민군과 타협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농민군은 정부가 개혁을 실시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전주에서 철수하였다.

전주에서 철수한 동학 농민군은 일종의 자치적 행정 기구인 집강소를 전라도 각지에 설치하고, 신분제의 폐지와 토지의 균등한 분배 등을 목표로 개혁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개혁을 위한 농민의 자발적인 노력은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 때 일본군이 경복궁에 침입하여 국왕을 위협하는 침략적 행위를 저지르고 있었다. 이에 동학 농민군은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다시 궐기하였다.

그러나 북상하던 동학 농민군은 우수한 무기를 가진 일본군과 관군에게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패하였으며, 전봉준 등 지도자들이 잡힘으로써 농민군의 봉기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네트워크 그래프

RDF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동학농민군 동학교도와 농민 A는 B이다
동학농민군 전봉준 B는 A의 지도자였다
동학농민군 전주 A는 B를 점령하였다
동학농민군 집강소 A는 B를 설치하였다
동학농민군 우금치 전투 A는 B에서 패하였다